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 장 연구
1. 서 론 (1-17절)
1.서 문 (1-7절) 로마서의 주제를 기술한다. 그 이름을 위하여.복음을 위하여 부름받은 바울
Romans 접근벙법 1.주관적, 개인적 구운으로 봄 - 구원의 적용론, 개개인의 구원 (조직신학) 2. 중심적 객관적 구원 - 구속사적 접근.
* 차이접 * 개인구원론 : 창조부터 종말까지 모두 구원하는 하나님 구원(전체) 1:-3: 죄의 처리, 율법에서 소개하는 하나님의 한 “의”소개 이것을 “구속사”= 죄인을 그리스도를 보내어 으롭게 만드시는 사건 4:-8: 구속사건이 실제로 어떤 번화가 우리에게 일어나는가? 즉 죄인이 어떻게 의인이 되는가? 라는 내용을 설명 재창조 = 중생사건을 설명한다. * 종전에는 구원이 내게 어떤 순서와 과정으로 일어나는가에 대해서 -- 부르심, 중생, 회개, 믿음, 칭의, 성화, 견인, 영화로 했다. 그러면 중생은 작은 한 분야이고 신비롭게 처리되기에 성령님의 사역으로 처리되었기에 으리가 회개하는 것과 믿는 것과 별개의 것으로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서내 안에 변화를 일으키는 부분만 “중생”이라고 설명해 왔다.
그 理由는 : 종전의 신학방법이 인간의 논리를 많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철학적인 논리 사고에 따라서 * 어떻게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 1.하나님이 복음을 들려주시는 부르심이 먼저 있는 것 같다. 2.부르실 때 성령님을 보재셔서 안에 육적인 변화를 일으키시는 것 같고 3.그 부르심과 성령님의 내적인 변화에 의해서 본인이 죄를 꺠닫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함 받고 양자 - 성화 - 구원에 이른다고 한다. 논리 정연한 순서로 구원론을 전개해 나간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 순서로 전개되어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 어디서 나왔는가? 성경 여기서 따고, 지기서 따왔기 떄문에 성ㅇ경은 그런 배열과 논리를 주지 않는데 학자들이 자기들이 순서를 만들어 놓고 그 순서에 필요한 구절을 여기서 저기서 임의로 갖다 붙인 것이다 그 순서가 맞다는 근거가 없다. 논리적으라ㅗ 우리를 부르고(내적인 변화, 회개하고 믿고)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고 생각하나 그럴수 있다. 그러나 로마서에는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으니 문제이다.
로마서는 1:-3:에 구속사건이 나오고, 4:에 믿음에 5:에 의롭다함을 받은자가 하나님과 화목하는 관계, 화목에 의하여 연단 받기 위한 고난, 환난, 인내가 나온다. 여기까지 보면 예수 그리스도이 구속사건이 있고 우리가 믿어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그리고 계속해서 고난 속에서 단련이 들엉가고(성화관계에 들어감) 그러나 5:하반부에 가면 아담과 그리스도 두 대표자에 의해거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인되었던 우리가 한 사람으로말미암아 의인되는 논리가 다시 나온다. 논리가 조직신학에서 말하는 존리대로 가다가 다시 되돌아 가는 논리로 --새로 아담과 그리스도에 의한 “원죄”와 “원의”의 문제가 다루어 진다. 6에 들어가면 예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는 “세례와 중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6장의 이야기는 5장의 이야기보다 더 앞에 나와 있어야 하는데 뒤에 나오고 있다. 7장은 육신에 있을 때 율법 아래 있어서 율ㄹㄹ법을 지킬 수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서 율법에서 해방되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영을 따라 사는 자, 의를 행하는 자가 된다. 8장을 보면 성화쪽 같고 7장을 보면 정ㅇ죄함에서 벗어나는 율법에서의 해방을 이양기가 나오면서 8:1에 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잇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라는 죄엥서의 해방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앞에서 5:에서 이미 하나님과 화목 되었고 환난받으며 언단받는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세례받을 때 중생하는 이애기가 나오고, ㅏ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는 Lordship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또 돌아가서 육에 속한 이야기를 하고 영에 속한 이야기로 탈바꿈하니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주직신학적으로 접근하는 분들은 ㄴ그 논리에 꿔어맟추기 위하여 7장 하반부에 가서는 이것은 “성화단계에 있는 갈등”이라고 즉 율ㄹ법을 지키지 못해서 “오호라 나는 ㄴ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바울의 안타까워하는 부분을 성화단계의 갈등과 고민으로 ㄹ보았다. 그러나 8:까지의 論理를 다시 살펴 보면 -- 처음 이야기를 ㄹ반복하고 반복하기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변화되고, 새사람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그래서 1:-3:은 罪人인 우리가 하나님의 한 義인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의 구속사건에 의해서 의로워지는 사건을 이미 3장에서 ㅏ해 버렸고, 4:-8:은 그 서건을 다시 여러 특면에서 재 조명해 주고 있다. 그래서 롬8장까지의 內容은 개인의 어떤 구원사건을 說明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꼐서 오셔서 人類를 어떻게 구원해 가시는가의 이야기이다 罪人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덯게 의로워지는가? 혹 人間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구원의 方法論을 설명하는 久遠論이지 個個人이 어떻게 구운받는가의 순서를 說明하는 것이 아니다. 8:31-39은 하나니의 주권(하나님의 구원확보 보장) 9:은 육신의 자녀와 約束의 子女 區分 하나님의 긍휼과 서나택으로 전체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 진다. 9:마지막-10:중간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와 人間의 義, 특히 이스라엘의 잘못(구약에 대한 잘못된 지식 점검) 10:-11:은 이스라엘의 구원역사의 진행과정을 소개한다. = 9:11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다룬다. 그리스도가 오신 후 사건으로 구속사의 이스라엘과 이방인과의 사역을 다룬다. 12:-16:은 새로운 공동체 하나님의 나라이다. (구속사역에 의해서 이루어진 구원받 은 사람의 새로운 공동체를 바라 봄) ▣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 창조 인간의 범죄 - 율법주심, 정죄 - ㅇ_사람구속 - 믿음 - 새사람이 됨. 옛 시대(육의새대) / 영의 시대(새시대)
1:1절 저자는 ◇저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불ㄹ르심, 택정함에 잇어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는가? 바울은 = 예수 그리스도의 종 ♡종은 지도자의 개념이 아니고 노예(둘로스)개념이다. 主人의 所有로 팔려오고 목숨을 걸어놓고 順從한다. = 하나님의 노예이다. 교회의 지도자와 오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이다 = 자기 뜻대라ㅗ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절대복종의 存在이다. 노예가 주인의 명령에 의의제기, 협상, 의견제시 아니고 시키는대로만 해야 한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떄는 나를 동역자로 부르심 그러나 바울이 자기를 종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아들;동역자로 ;친구로 부르시더라도 실제로는 우리가 그분의 노예라는 신분을 항상 잊지않고 절대적으로 복종할 자세가 필요하다. ▧참조 :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罪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되어 거루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엇으니 이 마지막은 永生이라. V23 罪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잇는 永生이니라.= 종이 삯이 잇는지 업ㅂㅅ는지는 모르겟으나 내가 누구에게 메여서 순종하느냐? 내 자신이냐, 하나님이냐? 내 자신에게 메여 순종하는 것을 罪ㄹ의 종이라고 한다.죄는 나 자신이다. 내가 내 원하는 대로, 내 고집대로, 내 욕심대로 사는 것응ㄹ 죄의 종이라고 하고 거기서 해방되어 하나님에게 종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노예로서 살아야 한다.죄의 노예 --- 하나님의 노예로 6:17,18절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 의는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이 되엇다는 것을 매우 자랑ㅇ스럽게 쓰고 있다.
1:1b 使徒로 부르심을 받아
使徒 : 보내심을 받은 자 1)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란 뜻으로 사도라 불리워 진다 (광범위하게-히3:1) 2)12사도를 사도라 한다. 바울 = 12사도의 자격에는 밪지 않지만 그러나 복음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부왈을 증거할 증인으로써 보냄을 받은 자로서는 사도권이 잇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도는 : 福音, 그리스도의 復活을 證據하기 위해서 보나받은 자를 사도라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 12사도,바울, 바나바 외에도 초대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우리가 사도라는 칭호는 쓰지 않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보냄을 받은 사도들이다 ♧주의 -- 내가 예수님을 나의 Lord, 주, 성전으로 모시면서 그분의 노에가 되는 순간붙터 나는 상전이 가라고 하는 곳으로 반드시 가야 한다. 그래서 使徒職은 내가 예수님을 나의 주로 영접하고 내가 크리스탼이 되는 첫날부터 사도의 職責을 처음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다만 주인이 어디 가라는 命令이 떨어질 때까지 보냄을 받는 순간부터 使徒가 될 수 있지만 그러나 언제든지 나는 보냄응ㄹ 받으면, 가라고 하시면 갈 헌신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요즘 자꾸만 성경공부가 여러가지 方法을 使用하는 문제가 있는데 구원은 일반적으로 극히 초보단계로 설명하며 처음 나와서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고 “당신 구원받았습니다”고 그 때부터 이 사람은 성장해 가야하며 제자훈련을 받아야 되고, 어느정도 재자훈련이 되어지면 그 떄는 사역자로 보냄을 받는다. 헌신되어져야 한다고들 이해하고 있는데 그렇지가 않고 처음에 그리스도를 믿을 떄 (주로 믿을 때)부터 헌신이 요청되어진다. 예수를 主로 믿는다는 말 자체가 그 분을 나의 ㅏ상전으로 모시는 것이기 ㅏ때문에 내 生命을 노예로 ㅏ내어 놓겠다는 부분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獻身의 部分이 點檢되어지지 않으면 久遠받았다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구원은 다른 누구의 종노릇하던 내가 놓여나서 그리스도의 종노릇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구원을 받는 순간부터 나는 새로운 主人의 종으로써 獻身되어져야 한다. 그래서 “내가 獻身하겠습니다” 물질, 시간, 은사, 모든것, 목숨, 직업, 가족,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를 따라가야 信者요 구원받은 자이다. 예수님도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지 그냥 가지고 따라면 되고 나중에 차차 버리면 된닫고 는 말씀ㅁㅁ하시지 않으셧다. 일단 버리지 않으면 나를 따라 올 수 없다. 그래서 두 主人을 섬기는 사람이 많이 있다. 다른 주인이 또 있다. 自身이거나, 名譽이거나, 財物이거나 두 主人을 섬기는 사람은 天國에 들어 올 수 없다고 天國의 線을 명백히 그으셧다. 부자청년에게 다 버ㅗ리고 따라오라고 하실 때 그런 말씀을 하시고 부자는 天國에 들어오기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느 것ㅅ보다 어렵다. 불가능하다고 미리 이야기하셨고, 베드로나 弟子들에게도 自己를 부인하고 十字架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베드로 처음 부름을 받을 때도 다 버리고 따르라고 하셨다.
