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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회장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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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 2007/04/03, 조회 : 3,010 |
이 제목을 쓴 것은 필자가 어느 노회의 노회장 자리가 탐나서가 아니다. 필자는 노회장직은커녕 노회 회록서기조차 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을 뿐더러 그럴 가능성도 거의 전혀 없다. 글 내용이 특정노회의 특정 상황을 지칭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모 노회나 그 노회장의 위상이나 영예를 낮추려는 것도 아니다. 그들보다 내가 더 의롭다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최근 사태가 망각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 성경에 비춰가며 필자가 느낀 점을 가상실제적으로 솔직히 풀어놓아, 글로써 하나의 패턴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노회장이라면, 이번 사례와 같은 목회자 불륜 사태를 이렇게 풀고 싶다.
필자는 교단헌법에 투철한 '법통'은 아니다. 그러나 여하한 법도 성경의 법과 신앙인의 양식/상식을 초월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사도 페트로는 예수님을 재판하여 못 박은 사람들을 '무법자'라고 칭한 바 있다. 사실상 최고종교법을 보유한 종교재판소(산헤드린)였는데도 말이다. 필자는 노회법/총회법을 잘 지켜 천국에서 더 큰 상급을 받는다고 결코 믿을 수가 없다. 성경엔 교단/노회의 개념 조차도 없다! 교단/노회는 제도적 교회에만 국한될 뿐 비가시적 교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한국의 노회장/총회장도 얼마든지 법을 어기고 폭언을 하고 범죄를 저지른다. 이런 상황은 다만 하나님이 제도적 교회에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신자로서의 양심법을 더 중시하며 써내려간다. 필자를 무법자로 여기지 마라. 강도사(=준목)고시), 목사고시 때도 그랬지만 교회헌법 같은 것은 단 시일에 공부하여 지킬 수 있다. 본인이 성경의 법도 지키지도 않으면서 제 아무리 교단헌법에 도통하여 완벽하게 준수한들 무슨 소용인가?]
내가 노회장이라면, 먼저 뉴스를 접한 즉시, 노회 비상 임원회를 소집해 해당 본인과 해당교회 당회와 접촉해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사실이 확인되면, 노회장 직권으로 노회와 및 산하 모든 교회에 통회와 금식 주간 및 회개 금식의 날을 제정, 선포한다. 이런 일 정도를 노회장 직권으로 하지 못한다면 그런 금법은 성경에 역행하는, 있으나마나한 법에 불과하다.
내가 노회장이라면, 더 나아가 교단 임원회, 교계 단체에도 비슷한 차원의 조처를 호소한다. 문제 해결이 되고 만족할 만한 안정과 평화가 회복되기까지 교회 순번별 24시간 금식기도를 이어간다.
이번 일은 교회 내 범죄에 해당하므로 해당 당회와 협력해 노회 안에 치리회(재판국) 절차 준비에 준한 사실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 사회 형법과 인권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죄상을 면밀히 조사한다. 노회원들에게 사건의 추이를 보고할 보고서를 작성한다. 진상규명위는 죄상의 경중에 따라 최중 징계를 노회에 제안하게 한다.
비상노회를 소집한다. 노회 개최 전, 전 노회원들의 1~3일 금식기도회를 열고 당사자와 같은 심경으로 회개한다. 노회엔 비공개리에 범죄자 본인을 출석하게 한다. 범죄자는 강단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모든 노회원들도 그 곁에 무릎을 꿇고 통회 자복한다. 특히 범죄자에게 안수하고 회개의 영과 회복의 영, 용서의 기름부음을 하나님께 간구한다.
사도 파울은 성도의 간음 사건에 대해 단호한 처벌을 했다. 목회자/노회원만 관용을 베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위원회의 보고를 존중해 범죄자에겐 가능한 한 무거운 징계를 베풀도록 유도한다. 이번 사태 같은 정도의 죄과와 죄질이라면 면직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것이 악순환을 방지하는 길의 하나다.
내가 노회장이라면, 위원회에 의해 유도된 노회의 결의를 거쳐 당사자에겐 일정 기간 동안 근신과 회복에의 노력을 문서화된 선서로 다짐 받는다.
그리고.. 내가 노회장이라면, 이번 사태를 장대현교회의 회개운동을 본받는 범교계적 회개의 작은 불꽃으로 삼으련다. 먼저 나 자신부터 무릎 꿇고 성령께 회개의 영을 간구하겠다. 노회 산하 각 교회마다 회개운동을 촉구하고, 노회원들부터 본을 보이련다.
그렇게 믿음으로 회개하고 간구해도 다른 노회, 다른 교단, 교계단체가 본받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불꽃을 퉁기다 보면 제대로 불길이 당겨질 줄 믿는다.
내가 노회장이라면, 이번 일로 모든 노회원들, 목회자/사역자들이 낮아져 일반 성도 같은 마음으로 되돌아 갈 기회로 만들 테다. [사역자의 영어 'MINISTER'는 '섬김이' 라는 뜻이지 결코 '섬김 받는 이'란 뜻이 아니다. 주님 자신부터가 섬기러 땅에 내려오셨고 죽기까지 섬기셨다. 그런데 대다수 목회자의 심정은 그렇지가 않다. 가능한 한 섬김 받고 대접 받고 관용을 얻으려는 자세다. 대체로 교인들을 높이기 보다 낮춰 보려는 자세가 일반이다. 이런 유의 일이 발생하면 누구나 으레 자신에게 관대하고 상대에겐 인색하기가 쉽다. 목회자가 그래선 안된다. 잘못이다.]
내가 노회장이라면, 다음과 같은 개혁안을 노회의 결의를 거쳐, 총회에 상신하겠다. [거듭되는 얘기지만, 초기교회는 결코 1인 담임목사 중심체제가 아니었다!]
- 이런 경우에 대비해 교단 산하에 목회자 성윤리연구대책기구를 상설한다. 연구 결과에 따라 각 산하노회에 직결 시행할 수 있는 범법자 회복/재활 지향성 대책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그 비용은 총회/노회/지교회/가족이 적절히 분담한다. 그같은 프로그램은 심리학/목회상담학적 배려만 갖고는 부족하다. 강력한 영적 전쟁도 겸할 수 있는 기름부음 받은 전담 사역자를 둬야 한다. 목회자/노회원/지도자 성윤리 위배 때의 적절하고 상세한 규범을 교단헌법에도 반영시킨다.
