유대인들의 해석
랍비계 유대교-이들의 해석방법에는 두 개의 기본적인 형태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할라카는 특별히 구약의 율법을 담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하가다는 성경 본문을 예증하고 독자들을 계도하기 위한 목적에서 전체 구약이 제공하는 이야기들과 잠언들에 의존하고 있다. 랍비계 유대교의 성경해석은 몇 가지 독특한 특성을 보여준다. 첫째로, 이들의 해석은 주로 랍비들의 해석 전통에 크게 의존해 있다. 둘째로, 랍비들의 주석서들은 보통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랍비들의 해석의 특성은 미드라쉬의 실행이다. 랍비들은 성경해석에 있어서 구절의 교차 참조(관주법)라는 방법론을 만들어 낸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신약저자들도 고대의 랍비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구약을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헬라계 유대교-이 해석학파의 주요한 독특성은 풍유적인 해석 방법론으로, 이 방법론은
그 뿌리를 플라톤 철학에 두고 있다. 히브리성경의 경우, 알레고리의 해석 방법을 실행한 거장은 알렉산드리아의 유명한 유대 사상가인 필로인데 그는 히브리 성경들과 플라톤의 철학을 조화시키고자 했다. 필로는 성경의 사상과 헬라 철학의 사상들 사이의 진정한 차이점들을 무시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궁극적으로 필로의 성경 해석은 성경보다는 플라톤의 철학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쿰란 공동체-이 공동체는 페숴라는 해석방법론을 사용했다. 세 가지의 해석기법들이 이 방법론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해석자가 어떠한 해석을 지지하고자 성경 본문의 실질적인 변화를 제시하기도 한다. 해석자가 문제시되는 구절에 대한 다른 대안의 본문 독법을 선택해서 그에 따른 해석을 제공한다. 기존의 변이형을 결여하고 있기에 영리한 해석자는 자신의 해석상의 목적들에 부합하는 본문 독법을 만들어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이 공동체의 주석가들은 예언을 동시대화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공동체의 해석자는 원자화 방법론을 사용하기도 했다.
사도 시대(주후 약30-100년)
사도들은 구약 예언의 성취를 예수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의 가르침 가운데서 발견했다. 다시 말해서 사도들은 구약을 기독론적으로 이해했다. 그들은 최소한 세 개의 다른 해석 방법론을 사용했다. 첫 번째로, 사도들은 종종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역에 대한 예언들을 발견하고자 구약의 역사서와 예언서란 광맥을 채굴했다. 이들의 방법론은 모형론적 해석 방법이다. 사도들의 두 번째 해석방법은 문자적-문맥적 해석 방법이다. 이 해석 방법은 구약성경을 그들의 정상적인 의미에 따라 해석한다. 사도들의 해석 방법은 원리/적용방법이다. 이 방법에서 사도들은 구약 본문을 문자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구약 본문의 기초적인 원리를 원래의 문맥 속의 상황과는 다르나, 비교될만한 한 상황에 적용함으로써, 구약본문을 해석했다.
교부 시대(주후 약 100-590년)
사도적 교부들(주후 약 100-150년)-몇 가지 해석 방법론들이 초대 교회 교부들 가운데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 교부들은 구약을 신약과 연결짓고자 특히 예수에 관한 가르침과 연결짓고자 모형론을 사용했다. 사도적 교부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해석방법론은 알레고리 방법론이다. 때때로 초대교부들은 랍비들과 쿰란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는, 미드라쉬적 해석 방법론을 사용했다. 마지막으로 교부들은 종교 개혁 시기에 배격되기까지, 성경 해석을 주도했던 한 해석 원리의 초기 양상들을 보여 주고 있다. 2세기경에 점증하는 수효의 이단적 집단들이 교회 내에서 생겨났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해석이란 새로운 해석학적 원리가 생겨나게 된다. 교회는 성경 본문의 전통적인 해석을 교회의 올바른 해석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주후 약 150-400년)-알렉산드리아의 해석방법론은 두 명의 대변인이 성경을 풍유적으로 읽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대변인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이다. 필로처럼, 클레멘트는 성경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가르쳤다. 두 번째 대변인은 클레맨트의 후계자인 유명한 학자 오리겐이다. 성경의 지혜로운 해석자는 본문의 사건들로부터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숨겨진 원리들과 교리적인 진리를 찾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디옥학파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경의 보다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열쇠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소위 데오리아이다. 알레고리를 철저하게 배격함으로써 안디옥의 학자들은 교회에 의해서 널리 받아들여진 몇몇 해석들과 이별하게 된다.