♣定理 ?? 헌신의 점검(獻身의 點檢)?????????? ?????????????????????????????????????? 어느정도 성숙한 이후의 단계로 두기 때문에 처음부터 문제가 있고 좀처름 헌신을 잘 안한다. 처음에 예수님을 영접할 ㅏ때부터 그리스도로 主로 迎接할 때 이 부분까지 점검이 되고 목숨까지 내 놓고 그날부터 당장 무엇을 하라면 할 마음이 되어 있을 떄 드디어 나는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다.“라고 곡백하여야 되고 그 때 드디어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라고 해야하기 ㅏ때문에 지금 시중에 구원의 확신은 구원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것을 “구원“이라고 하기때문에 많은 신자가 자기는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헌신을 위한 ㄸㄸ또 준비를 다시 하는데 그렇게 하기 때문에 문제가 다시 생긴다
또 제자(弟子)란 말도 예수님을 배우고 따라 다닌다는 말인데 *주를 영접하기 전에도 제자가 된다. 저분이 주구신지 내가 ㅏ배워서 젖분을 나의 상전으로 모실지 아니 모실지 그때 결정하겠다고 하고 따라 다닐 수 있지만 일ㄹ단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겠다 하면 그때부터는 진ㅉ짜 제자가 되어야 한다.
제자훈련이란 말도 1.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도 제자훈련이 필요하지만 2.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제자훈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어떻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ㄸ듯을 어떻게ㅣ 분별하고 따를 것이냐의 훈련이다. 아직도 主로 맞이하기 위한 훈련이라면 그것은 제자이전 단계의 훈련이다.
사도란 신앙이 어느정도 성숙한 이후의 단계인 높은 수준의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헌신ㄴ된 것을 요구한다.
1:b 부르심을 받아 부르심이란 : * 부르심을 받는다느 것은 주인니까 마음대로 “오라” “가라”하신다. 이것이 처음부터 부르심의 의이다. * 조직신학(Calling) = 복음을 나에게 들려 주시면서 내개로 오라 네게로 와서 죄사함을 받아 구원 얻으라는 부르심의 뜻도 있고 이제부터는 내 ㅏ종이 되라는 부르심도 마찬가지다. ▣정리 죄에 종노릇하던 내가 하나님의 종노릇하는 것이 구원이고 그것을 위해서 福音을 들려 주신다 즉 너 죄의 종노릇하는데 사망에 이른 것이면 사망에서 벗어나서 구원에 이르려면 너는 빨리 내게 와서 내 종노릇해야 한다고 브르신다. 그래서 전도받는 부르심이 주인을 바꾸라는 부르심이다. 오라고 부르시는 부르심은 구원의 부르심이요 동시에 소유주가 바뀌는 부르심이니 그 자체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ㄹ포기하고 따라가야 하는 사도라는 헌신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잇다.
소명이란 말 소명이란 말도 헌신과 똑 같은 의미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를 주로 ㅏ영접하는 순간부터 召命을, 獻身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한국적 이해 : 신학교 갈려는 사람에게 사명감, 소명감이 잇어야 한다는 말의 뜻은 상당히 자원해서 헌신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이다. 사실은 부르심을 말한다. 하나님이 불렀는냐아니냐의 이야기이다. 자기가 지원이냐? 하나님의 부르심이냐가 분명해야 한다. 부르심의 개념: 처음 믿을 때부터 바로 始作되면 혼란이 적다. 내 삶은 예수님을 주로 모시는 부르심을 받는 떄부터 그 부르심은 내 직업과 모든 영역에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훈련을 잘못 받았기에 소명과 헌신이 불확실하다. 구원의 확신을 물으면 뚜렸한데 소명에 대하여는 흐리다. 이것은 교육의 문제이다. 내가 하나님께 전 생애를 내 놓을 부르심에 순종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내 믿음, 내 구원 문제를 밑바탕부터 점검해야 한다.
1:1c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택정함을 입었다 : 구원되었다. 성별되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처음부터 사도로 부르심을 입었다. 즉 이스라엘 사람고 임금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사역자로 부르심을 입음 그래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종으로 (구원)받은 사건과 복음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同時에 일어났다. 그러나 바울이 그날부터 전도하러 간 것은 아니다. 바울이 헌신은 되어 있지만 아직 일을 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必要하다.
♣적용 : 資格은 있지만 어떤 사역을 위한 訓練은 필요하다. 처음 그리스도를 믿자마자 그날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전도는 가낭하다. 바울도 다메섹 개종후 바로 전도 시작했다. 그 정도는 가능하지만 복음을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자기에게는 많은 準備時間이 必要하다. 그런 의미에서 헌신의 때가 10년쯤 늦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헌신은 처음부터 되어있다. 헌신의 단계와 일을 시작하는 단계가 하나님꼐서 가라고 하는 ㄸ째가 있으니 기다려야 한다. 바울은 처음부터 복음전파하는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앗다. 우리는 바울과 다르게 처음부터 자기 직업에 그냥 있기도 하는데 그러해도 그 직업이 내 삶이 누구를 위해서 왜 해야 하는 자는 분명히 변화를 봐야한다. * Romans 주제 바울은 복음을 어ㄸ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2-4절 1:-8:전체의 줄거리 요약이다. 2절 복음은 : 1.복음의 기원 : 이름에 관한 약속이다 (O.T적 견해) 복음은 구약 때 부터 있다. 구약성도도 복음혜택 받고 하나님의 약속누렸다. 선지자들 하난 일 :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나라, 그의 구원사역을 설명하는 일 하는 자들이다 개개인 위한 ㄴ것 아닌 것 아니고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한 멧세지를 전하는 자들 2. 복음과 구약과의 관계 = 복음이 멧세지여야 한다. 성경에 약속된 것 = 하나님은 구원사역은 상당히 오랫동안 많은 부분으로 미리 約束하신 후에 성취하셨다. 예) 히1:1 여러시대, 여러 부분, 여러 부양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구약을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연결해서 본다. 3.복음의 내용 : 3절 :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그리스도이시니라 ?
* 단어설명: 육신으로는 /성결의 영으로는에 대치되는 구조이다. ? ??이것이 로마서의 대주제이다. 즉 육에 속한 시대가 영에 속한 시대로????? 육에 속한 사람이 영에 속한 사람으로??바뀌는 것이 구속사건이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씨)에서 나셨고, 후손.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설명할 때 예수님을 후손으로 주겠다고 約束받은 대표적 두 인물이.(ab, 다윗, 아담-여자의 후손) 그러난 예수그리스도를 설명할 때는 여자의 후손이라ㅏ고는 하고 ㅏ있으나 아담의 후손이라고는 안는다. 그리스도와 대근되는 대표인물이기에 여자의 후손이라 한다.(롬5자 대표설) ◉ 창세기 이후 읽어가면서 아담과 여자를 어ㄸ던식으로 구분해서 읽을지 어려움이 있다. 실재로 신약 마1:에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로 소개하고 있다. 복음서에도 Ab의 자손과 다윗의 자손이 자주 나온다. AB의 자손은 대개가 IS자손이나 하나님의 자녀(우리들), 다윗의 자손은 예수그리스도를 두고 말하는 표현이다.
? ??왕권을 의도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메시야 옹심을 기다리면서 그 메시야를 달윗의 자손이라고 일끌어 왔다. 그래서 로마서에도 다윗의 자손으로 소갸하고 너희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로 말하고 == 예수그리스도는 육신을 따라서 다윗의 씨로 태어나셨다. 다윗의 씨: 첫 창조된 타락한 상태로 버림받은 상태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살고 있는 인간들을 육신에 속한 자라 한다. 즉 구속되기 ㅣ전의 상태를 육신에속한 시대, 육에 속한 사람으로 표시한다. ==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려 ㅏ세상에 옹실 때 그런 수속되기 전에 타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 설교시에 --일ㄹㄹ반적으로 설교할 떄 성육신의 의에는 전도할떄 전도받는 피교육자, 피선교지에 있는 사람들과 동화되어야 한다는 말로 많이 쓰고있다. == 예수님이 오심도 그 동화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냥 單純한 同化가 아니고 구속하기 위해서 구속되기 전의 어떤 상태의 들어 오시는 것을 말하기 떄문에 성육신의 의미는 동화의 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대상에게 동화되었느냐가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의 실교시에 성육신한다느 것은 말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그들에게 동화되어야 한다는 말은 이해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성육신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예수그리스도는 原來 靈에 속한 자로 육신에 속한 자로 오셨으니까 되지만 우리는 같은 인간이기 ㅏ때문에 구속받은 우리가 구속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구속받지 않은 것처럼 동화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성육신은 (기본적으로) ◇우리와 동화되는 의에와 동시에 ◇우리가 구속받지 못한 상태 / 하나님을 떠난 상태 / 불안전한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자리에 들어오셨기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적으로는 : 4V 성결의 영으로는 (거룩한 영으로는) “福音”이란 구원 == 종전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관계되었다고 說明들을 했다. 지금은 십자가사건보다 부활사건과 더 관계가 크다고 ㅏ한다. 이 本文에서 바울은 福音이 그리스도가 우리의 복음(우리에게 복된 소식으로 오셨는데)은 오실 때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오셔서 영으로 부활하셨다고 설명하시면서 肉에 속한 우리가 靈에 속한 우리로 바꾸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이 부활떄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증 :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ㅁ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니 (성육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ㅆ으니 곧 삽자가에 죽으심이라? 십자가는 순종의 의에로 설명. 9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보든 이름 위에 ㄸ뒤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아래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모든 입으로 예스그리스도를 主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榮光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예수님이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므로 하나님은 그를 다시 높이셔서 모든 사람이 그분 앞엥 무릎을 꿇고 그분을 주님, 상전이라고 고백하게 만드셨다. 예수님의 생애 ①하나님의 본체에서 내려오셔서 인간이 도시되 종의 모습으로 죽기 까지 내려 가심. ② 높임을 받으셔서 모든 우주, 세계에 王으로 군림하는 사건이다. 이 本文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부활하심으로 王이 되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서 시작되었다는 본문이다. 행2:에는 더욱 더 뚜렸하게 전달된다. ♤예수그리스도는 영으로는 어떤 분이십니까? 4절:성결의 영르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 육이 죽고 영으로 부활하여 우리주,메시야 되심.? ??우리주,메시야되심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의 主가 되시는가?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해서 오셔서 육신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셔서 부활시키셔서 왕위에 오르셨다. 만일 예수께서 순종티 않고 십자가에 죽지 않으셨다면 왕이 될 수 없었다. ◎예수님의 구속사건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꼐서 아버지께 순종하여서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언이란 무엇인가?:불순종하던 내가 다시 용서받고 돌아와서 순종하여 그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내편에서 보는 구원은 順從이다.에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때 순종이란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부분이 우리의 구원이 예수님처럼 순종해야 된다는 점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내가 예수룰 믿고 구원받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워서 나도 죽기까지 복종을 하고 다시 살리심을 받아야 된다는 애기이다. 즉 순종치 않던 옜사람을 죽여 버리고 이제는 순종할 새로운 사람으로 둔갑하라, 바뀌라는 말이다. 그 뿌분을 구원이라고 말하고, 구원은 하나님의 통치개념과 Lord(主)되심에 촛점을 맟추어서 그 부분이 제일 중요함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 ♣예증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담당하셨다 그말 맟다. 그럼 죄는 무엇인가? 불순종이다. 불순종하던 내가 그 불순종하던 삶을 청산하고 용서받고 이제는 순종하는 백성으로 돌아올 때 죄사람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지 말은 죄사함 받았다고 말하고 여전히 내가 主人노릇하고 잇으면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내가 罪사함받고 구원을 얻었다는 이야기나, 붌순종하던 내가 순종함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말이나,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된다는 말이나, Lordship이라는 말이나 다 똑같은 개념이다. 그런데 우리의 머리 속에는 主되심, 統治라는 말을 하면 딴 이야기처럼 알고, 죄사함을 딴 이야기로 아는 것은 죄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이 부분이 명백해야 로마서에서 바울이 말하는 구원론을 배울 수 있다.