- 이런 사태 때 전체 교회의 피해가 막심한 주 요인인 담임목사 1인 중심 체제에서 유/무급 사역자, 일반신도(평신도) 사역자 공동목회 체제를 연구하여 구상안을 내놓도록 한다. - 실험단계를 거쳐 공동목회 체제를 산하교회에 점차적으로 적용하도록 한다. - 일인 목회자 중심 체제로 인해 고질화된 편견과 인습들을 고쳐나가도록 노회, 교단 차원에서 실천적인 연구와 개선해 나가도록 추진한다. [노회가 각 산하교회의 헌금에 의한 상납금을 받으면서, 이런 사태 때 특정 노회원 편만을 든다거나 관련 교인들(또는 피해가족이 있는 경우), 그들을 위한 아무런 배려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넌센스다. 단 해당교회 당회와 협력해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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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 - XXXXX7.134.134 2007-04-09 08:00:49 |
맞습니다, 하하님. [애국주의=신앙] 등식을 믿는 사람들이 있어왔죠. |
하하 - XXXXX08.180.197 2007-04-09 03:44:15 |
국가주의가 교묘히 침투해서 성경의 근본원리를 흐트러 놀려고 하는데..그것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게 말세에 사탄이 원하는 것입니다. |
하하 - XXXXX08.180.197 2007-04-09 03:41:37 |
하나님, 예수님보다 신성시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신성한것은 오직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하나님 말씀 입니다. 사람들은 신성한 태극기, 신성한 국방의 의무...신성이라는 단어를 너무나 남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신성한것이 없다는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하나님, 예수님, 하나님 말씀처럼 신성시 여깁니다. |
김삼 - XXXXX7.134.134 2007-04-08 14:14:46 |
무엇이 님들에게 이런 보복성 감정과 글투를 낳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님의 것도 별로 선한 언행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뒤틀린 심사를 성령의 권능으로 치유 받으시길 빕니다. 비비 꼬인 '꽈배기' 언사가 곧 개혁은 아니겠죠. 개혁 대상일지언정.. |
MercyOnMe - XXXXX7.167.231 2007-04-08 00:14:51 |
"암튼 고맙습니다." 라고라? "현란한 신학논리"라는 게 무신 칭찬인 줄 아시나베.
김삼님, "지식사랑?"님께서 묵상하시라는 구절은 혹 다음 구절이 아닐런지요? 신학논리로 무장된 철저한 까발리기식 주장, 자신의 한계조차도 인정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 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에 대한 배려섞인 권고.
호전적이라니요? 김삼식 호전성이 어떤건지 저도 감히 한 번 흉내내 볼까요? 괜둡시다. 쓸데없는 소모전이니...
"고전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
김삼 - XXXXX7.134.134 2007-04-07 21:05:38 |
^^ 그곳 사람들은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때도 이처럼 호전적이군요. ㅉㅉㅉ 언제 좀 철이 들려나.. mercy on them..
암튼 고맙습니다. 별로 현란치도 않은데 '현란'타고 칭찬해 주시고, 이렇게 진리/사랑 말씀을 다시 묵상할 기회를 주시니..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코린토a 13:5) |
진리사랑? - XXXXX.103.6 2007-04-07 20:53:49 |
진리사랑님, 현란한 신학논리로 말장난하지 마시고 고린도전서 13장이나 묵상하시지요. |
김삼 - XXXXX7.134.134 2007-04-06 23:32:05 |
하이(hi), 하하님~. 불쑥불쑥 나타나시니까 '하홍'(하하홍길동)이란 별명을 붙여드리고 싶군요^^. 그건 그렇고 천국에 가면 한국은 없고 천국과 지옥만 있습니까^^? 또..구원 받은 사람(천국)과 구원 못 받은 사람(지옥), 천국에도 상급 받는 사람과 부끄러운 구원 얻을 사람 등도 있겠죠. 아무튼 GBY! |
하하 - XXXXX11.220.97 2007-04-06 23:27:26 |
하나님, 예수님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 하나님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
하하 - XXXXX11.220.97 2007-04-06 23:24:25 |
천국에 가면 한국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나라만 있을 뿐입니다. 천국과 지옥만 있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과 구원 못받은 사람만 있습니다. 그럼.. |
김삼 - XXXXX7.134.134 2007-04-06 23:22:11 |
김삼이 이문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분 글/강의문 읽어보니 저로선 영 흥미가 안 가네요. 좀 유명해지겠다는 제스처로밖엔 해석이 안됩니다. 한 가지 그분에게 충고하고 싶은데..한국적 성경 읽기 이전에 히브리적 성경읽기, 초기교회적 성경읽기부터 시작돼야 하지 않냐고요. 물론 그 이전에 성령의 영감(inspiration)/조명(illumination)/기름부음(anointing) 에 사로잡혀야 하고요. 신학적 방법론만 갖고는 '따갈따갈'한 신학적 해석으로 끝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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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 - XXXXX7.134.134 2007-04-06 09:46:10 |
이문장 교수의 책 소개문들을 대강 읽어봤습니다. 그 분이 한국적 감성과 직관을 강조하니 저도 책을 읽기 전, 소개문에서라도 감성과 직관으로 좀 느껴 보려고요..그 분의 주된 관심사는 신학의 탈서구화와 한국적 토착신학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그리고 '세계적'이란 형용사에 저는 충분히 치였기 때문에 그 분의 명성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성경과 신학의 '한국화' 지향성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그 까닭은 땅에서는 한낱 나그네인 우리에게 '한국성'이 중요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성경읽기에 한국적 칼러를 입히겠다..무슨 취향 같습니다만..[이것은 한국적 찬송가가 필요하다는 얘기와는 또다른 문제입니다.]
천국문화엔 국적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는 한국인이기 전에 천국인들입니다^^. 아브라함과 그 후예들은 히브리성보다 나그네성에 치심했죠. 우린 하늘의 성을 향해 갈 길만도 바쁜 사람들입니다. 한국문화..아름답습니다만, 기독교와 한국성, 너무 연결시키지 마십시다. 그러나 한글은 배워두면, 1세-차세대 간의 상호이해와 한국을 알려는 사람들에겐 도움되죠. 예컨대 한글 모르는 한국인 변호사, 미국인들에게 푸대접 받을 수 있습니다. 얼굴색에서의 기대감과는 다르다는 것이죠^^. 자녀들에게 한글, 꼭 가르치십시오. 한글-세계적으로 우수한 언어이죠. 성경의 (한국적이 아닌) "한글스러운" 번역..꼭 필요합니다. 한자스러운 것보다.. 그러나 태권도는 고단자 될 필요 없습니다. 고단자가 되면 뉴에이저가 되기 십상이니까요. 기/정신집중..불 위로 걷기, 자기극복..모두 뉴에이지의 코드입니다. 뉴에이저와 동시에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분들이 계신데 착각은 자유입니다만..크리스토와 벨리알은 결코 조화되지 않습니다. 기독교를 택하든 뉴에이지를 택하든 양단 간 하나의 선택이 있을 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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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 - XXXXX7.134.134 2007-04-06 09:30:47 |
"그리고 최근(2006년 12월)에 발간된 이문장교수의 '한국적 성경읽기 이해'(제목이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만)라는 책을 혹시 읽어보셨는지요? 이 책과 그 외에 이교수께서 쓰신 책들에 나타난 그 분의 신앙과 신학 사상에 대해서 평을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모든 주문에 다 일일이 응하긴 어렵지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저마다 내노라는 책들을 써내니..몽땅 읽어주기도 그렇고^^. |