교회 회의 시대(주후 약 400-500년)-주후 312년에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과 함께 정치가 교회의 성경해석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교회에 압력을 가해서 교리상의 차이점을 해결하고 표준화된 교리를 정립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교회지도자들은 일련의 교회 회의를 소집해서 공식적인 교회 교리를 규정했다. 그리하여 성경에 대한 이성적인 연구가 아니라, 수용된 교회 전통이 성경의 궁극적인 해석자가 되었다.
중세 시대(주후 약 590-1500년)
세 가지 해석방법이 중세 시기의 성경 해석의 전형을 이룬다. 해석자들은 계속해서 전통적인 해석-수세기에 걸쳐서 전해 내려온 교부들의 견해들-에 크게 의존했다. 중세시기에는 성경해석의 모든 방법론들 중에서, 풍유적인 해석이 가장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중세의 세 번째 성경 해석 방법은 역사적인 해석이었다. 궁극적으로 문자적인 해석의 보다 영향력 있는 주창자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은 스콜라주의라 불리는 해석의 움직임이었다. 스콜라주의에 대한 가장 해박한 대변인은 기독교 사상가인 토마스 아퀴나스였다. 아퀴나스는 풍유적인 해석에 오랫동안 속박되어 있던 신학을 그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종교 개혁 시대(주후 1500-1650년)
마루틴 루터는 16세기의 해석학적인 대변혁을 주도했던 인물 중의 하나이다. 첫째로 루터는 오직 성경만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고 확언했다. 둘째로 루터는 알레고리를 배격하는 반면에 신약의 전형적인 특징인 모형론적 해석을 다시 채택했다. 해석학상의 대변혁을 이끌었던 또 다른 인물은 존 칼빈이었다. 루터와 마찬가지로 칼빈 역시 성경을 교회의 유일한 최고의 권위, 특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권위라고 확언했다. 칼빈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 주관적인 요소, 즉 "성령의 내적 증거"라는 주관적인 요소를 받아들였다.
종교 개혁 이후 시대(주후 1650-1800년)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로부터 흘러나온 중요한 움직임들이 종교 개혁 이후 시대의 성경 해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종교개혁으로부터 경건주의라 불리는 운동이 생겨났다. 경건주의의 성경해석은 고대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 본문들을 자세하게 문법적으로 공부함과 동시에, 언제나 초점은 이들 성경 본문들이 지닌 경건한 의미들 혹은 실천적인 함축성들에 모아져 있었다. 르네상스 정신은 이성주의라 불리는 중요한 지적 운동을 낳았다. 이성주의는 성경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이성의 사용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신앙을 세워 나가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현대 시대(주후 1800년-현재)
19세기-독일이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자들 중심으로 역사적-비평 방법론으로 알려진 해석 방법이 생겨났다. 그래서 성경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 계시로 보지 않고 여타 다른 문학들을 대할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대했다. 바우어, 벨하우젠, 하르낙은 역사적 비평을 통해서 현재의 성경 이면에 놓여 있는 복잡한 문학적이며 종교적인 역사의 세계를 파헤치자고 주장했다.
20세기-두 가지 해석 방법론이 있는데, 첫 번째는 종교-역사라는 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은 고대의 인접한 종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적 실행들에 어떻게 깊은 영향을 미쳤는가를 보이고자 했다. 두 번째는 양식비평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문학적 방법론이다. 구약의 양식비평은 성경의 구전단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현재의 기록된 본문의 문학적 양식들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추게 된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시기-두 명의 위대한 이물들이 성경 해석에 있어 새로운 방향의 초두를 장식했다. 첫 번째 인물인 칼 바르트는 오랫동안 잊혀진 종교 개혁의 유산에 대한 강조를 새롭게 주장했다. 두 번째 인물은 유명한 신약학자인 루돌프 불트만은 양식 비평 방법을 복음서 연구에 적용했다. 또한 성경의 "비신화화"를 시도했다. 양 대전 사이에서 바르트와 불트만의 신학 사상은 신정통주의라 불리는 새로운 신학운동을 태동시켰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시기-대전 이후 미국에서 쏟아져 나온 책들은 성경 신학에 대한 관심이 부활되었음을 보여 주었는데, 이를 차일스는 성경신학운동이라 불렀다. 두 개의 해석학적인 발전들이 생겨났다. 하나는 역사적 예수의 새로운 탐구이고, 또 하나는 신해석학이었다. 또한 전후의 성경 신학 운동은 방법론적인 후예를 낳았다. 바로 정경비평 방법론이다. 결론적으로 20세기는 새로운 해석의 방법론들과 해석 절차의 성격에 관한 철저한 철학적 성찰이 부상했던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