바울사도는 예수로부터 말미암아 무엇을 받았습니가? 5-6절 개인에게 어떻게 이 부분이 연결되는가? 1.은혜와 직분과의 관계는?????????????????? 2.사도직분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3.믿어 순종하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인가????? 5절 :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①은혜와 ②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도든 이방인 중에서 ③믿어 순종케 하나니??? 믿음의 순종을 위하여
* 그 이름을 위하여는 무슨 뜻인가? 나의 一生의 目的은 무엇인가? * 믿음과 순종은 같은 맥락이고, 죄와 불순종도 같은 맥락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불순종하던 내가 순종하기로 하고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말이 불순종하던 내가 “예수님을 나의 主人으로 모시겟다고 하나님께 고백해서 그래서 하나님이 지나간 것을 용서해 주고 이제는 내 아들을 너의 主로, 王모시고 순종하겠다고 하면 그러면 내가 받아 주겠다”라는 의미이기에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말은 行함이 절대로 배제되지 않는다. ◉행함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이제는 행함이 必要없고 이제는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 절대로 아니다. ◉불순종하던 삶이 순종하는 삶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을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고 하는데 그럼 왜 행함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말이 여기 나오는가? 예수를 나의 主로 모시지 않고 律法을 행하려고 한다. 마치 나는 예수님을 미디지 않아도 아같은 사람은 天國에 가고도 남을 만큼착하게 산다. 나는 법이 없이 살 수 있고 나는 크리스챤보다 낫다고 한다. ◉天國은 선행 여부에 따라서 사는 것은 아니다. 天國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나라이다. 그리스도를 王으로 모시고 복종하느냐 아니냐가 重要하지 선한 일을 행함을 중요치 않다.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말은 하나님이 불순종하던 우리에게 자기 아들을 왕으로 보내시면서 “내 아들을 받아들이라!” 그 아들을 내가 王으로 받아들이겟습니다. 하는 것을 믿음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믿음의 경우가 행함과 순종이 따라온다. 그러나 내 스스로 그리스도를 王으로 모심이 없이 先行을 행해서 적선하면서 천ㄴ국가는 것은 아니다. 敎會에 와서 어떤 일을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 아니고 敎會에 와서 해야할 일은 하나님이 나의 王이 되심을 배워서 그분에게 복종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지 그냥 내가 獻金을 많이하고, 착한 일을 맣이 해서 그 점수로 구원얻는다는 것이 아니라느 ㄴ그 부분의 차이지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것이 행함이 必要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로마의 성도들에 대해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6절 : ?너희도 그들 중(이방인)에 있어 예수그리스도의 것으로부르심을 받았다? 7절 :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거룩한 무리)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를 願하노라?
8-17절 8절 : 감사의 대상 ①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의 傳導方法 : ②하나님 아버지께 요4: 너희는 심지 않은 것 거두 러 간다. 9절 :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라 항상 쉬지않고 너희를 위하여 내 기도는 ==감사기도 10절 : 갈길을열어 달라는 기도 * 하나님의 뜻 안에서 : 바울이 로마에 하나님이 가라 하셔야 간다. 갈 마음, 준비되어 있으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 11절 : 목적???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는 것? *은사 : χαρισμα = 성령의 은사? (선물)은사가 무엇이냐(영적선물) = 복음을 받아? 이는 사람(제일 큰 선물), 영적은사로 공동체로 참여하는 것(롬12:1-)? 구제도 은사이다. 장사도 영적의미 포함된 은사? 은사 =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의 유익을 위해서 혜택받아야 함? ??????????????????? 직접받기도 하고 교회를 통해서 나누어 진다. 주일하교교사, ㅏ재정집사도 교회를 통해서 나누어 지고 세워진다. 공동체를 통해서 훈련, 나누어 진다. v견고케 하여 : 은사는 공동체를 세우고 나누어지고 훈련되어 진다. 12절 : 피차 안위함을 받는다 = 서로 결려를 받는다.
복음에 빛진자 ♣복음에 빛진자에 대한 오해 ①우리가 미국인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서 공ㅉ짜로 복음을 받았으니까 그 복음을 인도나 아프리카인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②또 도시인들이 농촌사람들이 피땀흘린 농수산ㅁㅁ물을 먹어서 빛진 것도, 도시 공장에서 큰 애기들이 옷감을 짜주어서 입어서 빛졌다는 것도 아니다 뜻 : 상업상의 ㅏ개념으로 채무자란 뜻이다. 바울의 구원 -- 자기중심적-- 바울은 무엇때문에 감사하는가? :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 모든사람을 인하여 8절 :?첫째는(둘째가 없는 첫째 즉 우선, 무엇보다, 무조건)내가 그리스도예수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려 함이라? -- 로마에 있는 사람들이 듣고 그러한 귀중한 믿음을 이미 갖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자기는 굉장히 기쁘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 감사의 대상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한다. 내 하나님께???????????????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일을 이루셨기 때문에 ???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전도를 많이 하시낟. 바울이 아직 가기 전에 로마에 교회가 세워져 있다. 하나님은 여기 사람이 여러 방법을 통해서 ㅏ복음을 받게 한다. 한국에도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복음이 먼저 들어와 잇었다. ??하나미의 전도방법은 넓은 범위에서 이해합시다. 물론 전도하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전도를 통해서 많ㅇ는 일을 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시라재라ㅗ 해ㅏ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앞서가서 일을 벌써 해 놓으시고 우리가 할 때 내가 하느나것 처럼 신날 ㅏ때가 많이 있지만 잘 따지고 보면 내가 한 것아니고 이미 다른 사람이 해 놓은, 이미 하나님이 해 놓은 것이 참 많이 잇다. 그래서 잘 ㅏ생각해 보면 맥이 빠지는 일인데 사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도가 안되니까 그냥 한다고 하면 오히려 진짜 맥이 빠지는데 오히려 하나님이 다 ㅏ해 놓으셔서 추수만 하면 되니까 전도하러 가는 사람이 ㅇ보람을 느끼고 내가 전도해서 결신이 많으가 오바센스해서 즐거워하는데 요4: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심지 안은 것을 거두고 -- 다른 사람이 심은 것을 거두러 간다--딴 사람이 그전에 한 것을 말하는데 그 딴사람이 하나님이 직접하신 부분도 상당히 많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런 표현을 쓴다.
9절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①바을의 기도에 하나님이 증인되심 --그의 아들의 福音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복음은 아들과 밀착되어 잇다.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확실하ㅏ게 말하고 있다. 항상 내 기도에 쉬지않고 너희를 말하며 --이것은 바울에서 많이 ㅏ배워야 한다. 바울은 자기가 전도한 교회, 자기가 직법 가지 않았지만 복음을 받고 신앙ㅇ새아활을 하는 고회나 성도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들을 위한 기도를 쉬지 않는다. 우리는 기도를 많이 ㅏ배워야 한다. 한국교인들은 기도를 많이 하고 있는데 특별히 남을 위해서 복음을 받고 잇는 사람들을 위해서 디도해야 되겟다. 두번째 기도 --하나님이 길 열어 주시기를 운하는 기도를 한다. 10절 :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그들을 (로마교회 성도들) 위해서 감사 기도를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갈 기회를 달라고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울의 일이 복음 전하려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福音의 길이 열리기를 위해서 많이 디고하면 좋겠다. -- 그런데 주의할 점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가 붙어 있다. 전도의 열심이 있는 분들이나 선교사로 ㅏ가고 싶은 분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라는 부분을 뺴먹고 자주 열심히 해서 아직 하나님이 가라고 하지 않으시는데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실 때까지 바울이 로마에 가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갈 마음은 항상 준비되었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면서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허락할 때 가려는 자세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마치 행1장에 예수께서 너희는 JM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 그가 오셔서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나서야 내 증인 노릇할 수 있다는
11-12절의 왜 가고 있는가? ①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고 바울 자신은 (로마교인에게는 -양육)나도 안위받는다. ②너희를 견고케 한다. 기본적으로 어떤 철학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은사는 누가 나누어 주는가? 바울이 성령께서 나누어 준다는 것은 성경에서 인가? 들은 인가? 은사는 성령님의 은사인데 바울이 나누어 준다. 11절 :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워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라? --바울이 로마를 訪問할 첫째 목적은 신령한 은사를 나워주려는 것이다. 은사란 말은 χαρισμα라는 원문에서 말한다. 성령의 은사를 여기서는 신령한 은사라고 한다. 실제적으로 무엇이 카리스마인가? 카리스마는 ”선물’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줏시는 영적선물이 무엇이냐? 굉장히 많이 있다. 그 중에 로마서에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부분이 제일 큰 은사인데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이는 은사를 넓혀서 보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어떤 영적인 은사를 통해서 그 ㅏ복음 사역에 동참하고 공동체의 교회 안에서 어떤 삶을 감당하고 있는 부분을 말하고 있다. --은사는 다양하게 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 공동체 안에서 내가 받은 은사를 따라서 내 교회를 섬겨가는 부분을 즉 이 교회를 넓게 하면 가정, 직장까지 포함하는데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넓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내가 맡은 어떤 부분이 은사이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은 특별한 은사만을 생각한다 롬12장에는 구제하는 것도 은사이나 이것을 은사로 생각않는다. 열심히 장사하는 은사(장사하는 비유) --실제ㅐ적인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장사하는 것이 영적인 의미를 포함하여서 장사를 통해서 그 일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내 장사를 통해서 혜택을 누려야 한다. 점검 : 우리는 내 장사를 통해서 ㅏ과색이 ㅏ혜택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ㅏ내가 고객에게서 많이 빼앗아 오서 내가 혜택을 많이 받아서 그 다음에 구제를 하고 헌금을 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상적인 원래의 은사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교ㅗ히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신다고 했다. 방언, 예언의 은사도.... 그 은사들 말고 일반의 은사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직업자체가 하나님의 교회라는 럽은 의미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유익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내 직업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그 고객이 혜택을 받아야 한다. 특별히 거기 하나님의 ㅏ백성들이 와서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항상 하나님의ㅏ백성들이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서 착취를 당한다. 뺴앗기고, 물건값을 바가지를 기 때문에 그만큼 나는 딴데서 벌어서 메꾸어야 되고 그 사람은 벌어서 헌금을 내고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자금이 나쁜 의미로 뱅글 뱅글 돌아다니는데 그렇게 하면 안된다. 