김삼 - XXXXX7.134.134 2007-04-06 09:28:04 |
집단회개를 촉구하는 대표적인 말씀은 다음 구절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연대기b 7:14. 개역 개정). |
김삼 - XXXXX7.134.134 2007-04-06 09:23:34 |
겨자씨님. '전체회개'란 아마도 '집단회개'가 더 정확한 용어일 것 같은데요. 집단회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이죠. 예컨대 미쯔파 금식회(슈무엘a 7:6), 수문광장 회개(네헤미야 9장 참조) 등이 있죠. 평양 부흥도 장대현교회의 집단회개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앞서..연전에 한 개인(감리교 미국 선교사)의 회개로 불꽃이 당겨졌습니다만. 길선주 장로/목사의 회개로 이어졌고 그 다음 전체 한국교회의 회개로 연결됐죠. 그러나 '전체회개'라고 해서 개인들의 죄까지 도매금으로 다 자동적으로 사해지는 완전회개라고는 할 수 없고, 더구나 전체회개라고 해서 전체구원(보편구원)의 길은 될 수 없겠죠^^. |
김삼 - XXXXX7.134.134 2007-04-06 08:58:31 |
제 글을 애독하시고 아껴주시는 new road님, 감사님..고맙습니다^^. 그렇게 그쪽으로 생각해 보렵니다. 그런데 두 님들처럼 꼭 읽을 분은 또 다 읽으시더라고요. 비록 댓글/옛 데스크에 남겨둬도 말입니다. 진리의 목청을 갈망하는 분들이죠. |
감사 - XXXXX11.166.171 2007-04-06 07:10:47 |
안녕하세요 목사님 ^^ 목사님의 글을 읽고 많은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예전 '김삼목사의 데스크'를 읽다보니 그냥 묻히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내용들이 많습니다. 목사님의 노력과 열정으로 현재 '진리사랑'은 조회수가 굉장한데 예전 글들은 많이 읽혀지지 않았더군요. 적절하게 수정,보완해서 예전 글들을 다시 소개시켜주시면 많은 분들에게 큰 도움을 주실 수 있고 활발한 질문,응답,토론도 이뤄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new road - XXXXX8.76.136 2007-04-06 00:33:18 |
김삼목사님, 아래 목사님께서 댓글로 쓰시는 글들, C.S. Louis 의 글과 대속론에 대한 글들을 '진리 사랑' 칼럼에 바로 올리면 좋겠습니다. 그 귀한 글을 위의 제목에 대한 댓글로 올리니까 많은 분들이 읽지 못하게 되는 아쉬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2006년 12월)에 발간된 이문장교수의 '한국적 성경읽기 이해'(제목이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만)라는 책을 혹시 읽어보셨는지요? 이 책과 그 외에 이교수께서 쓰신 책들에 나타난 그 분의 신앙과 신학 사상에 대해서 평을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겨자씨 - XXXXX.100.199 2007-04-05 22:52:35 |
목사님,
질문이 있는데요, 전체회개라는것이 있나요? 어렴풋이 피터님과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의중은 알것같은데 그게 가능한것이고 또 성경적인가요? 평양부흥이 전체회개의 예 일수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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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 - XXXXX7.134.134 2007-04-05 22:04:05 |
별다른 댓글이 없기에..수난주간을 묵상하며..계속 대속론에 관해 씁니다.
앞서 직전칼럼 댓글에서 현행찬송가 40장(3절) 번역 과정과 연루된 진보주의(현대주의/자유주의)자들의 소위 '도살(장)신학론'(Slaughterhouse theology theory)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저는 자료/정보를 제공하기 전 먼저 한국 자료 유무를 검토하는 버릇이 있습니다만, 이 방면의 자료는 한국 웹엔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영문자료 조차 이젠 극히 희귀합니다! 따라서 이 댓글은 독자에게 귀한 정보가 될 터입니다. 자료 일부분은 데브러 뎀브러스키(DD) 변증가가 한인교계를 위해 필자에게 특별제공한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DD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1922년 진보주의 목회자/신학자인 해리 에머슨 포즈딬이 그의 설교 '근본주의자들이 이길 것인가?'란 설교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포즈딬은 바로 뉴욕 맨해튼 리버사이드처치의 초대 목회자였죠. 리버사이드교회는 헏슨 강변에 거나하게 우뚝선 그 편종(캐릴런) 종탑처럼 예나 이제나 미국 진보주의의 온상이며, 현대주의 최전방에 우뚝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건립에 큰 힘을 보탠 사람이 바로 문제의 라커펠러 가문이죠. 라커펠러센터가 자리잡은 맨해튼 49가 일대는 라커펠러 가의 총본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5년 빌리 그래엄 전도대회도 바로 그곳에 임시본부를 두었었죠! 라커펠러가는 릭 워런과도 상당한 연계가 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죠.]
"근본주의자들이 교회주변에 말뚝 박고 사선을 쳐놓고 그 안에서 운전하면서 합의한 조건 밖에는 통과하지 못하게 하는 모습,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어떤 특정 이적들, 특히 우리 주님의 동정녀 탄생 등의 역사성을 믿어야 하고, 물론 현재 우리 수중에 없는 성경원본의 다량이 마치 속기사가 필사하듯 정확무오하게 필사됐다는 특별한 영감론을 믿어야 한다고, 대속적 죽음으로 흘려진 우리 주님의 피가 소원했던 어느 신을 달래어 돌아오는 죄인을 환영하게 될 수 있다는 특별한 대속론을 믿어야 한다고, 우리 주님이 하늘 구름을 타시고 천년왕국을 건설하시러 재림하심을 믿어야 한다고 그것을 하나님이 역사를 가치있는 대단원으로 이끄시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죠. 그런 것들이 교회 주변에 쳐진 교리의 사선을 표시하는 말뚝의 일부랍니다. "
포즈딬은 피의 대속 교리를 '도살(장)신학' 그리고 '문명 이전의 야만성'이라고 규정한 장본인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선분은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신 것은 완전한 섬김과 희생의 본보기라로 봐야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아드님을 십자가의 잔혹한 죽음으로 보내신 것은 야만적이며 일어날 수 없다는 발상입니다. 그래서 포즈딬(과 그의 지지자들)은 크리스토를 우리의 죄의 형벌의 대속물이심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죄의 삯은 사망이죠(롬6:23).
포즈딬이 근본주의를 빗댄 이런 주장은 연전에 릭 워런이 근본주의를 빗댄 태도와 일맥상통하는 바 있습니다[필자의 글 '릭 워런은 근본주의의 적?' 참조].
더 흥미로운 점은 관상기도에 탐닉하는 미국 관상가들(contemplatives)과 떠오름교회(emerging church) 지도자들이 포즈딬과 동일한 견해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금주는 수많은 교회들이 수난/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시즌이죠. 그런데 수많은 미국교회들이 관상영성/떠오름영성이 뭘 의미하는지조차 모르고 한결같이 수난/부활절 행사를 갖는 현상은 포즈딬이 근본주의를 재미있게 지켜본 것 이상으로 흥미롭답니다^^.
과연 포즈딬의 말처럼 예수님이 정말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이 단순히 섬김과 희생의 행동이었고 사람들이 따라야 할 본보기였을 뿐, 인류의 죄를 위한 대속적 지불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왜 수난과 부활을 기리는 것입니까? 그들에겐 하등 의미 없는 헛수고일 뿐입니다. 관상/떠오름의 영성과 관습에 매달린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재검토해 봐야 할 때입니다. 관상영성에 매달리면서 한편으로 대속을 부인함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한 채로 수난/부활절을 지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과연 관상가들이 얼마나 크리스토의 대속을 헛되게 받는지 살펴 볼까요?
20세기 관상영성의 선구자인 토머스 멀튼 수사에 관한 책, '불 위의 침묵'을 쓴 카톨릭 관상가 윌리엄 쇄넌(Shannon)은 1991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분은 아들의 피를 최후의 한방울까지 추출해냄으로써 죄로 기인된 그 분의 정의로운 분노를 달랠 수 있게 하신단다. 은혜로움과 혹독한 분노 사이에 분위기가 왔다갔다 하는-아직도 수많은 신자들에게 너무도 친숙한- 이런 하느님은 참 신의 한 캐리커처(희화)이다. 이런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예수 크리스토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그 신이 아니다. 이는 예수님이 '아빠'(Abba)라고 부르신 그 신이 아니다."
카톨릭 관상가 브레넌 매닝은 또 어떻습니까? 그는 책 '모든 것 너머'(2003년)에서 그는 윌리엄 쇄넌을 거의 똑같이 카피한 듯한 말을 합니다. "은혜로움과 사나운 분노 사이에 왔다갔다 하는 신, 죄 때문에 불거진 그의 정의로운 분노를 달래려고 자기 아들에게서 마지막 피방울을 뽑아내는 신은 예수 크리스토에 의해 그 안에 계시된 하느님이 아니다. 예수의 하느님이 아닌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누굴 카피했을까요? 연대로 보면, 후자가 전자를 카피했을 텐데 피차 저작권 고소가 없던 걸 보면 서로 짜고 입을 맞춘 모양입니다^^.
대표적인 관상가/떠오름영성가인 브라이언 매클러렌은 또 어떨까요?
떠오름교회 지도자인 매클러렌은 2006년 1월8, 12일의 인터뷰에서 지옥교리를 '하나님을 위한 거짓 광고'라고 낙인 찍고 크리스토의 몸과 십자가 교리를 현저히 욕보였습니다. <a href=http://www.understandthetimes.org/mclarentrans.shtml target=_blank>http://www.understandthetimes.org/mclarentrans.shtml</a> 참조(인터뷰 전문) 물론 그는 과거에도 그렇게 해왔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지옥에 대해 이런 식으로 주절거린 사람들은 이 둘 뿐 아닙니다. 다종교영성 단체 '리빙 영성 교사 프로젝트'의 멤버이자 '기독교의 재상상'의 저자, 앨런 존스의 말을 빌려 보죠.
"예수의 희생은 분노하는 하나님을 달래기 위한 것이다-형벌대속이 바로 이 사악한 교리의 이름이다."
이제 다름 아닌 릭 워런은..말입니다. 그의 2003년 설교에서 [워런도 물론 관상가입니다. 소위 '호흡기도'를 유달리 강조하죠.] 과거에 천국/지옥 사이에 개인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는 교리를 가장 위대한 것으로 믿어왔던 자신이 '잘못'이었다며 예수 크리스토를 누구와 나누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교회의 시작을 돕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 그래요..? 착잡하군요.
'알파' 영성의 선구자, 니키 검블은 뭐라고 했을까요? "온 지옥은 한 개 자갈보다 작다. 한 분자보다 더 작다." 표현이 참 재미있죠? 결국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공의가 자갈보다 "작다"는 암시가 아닐까요?
'위대한' 관상가, 리처드 포스터의 제자이자 그와 쌍벽을 이루는 댈러스 윌러드 역시 지옥교리를 우습게 보면서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죠. 마치 자기가 사랑의 신(아프로디테?)인 양.
이들은 성경진리와 기독교의 '좁은 문'(마7:13,14, 요10장)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마디로 성경진리에 너무 무식하거나 알아도 무시하는 무식/무시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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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 - XXXXX7.134.134 2007-04-05 11:22:17 |
우리는 C.S. 루이스처럼 주님의 수난을 '회개'로 착각해선 안되지만^^.. 우리의 회개는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려는 의식이 따라야겠죠. 그래서 수난을 더욱 묵상하고 싶습니다. 금주는 전통 교회력에서 수난주간으로 지키는 시즌이죠.
과연 내겐/우리에겐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려는 의식이 있을까요? 주님의 수난 당시 제자들의 행각을 반추해보며 우리들의 거울로 삼기를 바랍니다.
예수 크리스토는 3년간 전적으로 자신을 따르며 훈련을 받아줄 제자들을 택하여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이미 수난 전,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가 됐습니다. 그런데 제자들 중 십자가 아래-마지막까지 따른 제자는 사도 요한 뿐이었습니다. "그대들이 다 나를 버릴 것이다"라고 주님이 예언하신 대로였습니다.
주님이 가장 듬직하게 여기시던 페트로조차도 '스승동반 절대고수'를 장담해놓고 칼을 빼 휘두르는 용감무쌍함도 한때 뿐, 한낱 여종 앞에서 KO패 했습니다. 주님의 측근 트리오의 하나였던 요한의 형 야코보도 동산에서 처음부터 뺑소니를 쳤습니다. 물론 주님은 이 모두를 미리 내다보셨습니다. 또 이스카리옷 유다가 배신할 것을 아시고도 택하셨습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이 언젠가 혹 주님을 배반/부인할 수도 있음을 아십니다. [배신해선 안되겠지만 그렇습니다.] 아시고도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배반/부인까지도 주님의 책임은 아닙니다. '절대주권'론은 그렇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카리옷 유다와 페트로처럼 배반한 뒤 반추로 그칠 것인지 회개할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트리오는 오순절 성령강림 후 위대한 지도자가 됩니다. 야코보는 스테판에 앞서 첫 순교의 핏빛 장미꽃을 피웁니다. 왜 비겁하기만 하던 그들이 이다지도 싹~ 변했을까요? 바로 성령의 권능 때문입니다! 우리를 비겁과 나약의 수렁에서 끌어내어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게 하는 힘은 오로지 성령의 권능뿐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자신은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에 굳게 붙들리면 끝내 주님의 수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고 은혜 받고 성령 받고 은사를 받고도 주님을 배신하는 자가 있습니다. 박태선이 그 전형적인 예죠. 그는 큰 능력도 행했지만 결국 성경책과 주님을 함께 짓밟았으니까요.
신사참배/공산당의 박해 등은 우리의 주님배신 여부의 바로미터 였습니다. 그런 바로미터는 늘 미래의 여기저기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과의 첫사랑에 매달려야 합니다. "그대는 날 사랑하는가?"라는 주님의 물음에 anytime '예!'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날 사랑하셔서 택해주시고 은혜를 베푸신 그 주님을 결코 배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보다 주님을 택해야 합니다. 세상 안일보다 세상 평화보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택하고 누려야 합니다. 선택이 문제입니다.