정상적으로 사업을 해서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혜택을 많이 받아야 되고 바울 같은 사람이 혜택을 많이 받아야 한다. 그래서 신령한 은사는 (일상적인 ㅏ생활까지 포함해서) 영적인 은사인 것을 잘 이해하고 내가 은사를 어떨게 활용할 ㅏ것인가를 12장에서 공부한다. 바울이 11b에서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어”라고 ㅏ했는데 은사를 나눠준다는 것은 은사는 직접받는 것 뿐만이 아니고 은사는 교회를 거쳐서 받고 있다는 것을 옹시에 배워야 한다. 은사는 (성령의 은사) 직통으로 받는 것이라고 애해하지 말자. ♧교회를 통해서 은사가 나누어 진다 주일학교 교사를 할 은사를 갖인 사람이라고 해서 교회에서 임몀을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재정관리할 은사가 있다고 해서 교회에서 재직으로 임명받지 않고는 재직으로 재정에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목사갗이 상당히 중요한 가르치는 은사나 다스리는 은사는 상당한 공부를 하고 시험을 쳐야되고 면접을 다한 후에 노회에서 안수를 한 후에 세운다. 그래서 디모데에게도 노회;어서 안수받을 때 받은 은사(예언의 은사)를 ㅆ쏱아버리지 마라고 관리하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런 것을 은사라고 하는데 그 은사를 노회를 통해서 나누어 준다. 개 교회에서도 당회나 지도자를 통해서 나누어 준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어떤 은사는 누구를 통해서 나누어 주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고 하여튼 내가 가진 은사는 내면적으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공동체를 통하여 行政的으로 나누어지고 있고 훈련되어지고 있고 개발되어지고 있는 것을 같이 배워야 한다. 예ㅒ를들면 방언의 은사는 누가 나누어 주지 않고 직법받는다. 한국에서는 훈련에 의해서 받지만 방언의 은사를 성령님에 의해서 직접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 은사는 교회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으며 절제를 받아야 되고 때로는 중지 당할 때도 있고 때로는 결려를 받아야 된다. 예언의 은사도 아찬가지고 특히 예언의 은사는 성경과 관계되기 때마에 성경공부를 계속해야만 정상적인 예언의 은사가 가능하다. 입신, 예언의 시주아책은 전혀 다른 지체를 (교회) 통해서 나우어 지거나 훈련되어 지거나 다듬어지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괭장히 많이 한다. 은사는 성령님의 사역이기 ㄸ대문에 ㅇ받고 싶은 사람의 자세에 상관없이 성령님이 밀고 들어오실 수 있다. 귀신은 그렇게 못한다. ---은사를 나눠주어 견고케 하려 함이니 은사는 공동체의 관리가 필요하며 동시에 견고케 한다. 은사는 나를 자라게 하고 견고케 하는 것이고 공동체 교회가 유익을 주는 것이지 자기 혼자서 기분을 내는 것이 아니다. ♤12절은 어떤 뜻인가? : 피차 안위함을 받는 것 12절 : ?이는 곧 내가 저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신령한 것을 나누어 주면서 신령한 은사로 로마교회가 견고해져 가면서 바울 사도 자신도 그들의 믿음을 인해서 자기의 믿음을 통해서 피차 안위함을 받는다는 서로 결려를 받는다는 말이. 서로 결려를 받음 --그래서 지도자들이 교회에서 은사를 나눠주기도 하고 은사를 조정도 하고, 압제하고, 은사를 다스리고, 은사를 가르치고 해서 그 성도들이 정상적으로 자라고 은사를 통해서 견고해져 가고 교회가 튼튼해 갈 때 그렇게 지도한 자도자들도 그 성도들을 통해서 ㅏ많은 격려를 받고 믿음이 자라간다. 이 성도들이 잘 자라지 않으면 지도자도 딜레마에 빠진다. 지도자에게 영적인 침체가 온다. 서로 주고 받는 것같은데 특별히 ㅣ지도자들은 더 많이 주는 쪽에 있다. ㅣ지도자도 도움을 받는 성도들에 의해서 역으로 격려를 받아야 하는 그런 상관관계에 있는 것이 교회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 교회에도 신경을 써서 고회의 지도자들에게 내가 어떤 것으로 결려를 드릴 수 있는가 좀 생각하시고 지도자를 영적으로 도울 수 있는 준비도 필요하다.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하실 대 그런 약한 부분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서로 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로마에 가고자하는 두번재 이유 : 열매맺기 위함 --열매는 전도이다. 13절 :?형제들아 내가 어러번 너희엥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를 이방인 중에서와 갗이 ㅏ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열매가 무슨 열매인가. 성령의 열매, 회개의 열매... 바울이 이 글에서 의도하는 열매는 무엇일까? 로마서 6:22에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 전에는 죄에게서 노예가 이제는 하나님께 노예가 되어서 그 ㅏ댓가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수확으로 얻는다. 6:23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선물)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잇는 영생이라? -- 구원에 관계되어 거룩케 되고 영생하는 영생을 말한다. 6장 본문 말고 1:10-- 쭉 보면 ?나는 너희엥게 갈 길이 열려지기를 원한다? 그 이유는 은사를 나누어 주고 너희를 견고케 하고 서로 위로를 받기 위함이다.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가고자 ㅏ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관심이 없어서 못같 것이 아니고 13b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갗이 열매를 맺게 하려함이로되? 다른 이방인에게 일어난 결실을 너희에게도 있기를 원한다. 바울이 다른 이방인 도시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면서 얻은 결실처럼 너희에게도 가서 결실하기를 원하낟. 14절에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잇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빛진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잇는데로 로마에 잇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에 복음의 열매가 확실한 것처럼 보인다. 복음의 열매를 두가지 측면에서 보면 ①전혀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서 결실하는 복음의 열매가 있고 ②이미 세워진 교회와 성도가 있기 땜ㄴ에 그들을 은사를 나눠주고 견고케 하는 열매도 있는데, 두가지 다 포함된 것이다. 14절 :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야만인 =토인 헤라시대이니 로마의 시작이 얼마 안되었기에 헬라 문화의 지배, 헬라 철학에 익숙한 사람과익숙치 못한 사람(외국여행으로 주제 감각자와 국내 기존자) 무식하다는 것이 아니고 외래문물유입 / 국내파 사람 14절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나 다 ㅏ내가 빛진 자라 ◎우리가 빛을 누구에게 졌는가? 우리가 미국이나 구라파에 선교를 해 준 나라에 1차적인 빛이 있지만 다른 많은 사람에게도 빚이 있다. 우리가 때로는 다른 많은 성도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데 영적/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지만 나는 딴 사람에게 갚으면 된다. 적용 나에게 혜택을 준 사람에게 되갚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주어서 빚을 갚는 수가 있다. ㅣ --여기에서도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빚진다라고 한다. ㅣ우리 성도들은 모든 세계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이 부분에서 교통정리를 제대로 잘 하라 15절 :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잇는데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 복음이란 무엇인가.????????????? ????????????????????????????????????
①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2-4) ②하나님의 능력, 의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 16-17절 : 복음에 대한 마지막 정리 내가 복음을 붂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2-4은 복음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에 ㅏ대한 설명이고 16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실제적으로 굉장한 능력으로 나타난다. “복음”이 능력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다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니까 죄를 다 묵살해 버리고 천국으로 보내준다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무능력하다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이 능력이 있다는 말 : 자기 아들을 보내서 구원한다는 말은 안되니까 어차피 다 안되니가 다 묵살하고 믹기만 하면 다 구원해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기여코 우리르 하나님 당신이 바라는 그런 훌륭한 백성으로 바꾸시고 변화시키시고, 거룩하게 만드시겟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복음은 믿기만 하면 구원얻는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반드시 율법은 온전히 지키는 자로 변화시킨다느 ㄴ사실을 明白히 認識해야 한다.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함과 같으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인데 영원히 지속된다. 천국에도 믿음이 필요할까? 고전13:13
앞에서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ㅏ했는데 17절의 보충설명에는 복음자체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하는데 이 의는 그리스도를 말한다. 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불의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인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불의한 자를 의롭게 변화시키시는 재창조의 능력을 표현한다. 그래서 16절에는 능력이라고 표현하고 17절에는 의롭게 하는 능력이라는 뜻으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ㅏ고 말하는데 그 하나님의 의인 그리스도가 어떻게 내 의로, 내가 어떻게 의로워지는가는 믿음이란 길을 총해서 가능하다.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것은 믿기만 하면 의인이 된다는 말이 아니고 -- 예수 그리스도를 王으로 主人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에게 복종하는 어떤 그 하나남에게 마련하신 어던 길을 통해서 내 안에서 變化가 일어나서 의롭게 되는 의인은 --하나님이 ㅣ인정하시는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主人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 안에 나를 투입하는 믿음의 길을 통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롬 1:18-32 이방인들의 罪 (義의 必要性)
Ⅰ. 본문이해 1.하나님의 진노가 무엇에 대하여 나타난다고 했습니까?(18절) ①경건치 않음 ②불의에 대하여 나타난다. ♠경건치 않음과 불의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경건하다 : likeGod = 하나님과 같은 것,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인정하고 ㅏ나도 하나님처럼 사는것. 한국의 유교개념: 점잖다. 넥타이메고 양복입고 성경책 끼고 걸어면 경건하다. 넥타이 풀고 머리 흩트러지면 불경건하다 한다. 그러나 경건은 행동에 대한 것이 아니다 유교는 神이 없는 종교이기 때문에 父母에 대한 子女의 태도를 다루기 ㅏ대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으나 성경의 “경건‘은 사 1:에서 처럼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바까에서는 온갖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하나님은 책망을 하신다. “경건”: 외모가 아니라 태도이고 마음의 자세를 말한다. 즉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높이고, 하나님을 닮아 살아가는 것이다. “의”= 어떤 요구를 했을 때 그 요구되로 행했을 때 너는 옳다 認定하는 것이다. 어떤 표준을 그어놓고 그 標準에 맞아 떨어졌을 때 네가 옳다 의롭다 한다. 법, 수준, 요구조건이 잇고 그 조건에 맞을 때 으롭다고 한다.
??? ♣하나님의속성중 사랑과 의????????? ???????????????????????????????????????? 하나님의 사랑 : 용서, 자비를 베푸시는 것 하나님의 의 : 심판과 벌하시는 것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가 십자가에서 ㅏ배치되는가? 아니다 우리들(죄인)을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일컷는 것은 하나님의 ㅏ요구하는 수준에 우리가 도달함을 말하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움이 나타낫다는 것은 惡을 벌햇다는 것보다 罪人을 끌어 올려서 하나님의 요구하는 수준까지 올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수준에 미달한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까지 올림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 (目的) 하나님은 사랑의 方法을 스신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ㅏ이루셧음을 이해할 수 잇다. 不義 = 하나님 참된 것을 막고 잇는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에 미달했다는 것이다. ♠저들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 : 진리를 도존하는?????????????? 사람들의 사고방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식이다.
2.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했는가?(19절) ?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있음이라? 하나님을 알만한 것 -- 하나님의 자기계시 저희 속에 보임이라 -- 자기계시(양심계시) 가. 저희 속에란 무엇을 말하는가? -- 하나님이 사람 속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넣어심? ???인간의 본성 안에, 인간들 속에, 인간들의 양심 속에 계시되엇다. 20절에는 엇이 어디에 분명히 나타나 잇다고 햇는가? 무엇이 = 하나님의 능력 = 하나님 자신과 , 영계.. 하나님과 ㅏ영혼은 보이지 않는 다. 하나님의 신성이 」 어디에 =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 만물들을 보라! 人間들은 아니라고 한다. 과학의 발달 -- 옛날의 신비가 벗겨지고, <비행기, 우주여행,번개> 계속적인 과학의 발달 -- 작아지고--작아지고 작아져서 안보이면 헌미경으로 보면 또 보여져서 수 우주를 이루고 잇으니 두손을 들면서 이것은 신비라 한다. 뼐을 연구하고 연구하면 할수록 크고 놀라운 우주를 보게ㅐ되고 얼마나 큰지 모리겟다. 교훈과 적용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양심이나 자연을 통해서 알 수 잇지만 특별계시인 성경 안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배우고 있습니가? 성경공부는 언제, 어떻게 하고 있는가?
3. 21-23절에서 하나님의 보여주심(양심) 기도 불구하고 人間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었다고 하였는가? ① 21절a : 영화롭게도(하나님을 높이기도)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함. ② 22절b : 미련한 마음으로 어두워 지는 ㄴ것 = 우준하다=벌례처럼. ③ 23-22 :우상숭배에 빠짐 = 결과 * 종교심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데 그 대상을 잘못 결정해서 바끼치기 하는 것이다. 교훈과 적용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우하며 섬기고 있는가? 내 욕심을 버리지 않은 채로 다만 그가 내게 도움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섬기는 것은 아닙니가? 참으로 하나님의 여ㅇ광을 추구하고 , ㅏ내 영광을 버리고 ㅣ잇습니? 아니면 내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과 ㅏ연관시켜서 함께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4.그러므로 하나님게서는 이러한 인간을 어떻게 하십니까? 1.24-25절 :저희를 마음의 정욕되로 더러움에 버려두심 어디에 =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 인간이 자기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거저 섬기던지, 버러지, 짐승, 해, 달, 돌맹이 섬기게 버려두심.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섬김 「저희가 진리를 거짖 것들로 바꾸어서 거짖 것들을 더 섬긴다 우상숭배에 빠진 것이다
♧종교심리 인간들은 처음부터 의존적인 존재로 만들어 졌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ㅏ하나님을 버린 후 인간들이 혼자서 독자적인 존재로 살지 못하고 다른 무엇을 찾아서 의존할 것을 찾아간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의존하지 못하면 허전하고 견딜 수 없는 상태에 바진 것이 인간은 독자적이지 않고 의존형으로 만들어 졌다. 그래서 공연히 어떤 일이 생기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마서운 일이 ㅏ생기면 고포에 사로잡히는 것은 인간의 보호, 의존, 허전한 심령이다. ※부적, 점보는 것 많이 하는 것은 과학이 발달했는데도 떡, 고사, 교문에 엿붙인다. 스포츠 선수의 금기의식 : 마음이 허전하고, 불안하기 ㅏ때문이다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이 인간들이다. 2.25-26절은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심 부끄러운 욕심 : 동성연애에 빠짐, 성적인 무질서’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서 조화와 질서를 이루시고 남,여자가 서로 협조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늬지하여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게 하셨는데 --나 위에 나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나서 남자와 여자 둘이서 우리 힘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 그렇게 되지 않고 문제가 생긴다 하나님이 없으니까 남자느 ㄴ여자를 버리고 남자끼리, 여자는 남자를 버리고 여자끼리, 인간과 인간 사이에 ,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부부 사이에서 그 정상적인 관계를 끊어 버리고 비정상적인 관계로 들어간다 마치 우상숭배와 똑같은 현상이다.
3. 28-32절 :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 하나님을 버린 마음대로 하나님이 버려 두시니 아버지 집을 ㄸㄸ뒤쳐 탕자도 살아 있지요 그렇게 내어 버려두니 결론 :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된다.
??? 罪는 무엇인가???????????????? ?????????????????????????????????? 1.罪는 人間과 人間 사이의 문제가 아니고 神과 人間 사이의 문제이다. 1)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여 버림받은 상태에 ㅣ있는 것을 죄 또는 타락이라고 한다. 죄는 하나님에게 종속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을 하나님은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독립해서 살 수 있다고 하는 自我이다. 자기고집 - 프라이드이다. a. 罪의 根源은 하나님으로부터 獨立하는 것이다 ♧죄의 근원 : 독립의 결과 ①우상숭배 ②성적인 타락 ③대인관계의 도덕적인 타락이 나온다. -- 나를 콘트롤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ㅒㄸ리고 착취, 시기하는 것도 나를 지배하는 분이 없기 떄문이다. ◎아담이 하와의 선악과 넘깅 떄 하나님이 옆에서 지키며 말씀하셨다면 안 따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命令을 주시고 자기 스스로 가부를 결정할 자유를 주시니까 아담, 하와는 따먹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않는 인간들의 비참한 모습들이다. b,18절에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대우하지 않는 것 하나님께서 용구하시느 ㄴ하나님의 수준을 지키려고, 도달하려고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면서 하나님의 설정해 놓으신 의에 도전하는 진리에 대해서 도전하는 것이 죄이다. ♧예증: 사람을 치는 것이 죄인가? 복싱선수들이 사람을 구타하는 것이 죄인가? 왜 다른 이들은 빰 하데 쳐도 구치소에 가는데 복싱선수는 괜챤은가? ♧예증 살인하는 것이 죄인가? 그러나 형부소에서 월급을 받고 사람을 ㄹ죽이는 일을 하는 공무원들이 잇다. 목을 메어다느 ㄴ그 사람 만이 아니라 실제 법무부장관 (살인자) ok함 형무소장 국회에서 법 안듯고검사,친구, 판사가 명령했기에 죄인가.
罪는 객관적으로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죄이고 이것은 아니다느 기준이 ㅂㅅ다. 살인이 죄일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간첩이 죄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을 치는 것이 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행동을 가지고는 罪라고 할 수 없으며 아주 모호핟. 罪란 人格과 人格의 관계에서 두 인격체 사이의 ㅏ관계에서 ㅣ일어나느 ㄴ행동을 죄라고도 하고 죄가 아니라고도 한다. ♧예증 우리끼리는 때리지 않기로 하고 떄리면 고발한다. 복싱선수끼리는 계약맺고 때린자에게 상금주기로 한다. 형무소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도 법을 만들어 놓고 합법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전쟁 = 합법적으로 전쟁을 한다.) 그럼 합법적이란 무엇인가? 계약이다. 국민이 국가에 법을 만들어 두었거나 당사자 끼리 법을 만들어 두었거나 든행과 개인이 약정을 맺고 이자 정하고 못하면 차압하는 것이다. --계약관계에서 ㅏ개인과 ㅏ개인의 관계보다 더 위에 있는 계약관계가 있다. 국민과 국민 관계 보다 국민과 국가 간에는 국가권력이 더 크다 극가의 법에 도전하는 것은 국가보다 더 위에 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인권, 범세계적인 율을 생각한다. 아무리 올라가더라도 어느 것이 더 전 인류가 어느 것이 중요한 것인지 전 인류가 공통적으로 더 원하는 것이 안간윤리다. 유교는 父母가 第一이다. 왕이라면 왕이다. 평등이라면 휴메니즘이 앞서 가듯이 항상 사람의 가치 기준에 따라서 달라진다. 어느 이나 다 인간의 차원에서 왈가왈부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이 너희 인간의 휴메니즘, 인권, 평등은 너희 들끼리의 법이고 내(하나님)가 더 우선적이다라고 하나님이 도전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으신 분이라면 인류가 최고인데 신이 무엇이 필요하나 할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특별한 권리를 갖고 계신다. 하나님게서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의 권리를 主張하실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罪는 창조주인 하나님이 인간에게 어떤 관계를 맺으시고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 너는 나를 섬겨라, 너는 나를 의존하라, 내가 생명도 공급해 주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겠다 그래서 너는 내 말을 들어라 그것이 에덴동산의 아담에게 주신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명령이다. 그것은 이 에덴동산에 잇는 모든 것 다스릴 권한은 네 임의로 형성되어 누리는 자유가 아니라 내가 네게 준 선물의 자유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 선악과를 볼 때마다 내가 손을 댈 수 없는 영역이 있구나 나보다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리면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아고 내 권리를 재한하신 분이 계신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罪는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의 불복종이요 오늘 모든 사람들 나의 내부에 잇는 ㅏ모든 생각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이 罪이다. 종속하지 않겠다는 독립심이 죄이다. ♧다른 모든 罪보다 가장 큰 죄느 ㄴ예수 믿지 않겠다는 죄이다.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섬기지 얺ㅎ은 죄가 가ㅏ장 큰 죄이다. 」 유교에서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것이 가장 큰 죄이듯이 성경에는 하나님이 제일 위에 높은 곳에 계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그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그 하나님께 복종치 않는 것)이 죄의 근원이다. 그리고 나서 내 스스로 무엇이든지 하겠다 하나님 없어도 가능하다고 생각에 빠지는 것이 죄의 근원이다.
♣요점 이것이 로마서를 정리해 나가는 KEY이요 이것이 구원론을 정리하는데 혼란이 일어나지 않는다. 남을 때린 것이 죄가 될 수도 아닐 수도 ㅣ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ㅏ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부수적으로 자연히 따라 나오느 죄의 결과이다.
原罪란 무엇인가? :대표죄를 말한다. 롬5:12-21 아담의 범죄 이전에 하와가 먼저 서악과를 따멱었고, 그 이전에는 천사를 (사탄까지)이 이에 범죄하였다. 뱀이 하와를 유혹한 행위도 죄이다. 딤전2:13,14에 原罪를 죄의 起源이라고 볼 수 있는 듯하나아담의 죄를 단순히 죄의 기원, 또는 원죄라고 말할 수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 왔다고 한다. 이 말은 사단이나 하와의 죄가 먼저이긴 하지만 그들의 죄는 인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아담의 범죄가 모든 인류에게 양향을 미치고 잇고 족음을 초대하엿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담의 죄를 “인류를 대표하는 죄”로 생각한다.