카리옷 유다를 우리가 쉽게 비판하고 욕하지만, 우리 자신 유다가, 아니 그보다 더 나쁜 '넘'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하지 말고..우리는 잘못된 선택과 배신까지 하나님께 책임을 떠맡길 수 없습니다. 절대주권을 믿던 장로교인이나 신인동력을 믿던 감리교인이나 신사참배 때 다들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리고도 배신하는 줄조차 몰랐고 아니 알기조차 거부하다가 근래에야 뒤늦게 깨달아 왔습니다. 목숨을 앗기기가 무서워서였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성경을 붙들고 믿음을 지키는 한 북한 할머니 성도가 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둑기(죽기) 밖에 더 하갔소?" ['모퉁이돌선교회' 이이삭 목사의 전언이었죠.]
요즘 성경 진리를 벗어나는 '배도자'가 늘고 있습니다. 말씀의 진리를 그리도 가볍게 벗어날 수 있다면 주님을 배신하는 거야 시간 문제가 아닐까요? 신학은 머리를 굴리는 학문이고 현대 영성은 심리를 좌우하지만 신앙은 가슴 속 깊이 심령으로 믿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의존해야 합니다.
주님을 끝끝내 배신하지 말고 그 분의 수난에 동참합시다. 유다처럼 안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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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 - XXXXX7.134.134 2007-04-05 11:06:26 |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우선 저는 어떤 위치/자리 같은 거, 전혀 탐하지 않습니다. [교계엔 그런 거 무작정 좋아하는 분들, 꽤 많더라고요^^. 사사건건 앞에 나서고 얼굴 내미시는 분들..남보다 자신을 낫게 여기는 분들..God bless them^^.]
그러나 예루살렘교회에서 주님의 동생 야코보가 그랬듯 어떤 추진자/리더는 필요하겠죠.
그리고 정말 성경적인 회개운동, 절대 필요한 시기입니다! 온 교회와 성도가 신음/탄식하고 성령 자신께서도 탄식하고 계시죠. 그런데 정작 지도자들은 이번 일로 금식기도 같은 거, 하지 않고 있습니다. 소수의 정예 기도자들은 있는지 몰라도..
어쩌면 더는, 교계에서 지도자의 비리 같은 거 논란이 되지 않길 바라는지도 모르죠. 빨리 불똥 끄고 잦아지길 원하는지도.. 솔직히, 교계단체나 노회에서 목회자/지도자들의 간음 문제, 눈치보며 쉬쉬~ 하는 판국이니까. 어디 ㅇ목사님 뿐이겠습니까. 어디 간음 문제 뿐이겠습니까? 재정비리/폭력협박/이민사기..
아무튼 이 모든 문제를 우리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꿇어 엎드려 통회자복하는 무리가 있어야겠죠. 성령께서 그 무리를 기뻐하시면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고 그렇게 되면..불꽃이 당겨질 수 있죠. 저도 그런 무리의 하나이길 염원합니다. 이를테면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천인처럼..
한 가지..성령께서는 우리 예상 밖으로 초자연적으로 일하십니다. 성령님의 모든 것을 받을 자세가 될 때 기름부음으로 역사하십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성령님의 모든 것'이란 그 분의 권능과 은사를 포함합니다. 단지 회개만이 아니라.. 성령님은 젠틀하셔서 그 분을 환영하는 곳에만 충만히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그동안 부르짖어온 대로 기성교회 목회 체제에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앙집권제, 피라밑구조/CEO/대왕 형 1인중심 체제는 점차 붕괴돼야 합니다. 구.심.점.을 잃지 않는 한도 내에서..초기교회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그리고 파괴적이고 획일적인 비판/부정 일변도로는 아무 것도 얻는 게 없습니다. 개혁은 자기 양심의 소리부터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가슴팍부터 찢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개혁해도 늦지 않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 이곳에 적극 댓글 올려주시고 언제라도 제게 [아멘넷 경유] 이메일로 연락주세여! 모종의 욕심 없는 순수한 분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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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 - XXXXX7.134.134 2007-04-05 10:30:57 |
음....... 피터(페트로?) 형제님. 흥미로운 제안이십니다. 조용한 불꽃 같은 회개 모임..정말 매력적인 코드입니다. 현 교계는 혁신-영적혁명-이 필요하며 물론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겠죠. 그런데 제가 과연 그 '리더'인지, 주님의 뜻인지는 묵상하고 기도해 보렵니다.
님의 글 뒷 부분은 좀..궐기대회 같은 걸 연상시킵니다^^.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방법론이 어떤 것인지를 분별해보고 선호하심이..? |
peter - XXXXX7.114.233 2007-04-05 10:02:32 |
김삼형제님 형제님의 견해에 적극 찬성합니다.
모든 교리 위에, 교단헌법 위에 성경이 있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독단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요
세속화된 교회에서 개혁은 언제나 실패하기 쉽고 혁명적 변화는 밑바탕부터 (교회에서는 평신도) 시작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상황은 성경적진리와 영성이 강한 리더가 부족하여 지지부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소견으로는 자신의 모든 지위를 벗어버리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평신도위치에서 진리를 수호하고 교회를 본래 성경적 모습으로 회복하는 요한 같은 성도가 필요합니다.
요한에게도 제자가 있었듯이 제자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형제님 먼저 회개하신다는 말씀에 근거하여 이 사건이 장대현교회의 부훙의 계기, 불꽃이 되기 위해서 촞불기도회 같은 집회가 어떠할까요? off-line에서 장소를 정하시면 이 부끄러운 기독인의 모습이 다른 사람, 특별히 타락한 목사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제인 우리 모두의 회개할 제목이라 공감하는 성도들이 모이고 이 모임을 통해 주님, 당신의 몸인 교회를 건강하게 회복시키실 것을 믿습니다.
행동하는 진리 수호자님 발기하심이 어떠하실런지요 |
김삼 - XXXXX7.134.134 2007-04-05 01:21:38 |
C.S. 루이스 단평을 1 꼭지 추가했습니다[직전 칼럼 아래 댓글 참조]. 그의 종말론에 관해섭니다. 독자들에게 도움되시길.. |
김삼 - XXXXX7.134.134 2007-04-05 00:55:35 |
저의 부족한 소견으로는.. 한글개역 개정판(대한성서공회)이 그런 대로 현재로선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됩니다. (한국)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측이 최근 쓰기로 결정했죠. 그러나 구절마다 다를 수 있고 모든 번역이 장단점이 있겠죠. 단, 천주교의 '새 성경'(한글), 여호와의증인의 '신세계'(NWT)역, (지방)교회의 '회복' 역 등은 정말 조심해야 하고요.. 각각 어젠다가 있으니까요. |
한신도 - XXXXX.199.109 2007-04-05 00:52:02 |
어떤 번역을 권하십니까? 정확하면서도 현대인에 이해가 쉬은 번역으로요. |
한신도 - XXXXX.199.109 2007-04-05 00:40:39 |
김삼님.
몸(사르코스) 의 뜻이 죄성(sinful) 으로 잘못 번역된것입니까?
몸 (physical body) 과 죄성(sinful nature) 은 엄연히 다른데 이것참 큰일이군요.
번역마다 이런점이 있는줄 몰랐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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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 - XXXXX7.134.134 2007-04-04 23:59:36 |
자정이 넘었군요. 잠이 잘 오질 않기에^^..