罪는 누가 만들었는가? : 罪는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죄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며 하나님에게느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사단도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오해하지만 하나님은 천사를 만드셨지 사단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천사가 타락하여 사단이 된 것이. 이것은 아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아담을 범죄하게 만든 것도 아니고 선약과에 무제가 잇는 것도 아니다. 罪의 起源은 인간의 교만/독립심/욕심에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최선의 삶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내 주인으로 모시고 행복된 삶을 누리려고 하지 않고 자기 욕심과 자기 뜻과 자기 고집대로 살아 보겠다는 생각을 할 ㅏ때 이것을 죄라고 부르기 때문에 사단이나, 아담이나, 하와나,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찿아 볼 수 있는 것이고 그 결과 祝福을 잃고 不幸을 자초했다. 결국 죄느 ㄴ인간 자신이 만든 거싱다. 하나님께서 인격체에게 주신 자아의식이 그 인격성을 주신 創造主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의존적, 합심적독립적/반역적/배타적으로 나타난 아집, 자아가 죄를 만들었다.
왜 인간은 獨立하면 안됩니까? 하나님의 요구가 너무 일방적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24,26,28절에 보면 그런 생각을 가지고 ㅣ있는 사람을 하나님ㄲ게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자기 욕심과 아집에 따라 살도록 방임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결과 어떻게 나타났는가? -- 스스로 살아갈 能力도 存在할 수도 업ㅂㅅ는 존재이깅에 하나님을 ㄸ떠나자 마자 다른 신(우상숭배)들을 찾게 되고 이성에 ㅏ대한 조화를 깨뜨리고 (성적혼란) 대인관계에서 서로 간에 충돌이 일어나고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도덕죄, 사회적 범죄들) 이처럼 내어버리시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진노라고 할 ㅃ분입니다. 그 중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불쌍히 여겨 선택하시고 죄를 처리 하시고 본래의 목적(義)대로 이상적인 사회와천국을 세우고 육성해 가십니다. 反面에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사단과 협력하여 적대세력(사단의 나라)을 만들어 (당을 지어) 하나님을 향하여 도전과 공격을 감행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選擇에 대하여 獨立을 못하게 하면 利己主義라고 하고 방치하면 뭄관심하다고 하는 논리에서 벙어나서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돌아오든지 독립 선언을 하든지 해야 한다. 죄는 유전되는 것이 아닙니까?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시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 죄는 유전될 수 있는 물질도 유전인자도, 천성도 아닙니다. 죄는 각자에게 그 원인이 있고 개인적인 것입니다. 본인이 責任을 져야 한다. 다만 아담의 代表罪가 人類에게 죽음을 가져 온 것은 사실이나.아담의 죄는 대표죄입니다.
제 2 장 연구
2:1-16절 핑계할 수 없다.
1장은 罪의 本質과 핵심을 이야기했고, 2장은 누구에게 있느냐? 과연 모든 사람이 죄인이냐? 1-11 도덕론자 - 공,맹자왈, 바리새인들
♧죄는 本性과 自然界에 啓示된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감사치 않고 자기의 꿈, 생각에 빠진 것이다 . 영광스런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여기지 않는데서 하나님이 마음의 정욕대로, 부끄러운 욕심에, 살실한 마음에 내어버려 두셨다. ♧救援은 審判을 轉載로 한다.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전재 그 중에서 하나님이 一部를 구원하신다.
▣ 1절 : 그러므로 1장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震怒가 임하는데 2장에 와서 바울이 說明하는 이야길를 다 들어보고 맞다고 한다 悔改를 해야하고 審判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는 아니척하고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남을 判斷하고 죄인이라고 하는 너 자신은 어떠냐고 2장을 始作하고 있다. 왜 바울사도가 그 이야기를 먼저했을까? 論理的으로 정연하게 理論을 展開해 나가면서 1장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면서 사람들이 핑계할 수 없다. 하나님이 자연 속에 각 사람의 양심 속에 확실하게 分明히 보여 주셨기 때문에 2:2에도 핑계할 수 없다고 한다 1절에 네가 핑게치 못할 것은 法없이 사는 사람, 항의하는 사람들 1장에서 하나님께 대한 正常的인 관계를 갖지 못한데 대해서도 나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고 핑게할 수 없는데, 2장에서 그 이야기를 1장의 내용은 다 동의를 하는데 나는 그런 罪를 범하지 않았습니다고 어렇게 말할 사람이 잇을까하여서 너도 핑계할 수 없다고 한다. 너는 너 스스로가 네 잘못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을 記憶해야 한다. 네 自身이 罪를 凡하는 罪人이라는 事實을 절대로 핑계할 수 없다. 예증 ①정선거 반대하는 大學 內의 不正選擧 ②貧富차이를 떠드는 단체 안에 月給차이가 많다. ③父母의 子女에 君臨 ③學校- 校長, 校監의 높은 계급 ④司法府의 民主主義 ⑤政府, 軍隊,敎會 內의 문제, 階級意識 2장은 인간들 스스로가 나도 잘목했고 너도 잘목했고 다 잘못했다고 판단할 ㅏ수 밖에 없고 그런 판단에 대해서 한 사람도 아나다라고 핑게할 수 없다. 그 이유는 1절에서 간은 일을 行하느니라 바을의 論理에서 一次的으로 2장에서는 몸든 사람 하나 하나가 다 1장에서 말하는 그런 죄를 범하고 잇다고 하니 죄의 適用(적용)이다. 주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하고 있다.(17절 유대인이라 칭하는 녜가). 유대인들이 생각하기를 저 안맏는 이방인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성경을 읽을 때 특별히 죄를 만나면 꼭 다른 사람들을 생각한다. ◎설교 떄 에를 들 떄에 신문에 난 사간을 들면 공감한다. 그러나 각자 나는 어떻는가 생각지 않고 동의한다.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에게 너희 모두가 죄인이다고 한다. 이것이 정리되지 않으면 성경공부가 나하고 관계없는 남의 문제 다루는 교리공부가 되기 쉽다. ◎1장에서는 客觀的인 죄를 다루고 2장에서는 그 罪論이 나에게 적용되느냐 하는 部分을 살펴야 한다.
▣ 2절 : 이런 일을 行하는 者에게 하나님의 判斷이 眞理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1:18절에는 不義를 막는 사람들이란 똑같은 말이다.
▣ 3절 :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1,2,3절에서 계속해서 하는 理由는? 바울이 보기에 유대인들이 자꾸만 자기들은 罪人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는 選民이다고 한다. ♧시편 1편에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르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교인들은 우리들은 福잇는 사람들이니까 저 罪人들고 같지 아니하다고 한다. 시편은 不信者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믿는 사람(信者)들에게 너희들이 믿는다면 晝夜로 여호와의 律法을 즐거워하며 黙想하는 자로다. 거기가면 걸린다 주야x하루1회x. 그러면 나는 惡人인가. 아니고 福잇는 자인가? 묵상치 않고, 나는 무엇인가? 중간적인가? 아니다 . 시편1편에는 두가지의 사람이 있다.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과 악인의 꾀를 좇아 사는 사람이다. 결론은 義人의 길은 여호와께서 認定하시나 惡人의 길은 亡하리로다. 中立은 없이 두가지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생각한다. 나는 악인 편은 아니다. 이것은 不信者쪽을 두고 하는 말이다고 한다. 막상 信者쪽을 두고 말할 때는 “예! 나도 罪人입니다”고 하지만 普遍的으로 말할 때는 불신자와 나를 빼놓고 생각하는 함정에 빠진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바울은 처음부터 2정에서 律法을 지킨다ㅏ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네가 그렇다”고 한다. 예증 두가지 부류의 사람 : 감기만 걸려도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 죄책감에 잡힘. 다른이-- 과오,불법, 탈세를 행하고 종업원 賃金을 주지않고 장사 때 詐欺, 득죄를 남기고도 事業이 잘 되니까 “뭐! 잘못이냐 헌금만 많이 ㅏ내면 되지 , 나는 집사, 장로로 앉아 있다.
▣ 4절 : 바울은 한ㄴ걸음 더 나아가서 ?네가 하나님의 仁慈하심이 너를 引導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봐주니까 죄가 없어서 봐주는 줄로 착각하느냐? 그것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인자사힘이 너를 찿아와서 회개하라고 인도하신다. 너도 죄인인데 회개만 하라고 誘導(유도)를 하시는데 그런데도 그것을 못알아차리고 항상 다른 사람보고 하는 말로 한다. ◎說敎하는 설교자도 자신은 悔改하지 않고 다른 ㄴ사람만 회개하라고 하고 新聞에 나오는 거물급 이야기만 한다. 나는 자꾸만 빠져나가는 교인들이 많으니 크리스챤문제를 직법거론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자, 용납이 풍성하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선 것같지만 다른이 보다 하나님 앞에서 직접 대면할 때는 하나님의 仁慈,容納이 넘치도록 부끄러운 것 뿐이다. -- 하나님이 너무나 봐 주니까 그냥 또 봐 주시겟지 한다. 아직도 벌받지 않앗는데벌을 내리실까? 더구나 “그리스도꼐서 내 중한 죄를 담당하셨는데 뭐!잘 할 것이야 한다. 용서받은 것은 받은 것이고 죄인인 것은 分明해야 한다. 남을 쉽게 판단하면서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다. ? ??? 이것은 敎理나 理論이 아니고 내가 받고 내가 변화되고 내가 恩惠를 받아야 한다.
▣ 5절 : ?다만 네 固執과 悔改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震怒의 날 곧 하나님의 이로우신 判斷이 나타나는 ㄴ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고집이 많고회개치 않으니 -- 벌, 심판을 쌓아가고 있다. ? ◎???강팍하게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 왠만한 말을 듣고도 까닥하지 않는다. 원만한 설교를 듣고도 교인이 반성치 않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敎會生活을 오래하다 보면 얼마나 둔해지는지 모르겠다. 바울은 이 문제를 생각하고 다루고 있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判斷이 나타낼 떄가 있다.
▣ 6절 :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報應하시되 5절까지는 깨끗하게 사는 사람들, 우대인들, 교인들에게 직접 도전했는데 6절-11까지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行한대로 반드시 報應하신다. ♧점검 행한데로 보응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이 오늘 ㅏ내가 조금 선행을 하였다면 좋은 것을 주시고 악을 행하면 벌을 주시는 것으로 보는 자그만한 일들 하난 하나에 대하여 생각하지 말고 基本的인 것을 생각해야 된다. 기본적으로 나는 선을 행하는 자인가? 악을 행하는 자인가? 1. ▣ 7절 : 참고 선을 행하여 榮光과 尊貴의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永生으로 하시고(한편으로는) 2. ▣ 8절 : 오직 당을 지어 眞理를 좇지 아니하고 不義를 좇는 자들에세는 怒와 忿으로 하시리라.(다른 한편으로) ※인내와 선행으로: 왜 참고라는 말을 썼을까? 실제로 하나님의 말슴을 順從해 나가려면 상당한 忍耐가 필요하다. 1.2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공평성을 말한다. 하나님은 어느쪽이든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고 편애하지 않느다. ◎실재로 내 주변에 대부분이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나만 억울하다. 시내/시외버스 탄다. 시외서 타면 돈을 안낸다. 경계선을 넘어가면 더 낸다. 마음의 가책이 된다. 다른 많은이는 그렇게 않는데 나만 억울하다. 참고 선을 행하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반대로 당을 지어 : 자기 이윤을 추구하는 것, 이기적인 야망. ? ????앞에 말과 대조적이다. 교인들 중에 나만하는데 인내심이 없으면 무너져 버린다. --이기심으로 사는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끼여있다. 떼를 지어서 진리를 좇지 않고, 불의를 행한다. 이것은 一次的으로 信者를 두고 敎訓한다. ♣적용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데 내 마음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죽 내가 어느 쪽으로 끌고 가려는지 내 마음의 욕심 점검이다
▣ 9절 : 惡을 행하는 各 사람의 靈에게는 患亂과 困苦가 잇으리니 척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 10절 : 善을 행하는 各사람에게는 榮光과 尊貴와 平康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불의를 행하면 환란과 곤고가 있고 ◎선을 행하면 영광과 존귀,평강이 있다--여호와 묵상--노와 형통 --뒤에 축복을 가지고(오해말 것)자기의 욕심을 추가하지 말자. ◇시험장의 컷닝하지 ㅏ않으면 하나님이 더 큰 영광, 존귀, 평강이 잇으리라 고 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축복, 영광, 평강이 아니다. 나중에 영광스럽게 하나님나라 존귀히 여기는 것 모든 이가 하나님나라 영광을 즐긴다. 하나님 영광을 신뢰해야 한다. ◎因果應報는 佛敎의 思想이다. 성도는 행함대로 보응이 아니고 은혜로 보응하심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후 다윗의 죄-- 2장은 죄론으로 이야기하기에 이 말이 ㅏ가능하다. 신자가 ㅏ된 후는 이것이 잘못이다 욥기를 읽으면 친구들이 이 論理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罪를 ㄹ범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잇을 것이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행한대고 갚으신다는 理論이 철저했다. 그런대 욥은 아무리 생강해도 자기가 그런 큰 죄를 ㄹ범하지 않았으니 아니라고 한다. 韓國人들은 욥기서를 읽을 적마다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본문에 가서는 욥기를 잊어 버리고 因果應報의 原理로 많이 ㅏ새각한다. 행한대로 갚는다. ◎일차적으로 하나님께서는 행한대로 갚으시는 것이 분명하다. 죄인은 심판하시고 의인은 구원하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는 것은 의를 행하면 永生할 것이다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처음 1장에서부터 인간은 범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이야기르 ㄹ하는 것은 결국 모든 인간은 참고 선을 해하는 쪽에 있지 않고 당을 지어 자기 이기적인 욕심에 따라서 眞理를 좇지않고 不意를 좇고 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그 행한대로 ㅏ갚을 것이다 너 행한대로 良心的으로 말해 보아라. 너 지금 참고 선을 행하고 있느냐 아니나 양심대로 말해 보라 . 하나님께서 양심대로 갚으실 것이다. 그 때는 네가 어느쪽에 설 것인가? 그런 면에서 행한대로 갚으시는 것은 분명하다. 이 ㅏ행한댜로 갚으시고 심판할 떄는 한 사람도 예의없이 결단해야 하고 심판받아야 한다. 그래서 로마서 3:10에는 義人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한다. 다 명망받아야 하니 하나님이 다른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다. 의의 길인 예ㅒ스그리스도를 보내셧다. 복음은 하나님의의가 나타났다. 복음이 왜 기쁜 소식인가? 罪人들에게 의롭게 되는 길을 하나님이 마련하고 주신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 論理를 쓰신다. 사실 義를 행하면 永生을 주신다. 그런데 그 의를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 그 因果應報의 原理에 의해서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으니 하나님이 인과보응의 원리를 넘어서 더 큰 原理를 提示하시는데 그것은 예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제시신다. ‘그 구원의 길이 크기 때문에 그 구원의 은혜의 혜택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 안에 잇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그 인과보응의 원리가 1차적으로는 있고 하나님이 사용하시는데 율법 아래 잇는 자들에게 사용하심 하나님이 은헤 아래 잇는 사람 그리스도 안에 잇는 사람에게는 그 인과보응의 원리를 사용치 않는다. 이미 심판받을 것인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은혜 아래 있기 대문에 십자가의 복음의 원리에 의해서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 그리스도가 가소기 전에는 맞으나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는 다르다.
▣ 11절 :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를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 ??낯을 대하여 보면 ◎유대인이라고 특별히 봐주지 않고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같이 대하신다. ◎실제로 내가 선을 행하고 약을 행지 않는데 기본동기가 아디에 있는가? 하나님은 겉으로 적당히 속아 넘어가지 않으니 내 마음의 동기를 보신다. ◎단순이 하나님의 법대로 선을 행하느냐 악을 행하느냐 보다도 왜 내가 이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잇는가 그 동기를 보신다. 니 마음의 자세, 동기 자체가 하나님 앞에 경건하고 의를 따라 해야지 그것이 아니고 내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이 쪽은 잘못이니 저쪽을 하지 하지 말라
▣ 12-16절 : 律法없이 범죄한 者의 이야기 1-11까지는 유대인들, 율법을 알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주대상으로 하면서 1) 남을 판단하는 수준에 잇고 자기들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도전하면서 너희들도 똑같다. 너희들도 똑 같은 죄를 범한다. 하나님이 오햇동안 참고 봐 주셔서 그렇다. 하나님이 회개하고 기다리고 봐 주신 것인데 너희들이 회개치 않고 고집부리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2) 12-16절은 그렇다면 율법을 전혀 모르고 율법을 받지 못해서 뭐가 어떻게 된지도 모르고 잘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예화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한국인의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되는가? ans) 율법없이 범죄한 사람은 율법없이 망한다. (12절) 율법이 잇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으로 심판ㅁ을 받으리라 . 똑같은 이야기다. 율법이 없으면 율법없이 심판하고 율법이 잇으면 율법으로 심판한다. 율법이 잇으면 모르는데 율법이 없으면 어떻게 심판을 하는가? ans)▣ 13절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다하심을 얻으리니 --율법은 듣고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득고 아는데로 행동을 해ㅏ야되고 실천을 해야 된다. ▣ 14절 : 어떤사람은 율법을 들은 적이 없는데 율법을 들은 사람처럼 올바르게 산다. 이방인들이 本性으로 자기 양심이나 본성적으로 율법의 의를 행할 떄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 스스로 율법을 갖고 잇다(本性이) 그래서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송사도하고, 가치, 판단으로 행동지침을 내려주기도 한다. (良心) 그래서 ▣ 15절 마음에 새긴 율법이 ㅏ행위를 나타낸다. --마음에 율법이 새겨진거나 같다. 복음을 들엇거나 책에서 보앗거나 한 적은 없지만 알고 있다. 예증 우리가 법은 잘 알지 못할 정도로 많다. 그러나 우리 양심은 법대로 살고 잇다ㅏ. (기준대로) 또 우리 양심이 분별할 수 없는 법도 많이 잇다. ♣예화 인도에 서서 택시를 부르며 괜찬은데 차도에서 택시를 부르면 딱지를 땐다. -- 차도에 서면 안돼고 인도에서 해야 한다. -- 이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모른다. 위에서 부르나 아해서 부르나 무엇이 다른지 모른다. 가꾸로 ㅏ생각하면 차가 다니니까 사람이 ㅏ다니니까 하면 이해가 되나 일번적으로는 그 생각을 못하고 내가 잘못한 줄을 모른다. 또 이것은 사실 도덕적인 죄는 아니다. 그러나 도덕적인 죄는 거의 양심적으로하지 않는다. 양심은 일번적으로 믿을만한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는 대개 양심이 삐뚤어져 잇다고 말하고 잇다.(렘17:9; 31:31--) 양심은 화인맞은 양심이라고 한다. 정상적인 양심은 말씀의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한다. 마치 법을 닫고 알듯이 몰라서 절못된것은 성경의 말슴의 조명을 받아야 한다. 바울사도는 :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증거한다ㅏ. 성령을 옆에 보증을 셍위놓고 말한다. 왜냐하면 양심은 때로는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럼13:23-27 구스인) ◎믿지 아니하는 사람의 마음에 그들이 ㅣ이 세상을 살아가는 基準은 무엇인가. 그들 마음 속에 일그러져 있기는 하지만 그들 마음 소겡 있는 사소한 잘못을 알고 기본적인 것 즉 하나님이 계신 것, 하나님의 능력을 나는 몰랐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없도록 핑게할 수 없다
▣ 16절 : 내 복음에 이른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ㅏ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사람들이 숨겨두고 잇고 노출되지 않은 부분을 하나님이 마지막날에 다 노출시켜 심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나중에 예수님께서 심판하신다 내 복음에 이른바와 같이 -- 복음을 알고 잇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을 알고 잇다.
♣ 12-16절 정리 ♣ 양심에 따라서 자기 죄를 알기 때문에 무엇이 큰 죄인가?는 사소한 도덕적인 죄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가 --더 重要한 罪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어떻게 심판받을 까를 알아야 ㅏ한다. ◉많은 이들은 佛敎와 儒敎나 다 같은 神이 아니냐고 한다. 혹 圓佛敎, 카토릭, 佛敎가 같은 合唱團을 만들고 하는데 실제로 다른 宗敎에서는 어느 종교나 다 마찮가지라고 말한다. 기독교를 排他的이라고 말한다. 자기들은 眞理가 아니기에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다 맞다 한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에 ㅏ대한 인식을 자기 양ㅇ식적으로 나는 괜찮다고 한다. “나도 “양심적으로 종교”를 가지고 있다. 당신이 말하는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나도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의 은밀한 부분은 마지막날에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왜 내가 그 종교를 가졌느냐고 물어 봐야 한다. ◉구원 꼭 예수를 믿어야 구원얻는가? 예수를 믿지 않고도 구원얻는 길이 있는가? 神學的인 理論 중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이 아니고 구원은 은혜로 ㄹ받는다는 말을 정리하여야 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것을 받는 것이 구원이지 내가 믿음이라는 어떤 것을 갖고 잇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구원은 무엇을 보고 주는 것이 ㅏ아니고 그냥 주시는 것이다. 다만 거져주시는 구원을 감사합니다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이라 한다. 주시는 것이 먼저이고 받는 것이 나중이니, 받는 것 보고 먼저 주시는 것 없다. 주시지 않는데 받는 것이 만저 잇을 수 없다. 줄 때 받느냐? 안 받느냐? 하나님이 주시는데 내가 안 받으면 너 구원을 못받고, 하나님이 주시는데 네가 받으면 너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라고 한다. “믿음과 은혜” 두가지로 설명할 때는 은혜ㅒ로 주어지니까 그냥 준다. 그냥 주는데ㅐ도 안 받겠다고 한다. 그러면 안준다.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원 못받는다는 이야기지 믿음이 어때서 받느냐 받지 않느냐는 이야기는 다르다. 에증 ◉어린아이가 구원을 어떻게 받느냐?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니 은혜로 받는다. 이 아이는 은혜로 주시니 무심토 받는다. 그런데 이 구원을 받을 줄도 모르고 거절할 줄도 모르는 아이는 ? 1살 먹은 아이에게 너 예수 믿으면 구원얻는다면 모른다. 3살, 5살 정도 되어도 거의 어린아리 때는 모른다. 믿지도 않고 안 믿지도 ㅏ않고 . 그러면 믿어서 구언얻는 것도 아니고 안 믿어서 멸망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그래서 은혜는 그런것과 관계가 없다. 하나님게서 구원해 가시고자 하시면 구원하신다. 정신박약아, 지진아, 교육받지 못한 할아버지들은 어떤가? 구원에 대하여 이성적으로 말이라도 알아 들으면 받아 들이고, 거절하면 ㅏㅣ구원에 대하여서 따지고 하지만 그런 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복된 소식인지, 나쁜소식인지 모른다. ☆구원은 본인의 신앙고백에 근거해서 받는 것이 아님을 一次的으로 정리해야 한다. ☆ 二次的으로 본인이 거절하면 못받는다. 욘4: 박넝꿀가지 아끼시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하면 구원하신다. 선택을 하실 權限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이 구원하실 어린이들은 하나님이 구원하신다.