"저는 어려운 말을 써가며 뜬구름식의 설교는 질색이거든요…어려운 말은 유식을 과시하는것이고 뜬구름은 자기자 빠져나갈 구멍을 항상 준비한듯 합니다." > 한신도님의 위 말씀에 속이 서늘합니다. 저도 가끔은 그럴 수 있었기에..저라고 신은 아니니까요^^. 가만 있자..그런데요. 님이 인용하신 NIV역을 보니 평소 눈여겨 보지 않았던지.. 이 부분의 번역은 매우 잘못돼 있군요. 역시 NIV는 문제가 많습니다. 이 구절은 결정적으로 오역됐군요. [송구하지만]..이 구절의 그리스어 원문은 이렇습니다.
파라두나이 톤 토이우톤 토 사타나 에이스 올레트론 테스 사르코스, 히나 토 프뉴마 소테 엔 테 헤메라 투 퀴리우 (예수: TR/수용원문에만 있음).
제가 가진 3가지 다른 그리스어 원문이 끝부분만 빼놓고 똑같습니다. 되도록 원문 어순대로 직역하면.. "그런 사람을 그 몸의 파괴를 위해 사탄에게 넘겨주는 것은, 그 영이 주님(예수)의 날에 구원받기 위함입니다." 식이 됩니다.
여기서 분명히 사르코스(몸)는 뒤에 오는 프뉴마(영)와 서로 대립되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NIV식으로 하면 '그 죄성의 파괴를 위해..영이'가 되는데 논리상 말이 안됩니다. 이것은 NIV 번역진이 이 구절의 영적 특성을 몰라서일 것입니다.
사도 파울이 말하는 의미는 사탄의 실형 집행(=죽을 질병 등 육체의 파괴)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욥의 믿음을 테스트하기 위해 사탄에게 그 몸을 내어주도록 허용하신 적이 있습니다. 단 욥의 생명만은 부지하도록(욥2:6). 그러나 여기선 목숨까지 포함합니다.
파울은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신자의 권세로, 중죄자를 사탄의 손에 넘기기, 즉 사탄의 재량에 맡긴다는 뜻으로 썼습니다. 여기서 NIV는 신학적인 뒤틀기지, 원문대로의 번역이 아닙니다. 아주 잘못된 번역이군요. NIV는 현대어법엔 맞지만 이런 식의 뒤틀기가 잦습니다. 여러 영문 번역을 비교해보니 대부분의 번역이 유사한데, 유독 NIV와 몇몇 극소수의 번역만이 그렇군요. NIV에 비교적 가까운 번역은 God's Word(GWT) 뿐입니다. "hand such a person over to Satan to destroy his corrupt nature so that his spiritual nature may be saved on the day of the Lord."(GWT).
둘 다 매우 잘못된 번역입니다. 한신도님을 통해 이런 사실을 알게 돼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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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도 - XXXXX.199.109 2007-04-04 23:13:36 |
일주일에 한번씩 먼지를 털던 성경책을 드디어 열고 말씀을 읽기 시작 했읍니다. 그 동기가 된것은 김삼님이 댓글을 통해 루이스를 비평하시길래, 도대채 루이스가 누구이고 무슨말을 쓴 사람인지 궁금해서 여러 싸이트도 찾아보고 성경과 대조해 보고싶은 마음이 들었읍니다. 여러 사상가를 나열해주신 김삼님과 여러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ㅇ분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이 있는것은 우러러 믿어왔던 사람에 대한 너무도 큰 실망감이기 때문이것같읍니다. 저도 인간을 존경할 마음이 뚝 떨어질 정도 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우상이 있지요: 돈, 명애, 지위,무사안일,성욕, 美,장수 등등 아마 ㅇ분은 성욕이 이성을 눌러 버린 모양입니다. 자신이 간음한적이 없다하여 잘난척 할것도 없읍니다. 어떻한 욕망이 나를 누를까봐 두려울 뿐 입니다. 김삼님의 ‘내가 노회라면’ 에 아주 구체적인 제안은 적극적인 문제 참여 의식같아서 존중합니다. 저는 어려운 말을 써가며 뜬구름식의 설교는 질색이거든요…어려운 말은 유식을 과시하는것이고 뜬구름은 자기자 빠져나갈 구멍을 항상 준비한듯 합니다.
오늘 읽은 성경구절은 이번사건을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었읍니다. …hand this man over to Satan, so that the sinful nature may be destroyed and his spirit saved on the day of the Lord (1 Corinthians 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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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 - XXXXX7.134.134 2007-04-04 21:27:39 |
신자들 중 상상 외로 '죄인의식'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고 나서도 자신은 여전히 '죄인'이라는 것이죠. 목회자들 중에도 그런 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죄인이 어떻게 죄인을..?" 판단할 수 있냐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자신이 죄인의식을 가진 이상 죄인을 판단할 수 없죠. 말아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죄인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하기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같은 죄인이라는 동지의식(?)을 갖고 더 접근하게도 됩니다.
한 번 물어 봅시다. 거듭난 신자가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죄인도 하늘 보좌에 앉히울 수 있습니까? 에페소2:5,6을 한 번 읽어보십시오. 크리스토께서 의인으로 만들어 주셨는데도, 여전히 죄를 짓는다 해서 죄인입니까? 그 분이 부여해주신 신분(status)이 그리도 허술하고 엉성한가요? 죄인도 아니고 의인도 아니고..아니면 항상 죄를 짓고 늘 죄의식 속에 살기에 죄인입니까? "모든 죄인 눈 어두워 보지 못하네" 란 찬송가 구절은 어쩐 일입니까? 눈 어두워도 볼 수는 있습니까? 물론 죄인이 결코 죄인을 판단할 수야 없죠. 죄인의식을 지닌 이상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의인들에겐 신령한 판단이 있는 법입니다. 사도 파울은 "나는 죄인들 중 괴수라"고 고백했어도 음행한 자들을 과감히 판단했습니다. 파울의 모순입니까?
죄인의식을 지니고 여전히 모두들 죄인임을 강조하는 목회자에게 배우는 성도들..주일마다 죄인의식 속에 예배해야 하며, 평생 죄의식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듭니다. 그럼 왜 크리스토께서는 하릴없이 우리를 의롭게 해주실 필요가 있었나요? 아예 안 하시고 말지..그 분이 흘린 피가 그리도 헛됩니까? 죄인인지 의인인지 알 수 없게 애매모호한 것이 그 분의 대속의 결과입니까?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확인하십시오. 님은 아직 거듭나지 못하셨습니까? 그럼, 아직 죄인이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라고, 주인이라고 부활하셨다고 입으로 시인하십시오(롬10:9~10):). 그럼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거듭나셨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혹 죄를 지어도, 본질상 님은 의인이십니다. 죄인의식을 버리세요! 예수 크리스토는 님의 어제와 오늘, 앞날의 모든 죄를 다 십자가에서 말끔히 씻어주셨습니다. 죽은 행실은 회개할 필요조차 없습니다(히 6:1). 오늘 지은 죄는 지금 회개하시면 될 거 아닙니까(요한서신a 1:9)? 그래도 님은 여전히 죄인이십니까? Suit yoursel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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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 - XXXXX7.134.134 2007-04-04 17:44:45 |
제가 댓글 다는 데 대해 자꾸들 불만이신 모양이신데..불만있으신 자신들도 부지런히 다시고요. 제 독자들은 대부분 제 댓글을 좋아하시더라고요^^. 직전 칼럼 댓글로 계속 루이스 비평을 올리고 있습니다만, 심도 있는 내용이니 참조하시길.. |
김삼 - XXXXX7.134.134 2007-04-04 17:21:31 |
^^. 글쎄님. 자주 오십시오. 별 소용 없는 적개감은 좀 버리시고요. 댓글은 자유가 아닌가요? 만 번을 달든.. 모 노회원이신가 했더니 그보다는 '복음과희망'을 주로 출입하는 분이시군요. 제가 아래에다 제아무리 객관적으로 타당한 댓글을 달아도 전혀 고려치 않으시고 마냥 적개심으로만 받아주시니 별 할 말이 없군요. 역시 님은 신자답진 않으십니다. 그러니 님이 저를 공격하시든 뒤집어 놓으시든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님 자신이 크리스토의 의를 행치 않는데 남의 불의(?)를 아무리 꾸짖어보신들 보복 차원 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것이 크리스토의 뜻입니까? 그리고 기왕 말이 나왔으니..당초 제가 익명대상으로 지적했던 'xxxxx'(=G&H)에 대해 제 주견은 여전합니다. 울분과 격분, 부정적 비판 일변도를 벗어나 승화하지 않고는 그 분들이 지향하는 개혁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입니다. 제가 이곳 댓글로써 했던 지적은 틀린 내용이 아님을 그분들 자신이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제가 했던 비판에 대해 별 후회가 없습니다. 저를 지적하시려면 성경말씀과 이치에 닿게 지적해 주십시오. 단지 비판했다고 해서..이 김삼에 대한 얼토당토 않은 무조건적 적개심은 버리시고요(아무리 옳은 얘기를 해도 적개심 일변도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거기선 이웃비판만 원하시지 이웃사랑은 결코 원치 않는다는 겁니까? "목회자들은 다 똑 같은 족속"이라고 매도하실 겁니까^^? 우리, 건전한 정신을 지닙시다. 건전한 정신은 상식 차원을 넘어서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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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 - XXXXX6.175.100 2007-04-04 17:19:00 |
글쎄님의 아이러니는, 김삼님께서 아이피주소 어쩌구저쩌구 하고난 후에 님의 문체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진작에 성의껏 쓰시지 그러셨습니까?
자기 주장이 아무리 정당하고 옳다고 하여도 문체가 정당하지 못하면 아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지요....
한 가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글쎄님은 무엇을 염려하시길래 김삼님의 글에 댓글을 다셨는지요?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은 누구를 염려하는 마음에서 쓰신 것인지 궁금해지는군요. 자기자신을 위함인지, ㅇ 전목사님을 위함인지, 김삼님을 위함인지, 독자들을 위함인지, 교회를 위함인지, 기독교 전체를 위함인지.... |
글쎄 - XXXXX3.15.158 2007-04-04 17:09:03 |
혼자 글쓰고 혼자 댓글들 주루룩 달고 남 교단법까지 들먹이고
복음과 희망 싸이트까지 쫒아가서 자기 변명? 방어하느라 참 바쁘고 수고가 많네요
그런데 남의 아이피 어쩌고 하는건 촌사람 겁주려는건지 좀 지나친것 같지않나요?
바쁜분 위해 나라도 더이상 댓글을 달지 않는것이 도와드리는것 같아 마지막 글 올립니다. |
김삼 - XXXXX7.134.134 2007-04-04 15:10:05 |
사실 이런 글(아래 두 댓글)까지는 안쓰려고 했습니다. 일부러 칼럼에서도 뺐었습니다. 그러나 '글쎄'님 같은 분의 불균형적인 견해가 제게 부정적인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게 기폭제가 됐습니다. 저도 이젠 정말 열 받습니다~! |
김삼 - XXXXX7.134.134 2007-04-04 15:02:26 |
글쎄님(노회원?)을 비롯한 ㅇ목사 동정론자들께: 님들의 동정논리에 따르면..ㅇ목사만 주로 불쌍하다는 얘긴데..
1. ㅇ목사는 두 여인과 최다3년간 남의 눈을 요리조리 피해다니며 밀애(?)를 즐기고도 하나님 눈은 피하지 못했으며
2. 그 바쁘신 와중에도 최소 3년간 모 TV방송과 모 라디오 방송 등 언론을 통해 설교사역을 했고 상담 전화번호까지 달았습니다(그 상담에 여성이 응했다면 또 무슨 일이 생겼을지..?).
그런 걸 버젓한 '위선사역'이라고 합니다.
3. 그 교회에서 최소3년간 그 버젓한 위선 사역을 했고 그 웹사이트에도 그 설교를 올려가며 남을 교훈했어도 그 교회는 그 정도 선에서 그치겠다니..
4. 다 알다시피 노회에서도 대표적인 어른 구실을 했습니다. 차기 총회장 승계 후보일 정도로..총회서도 위선사역을 한 셈이며
5. 뉴욕교계는 아멘넷을 통해서도 그분의 활약상이 널리 알려졌으니 더 말 않겠습니다만..
그런데도 그분 쪽으로만 계속 '아픔'이 간다는 건 뭔가 의식상 잘못돼도 대단히 잘못된 게 아닐까요? 솔직히 필자도 아픔과 엄청난 환멸을 겪었습니다. 평소 존중해온 한 분이거든요.
필자의 아픔과 환멸은 누가 물어주며 보상해줍니까? 하는 수 없이 혼자 삭힐 일이 아니겠습니까? ㅇ목사의 '아픔'만 논하는 동정론자 여러분들, 귀하들은 의식있는 지성인인가요? 아니면 ㅇ목사 같은 위선자들인가요? 아니면 자신도 언제고 그런 자리에서 동정을 받고 싶은가요? 누구의 아픔만 아픔이고 다른 이들의 아픔은 아픔이 아닌가요?
뭔가 좀 균형 잡힌 논리가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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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 - XXXXX7.134.134 2007-04-04 14:29:18 |
칼럼에서 뺐던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총회법/노회법에 있든 없든, 성경적으로 따져볼 때 일부 교단들의 '무임목사'제는 없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교회의 상회인 노회가 무임목사를 차별 대우하는 비인간적인 차별법을 혐오합니다. 교단이나 노회에서 이런 '합법적', 비성경적인 인종차별이 사라져야 옳다고 봅니다.
솔직히 무임목사 되고 싶어 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요? 특히 필자의 경우, 언론사역을 해오는 동안 하시라도 사실상의 '무임목사'라고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버젓한 총회 산하 언론기관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무임목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긴데 그런 식으로라면 원로목사도 사실상 무임목사가 아닙니까? 원로목사는 과거 공로 때문에 여전히 무임목사가 아니고.. 현재 버젓한 교회를 목회하지 않는 목사는 영원한 무임목사이고..법의 적용이 요상합니다.
그리고 무임이란 말은 담임목사나 현 실사역 외엔 아무 것도 사역이 아니라는 얘기니, 그런 사역이 아닌 사역은 다 무임무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되고 맙니다.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지 않았습니까? 무임목사는 기도도 하지 않는 것입니까? '유임목사'만 말씀과 기도에 전무합니까? 아니면 무임목사의 기도는 전무하는 기도가 아니라는 얘긴가요? 아니면 기도는 사역이 될 수 없다는 얘긴가요? 필자는 [자랑이 아니라 사실상] 현재 언론 사역 말고도 여러 모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으며 비록 정식 설립예배만 하지 않았을 뿐 현재 목회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형편상 안된 것 뿐입니다.
'무임목사'란 명칭은 그 어감상 특정 등록교회 담임목사나 부교역자가 아니면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노니는 사람 같은 뉘앙스를 풍기며 그런 사람은 목사가 아닌 것 같은 인상마저 줍니다. 무임목사라는 상태마저도 서럽거든, 노회법이란 것에 따라 노회 석상에서 차별대우하는 것은 어찌 더 아니 서러울까요. 본인이 당해보면 알 겁니다. "무임목사를 철저히 차별 대우하라.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니라"..뭐 그런 성경법이 있다면 몰라도^^.
그런데도 주님의 은총과 자비의 구현을 추구하는 교회가 회의 도중 무임목사의 선거권/피선거권/투표권 등 자격/무자격을 논하고 계속 특정인을 지명해 가며 무자격론을 상기시킨다는 것은 노회법 유무는 둘째 치고 올바른 기독교 정신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노회라는 건 '기득권층'이 맨날 잘 났다고 뻔질나게 얼굴이나 내밀고 말발이나 세울 게 아니라 그런 부조리부터 고치는 데 앞장서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도 언젠가 자칫하면 ㅇ목사 꼴이 될 수 있다는 경종의식을 갖고서 겸손하게"..
적절한 반론은 언제나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단 '글쎄'님 같은 비신사적 접근방식은 말고요^^. 그리고 "억울하면 제대로 목회해라. 나처럼 버젓이 좀 해 봐라" - 이런 식의 사고는 사악한 기득권적 사고이지, 의로운 온정은 아닐 터입니다.
회의석상에서 '무임목사' 가리기 제대로 하려면 모든 무임목사 명단을 다 칠판 위에 올려놓고 철저히 가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자신이 무임목사 시절이던 때를 되돌아보는 개구리 올챙이 시절 추억의 센스도 살려가며.. 한국엔 장애인차별금지법이란 게 생겼는데..교단에 무임목사 차별금지법이란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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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 - XXXXX7.134.134 2007-04-04 14:00:45 |
음..가만 있기 보다는 밝혀두는 게 좋을 듯 합니다. 현재 아멘넷 초기화면 한 가운데 뉴스 쪽에 올려진 제 글에 박힌 사진은 다른 분의 사진이며 제가 올린 게 아닙니다. 그리고 '글쎄'님의 희망과는 달리 저는 '아픈 사람들 염장 지르기'에 관심 없습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쓰셨으면 제게 아픔과 자극을 줬을 텐데^^.. 또..님의 글투는 크리스천 답지가 않군요. 거듭난 신자가 아닌 분으로 알고 그 차원에서 용서합니다. 익명으로 적당히 일회용 '악플'을 다시는 분들..그래도 IP주소는 언젠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주겠죠. 악플이 아닌 익명 댓글이야 무슨 상관이겠습니까만. [남의 글에 일회용 악플만 달고 두 번 다시 오지 않겠다는 생각도 사실 서글프며 불행스럽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
김삼 - XXXXX7.134.134 2007-04-04 13:52:09 |
글쎄요. 뭔가 크게 오해하신 것 같군요^^. 지레짐작이 사람 잡는 수가 있죠. |
글쎄 - XXXXX3.15.158 2007-04-04 12:54:55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3가지 첫째 불구경하기 둘째 싸움구경하기 세째 아픈사람 염장지르기 라던데 어디 그것 가지고 만족하겠나요
불에 구경만 아니라 기름을 끼얹고 싸움을 더 크게 붙이고 아픈 사람들 염장을 지르고... 김삼 너나 잘하세여
이일후에 바로 교단에서 모든 산하 노회교회들에게 기도하도록 한걸로 아는데... 나같으면 글쓰는 제사진이나 올려놓지 남의 사진 올려놓고 잘난척하진 않겠네여 김삼 너나 잘하세여 |
김삼 - XXXXX7.134.134 2007-04-04 10:57:54 |
교회 내 음행에 대한 사도 파울의 처결입니다. 코린토a 5장에서:
1. 교회 중에서 물리쳐 내쫓을 것. 2. 함께 모여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줄 것(영만 구원). 3. 누룩이 퍼지지 않게 할 것. 4. 사귀지도, 함께 먹지도 말 것.
요즘은 목회자들에게 대체로 공의보다 사랑에 치우쳐 현대적 응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간음 죄 짓다가 회개하고 거듭난 사람의 케이스들을 범례로 삼지 않나 싶군요. 목회자들에게 그런 배려를 한다면, 다른 직분자나 일반신자 연루자들에게도 똑같은 배려를 해야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을 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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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 - XXXXX0.12.100 2007-04-04 09:41:11 |
노회에 모여 징계를 결정한 목사님들께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이영희씨 – 하나님의 법에 따라 더 이상 목사가 아니므로 – 사건에 대한 노회의 처리를 보면서 참으로 암울하기 그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목사님들 – 한 두명도 아니고 수십명이 모여서 내린 결정이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것이냐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많이 알고 있다는 목사님들께서 어떻게 가장 기초적인 것도 모르고 있는지 참으로 의아합니다. 일반성도들에게 입으로는 잘 가르치면서 막상 자기 스스로 그 가르침을 적용하는 것은 그리도 어려웠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을 누구보다 사랑하시기에 우리 인간을 위한 최고의 법을 주셨고 또 몸소 그 법을 따라 스스로 낮아지셨습니다. 우리 인간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기에 그리고 누구보다 더 사랑하시기에 우리 인간에게 가장 적합하고 확실한 최고의 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법을 우리 인간이 따를 때에야 비로소 우리 인간도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보이며 실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스스로 생각하여 가장 좋다고 느끼는 방법은 가장 좋은 방법이 결코 아닙니다. 너무도 기초적인 진리가 아닌지요? 이런 기초적인 것조차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목사님들은 도대체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습니까 코로 듣습니까?
과거의 이영희 목사님은 이제 하나님의 법에 따라 이영희씨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제정하시고 보여주신 가장 큰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보여주시는 사랑에 목사님들의 알량한 사랑을 덧붙이지 마십시오.
구원받고 천국가는 것은 좋아라 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지소서 하고 기쁘게 받아들이고 선포하는 목사님들께서 또한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정하신 법 보다는 우리들의 법이 더 좋으니 내 뜻 대로 하겠나이다 하고 기쁘게 선포하시는군요….
구원에 대한 말씀만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치리를 위한 말씀은 내 뜻대로 해도 되는 아무런 말씀인가요? 목사님들은 구원에 대한 말씀에 대해서만 목사님들이고 치리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무신론자와 같은 사람인가요? 그래서 수십명이 모여서는 무신론자처럼 결정하고 각자 섬기는 교회에 가서는 목사처럼 치리를 논하시는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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