♧ 12-16절은 율법이 없는 사람, 福音이르 받지 못한 사람, 교회에 한번도 다녀보지 못하고 예수 믿어야 되는 것을 모른 사람은 그 양심을 따라서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이 양심을 따라서 심판을 할 때도 분명히 구원받을 사람이 없다. ◎나는 율법을 듣지 못하였다고 핑계해도 양심이 잇다. 그 속에 숨겨둔 모든 것까지 마지막 날에 심판 때에 다 들어난다. 그 때 자기의 심판대에서 죄를 인정하고 멸망받을 것이다. 2:1-11에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보고 너도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지적하시고 이번에는 몰랏습닏. 하니까 모르긴 왜 몰라 네 양심이 잇지 않느냐고 지적하신다. ◎죄를 범한 것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란 이야기이다. 복음이 들어오기 지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길이 없느냐? --행함으로는 구원을 얻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 하나님이 은혜로 구원해 주시면 구원받을 수 잇고 어린아이도 구원받을 수 잇다. 복음을 얼마나 설명해야 구원을 얻느냐? ◎어떤이는 복음의 도리를 충분히 알고 제대로 믿고 구원을 얻는데, 어떤이는 복음을 제데로 몰라 엉터리로 믿기도 한다. 그러면 구원을 ㄹ못받느냐? ◎구원은 하나님게서 은혜로 주시는 것이니 다만 저 사람이 이 은혜ㅒ로 주시는 복음을 받아들이느냐 않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일ㄹ단 자기 양심이 잇어서 지가, 판단 능력이 있고 영접하느냐? 거절하느냐?에 따라서 판단받으면 멸망한다. 구원의 길은 그리스도 밖에 없으니까? 그리스도를 소개받지 않앗을 때는 ◎1장에서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계시되엇기 떄문에 그 속에서 그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실 수도 있고, 양심을 통해서 구원해 가신다 선택한 사람은 하나님이 구원해 가신다 복음이 소개된 후에도 복음을 못알아들은 사람은 자기 주권으로 처리하신다 .
◇그래서 2장의 사건은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변명할 수 없다. 나는 율법을 못받았습니다. ,나는 예ㅒ수 그리스도를 못들엇습니다. 해도 필요없다.너 양심이 너의 잘못을 지적할 것이다.이것이 2장의 내용이다.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습니다.◇
17-29절 핑개할 수 없다 (유대인의 죄)
▣ 17절 :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네가 그리스도를 영접햇다하는 넨가 구원의 확신이 있다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말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으 유모(사고의 틀)을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잘 모르는 사람들을)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잇는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리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밈ㄷ으니 --그 정도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 21절 :그러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않느냐? -- 상당히 찌리는 말슴이다. (지도자들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 않느냐? 다른 사람을 가르침면서 자기 자신을 가르치지 못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매일성경을 하면서 QT를 배우면서 많이 조정하였다. 다른 사람ㅁ보다 항상 자기자신이 먼저여야 한다. 지도자들은 내가 가르침을 받는 것이 따로 필요하다. ♠주일학교 교사들이 공과준비를 할 떄 나부터 먼저 가르침을 받고 해결을 받고 가르칠 것 저꾸 교인들이 남으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남의 이야기를 무척 많이 한다. ♡매일성경을 하면서 자기 자신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 21b 절 : 구체적으로는 도적질 말라는 네가 도적질하느냐?하면서 자지는 도적질하고 ▣ 22절 :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물건을 도적질하느냐? == 실제로 우리나라가 도적질하면 형을 살아야 된다고 죄수를 잡아가고 하면서 바로 그 사람들이 도적질하고 있다. ◎ 검철, 경찰, 판사, 변호사, 국회의원, 정치가들이 행하고 있다 ▣ 22절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물건을 도절질하느냐? == 자동차 사고나지 않게 해 달라고 돼지머리를 두고 고사하는것,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돼지 입에 돈을 물리고 절하고 고사한 이틀 후에 사고가 났는데 왜 그러냐니까 “돼지에 절했으니 사고가 그것만 났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과학적으로 하면서 훨씬 똑똑한 살함들이 우상을 많이 섬긴다. 본문의 뜻 : 우상 극것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하면서 왜 신전에 물건은 가지고 ㅏ오느냐 즉 미신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면서 몰래 어떤 것은 자기가 챙기서 가지고 있고 부적도 가지고 다니고 한다. 어떤 것은 장난으로 돼지머리를 갖다놓고 하는대 ♡학생들 입학시험철이 되니 엿도 갖다주고 하면서 왜 교인들도 따라하느냐? 100일기도, 40일기도 재미로 여겨서 하는 것에도 격려도 하지만 그곳에도 가증히 여기느 것을 나타낸다. 主日學校학생에는 하지 말라고 하면서 어른들은 행하고 있다 問題가 있다 (어른들이 자녀들에게는 나쁜것 하지말라면서 술마시고 ,담배피우고 온갖 나쁜것 다 한다) 적용 우리 자신은 안 그런것 같지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입장곤란하면 시침이 딱떼고 언제 그라느냐고 한다. 한번 거짖말하면 이제는 물릴 수 없으니 두번 거젖말하고 세번 거짖말하고 한다 말이 많아져서 나중에는 사고하기도 미안하고 참 난처하고 아주 묘하게 만든다. ▣ 23절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 24절 :기록된 바와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하나님의 영광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기 떄문에 이방은들 속에서 하나님께 모독을 드린다. --주기도문의 처음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수동태)_--내가 거룩히 여겨드려야 하나님이 받는다. 하나님 당신의이름이 거룻히 받으십시오라고 한다해서 해주고 않는데 될 수가 없다. 그 기도는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받으십시오라는 뜻이다. ♧점검 우리가 적당히 기도하오니 누구에게든지 하나님이 알아서 받으십시오 하는 것은 아니다 . 교인들이 잘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500미리 홍수사건을 놓고 대구시의 교회가 죄를 많이 범했고 일반인들이 피해를 많이 당했다. 25절 :네가 율법을 ㅏ행한죽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네가 율법을 범한죽 네 할례가 무할레가 되었느니라. 할례받는 서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다. 실제로 할례를 받았으면 세례를 받았으면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야 되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종이다 라고 고백했으면 그리스도의 종노릇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한다. 그렇다면 세례받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고 할례받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 26절 :그런즉 무헬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레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율법을 받지 못한 자가 양심을 따라 그 법을 잘 지키고 잇으면 그 사람이 더 낫다.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자연계시에 따라 그 양심에 계시해 주므로써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기 양심에 따라서 몰바르게 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면(물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모르지만)구원받을 수 없다고는 못한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조명하시고 자기가 양심껏 고백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기가 깨닭은 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 ㅇㅆ다. (하나님이 계시를 물론 더 주시미 구원받을 수 잇다. ) -- 예수를 믿고서 개인적으로 구원받았습니다. 하는 이 중에 아닌 사람도 많다 ▣ 27절 :또한 무할례자가 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법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반대로 不信者들이 우리들을 判斷한다. ▣ 28절 ;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오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 표면은? 겉으로 공개적으로 , 대개 공개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 29절 : 오직 이면적(비밀히)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례니 신령(영)에 있고 의문에 잇지 아니한 것이요 그 칭찬이 사람에 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께서니라. --하나님이 판단하신다.
◎2장 끝부분에는 특벌히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고 모든 것을 알고 성경도 배우고 지식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도 하면서 내가 저지른 행동--겉으로는 정장을 하고 교회에 가면 종흔 장로, 집사님이지만 과연 그럴까? 아닌 사람이 너무 많다. 그것을 바울은 잘 알고 지적하고 잇다. 우리 한국 신자 중에는 바리새인들이 참 많다. 이 외식에 대하여 오해말자 ◇바리새인의 외식이 基本的인 信仰과 救援은 괜찮은데 혹시 기도를 별스럽게 하고 남에게 보릴려고 한댜고는 오해하지 말자.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고 마음 속으로 부터 그리스도의 삶을 살지 않고 긑으로는 그런척하는 가짜 그리스도인을 두고 말한다. 그래서 예스께서 는 바리새인들을 저주하고 화잇을 진저라고 하신다 . 교인은 교인인데 조금 의식하는 것을 말하는 것아니고 교인행세를 한다. 대부분의 한국신자들이 ...
제 3 장 연구
▣ 3:1절 : 그런즉 유대인의 나름이 무엇이며 할레의 유익이 무엇이뇨? --ㅡ렇다면 유대인의 나음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바울은 당장에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서 제개한다. 왜? 유대인들은 선민들이고 유대인을 통해서 모든 것이 왔으니까? 그렇다면 ㅏ교회 다니지 않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없다. ▣ 2절 : 유대인의 나음이 “범사에 많으니--많다.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혜택이 있다.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앗음이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 율법 때부터 가지고 있었고 전승해 주었다. 굉장히 중요한 일을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文學的으로 지키려고 하는 만큼 聖經이 잘 전승되어 온 것은 감사한 일이다 --中世에 수도원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들이 一平生성경을 기록하고 있는 일이 때로는 따분하고 필요없는 일 같지만 오늘날 우리들을 위해서는 참 좋은 일이 --성경을 잘 베껴주었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이 성경을 알고 가르치는 일에 대해서 우리가 혜택이 많다. 그만큼 복음을 정확히 알수 있고 복음을 접할 충분한 기회가 주어져 잇다. ▣ 3절 :“어떤이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말슴을 갖고 있고 복음을 듣고도 교회에 잘 다니고 성경을 수없이 듣고 줄줄이 알고 있으면서도 믿지 아니하면 어찌하는가? --할 수 없다.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패하겟느냐? 결국 하나님만 헛탕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만 자기를 끝까지 신실하게 못해가는 것 아니냐? ▣ 4절 : ”그럴 수 없다.“사람은 다 거짖되되 하나님은 참되시다.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하나님도 잘못되고 하나님도 문제가 잇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信實하시고 신실한 사람을 찾고 계시고 신실한 사람을 後援하고 계신다. 그 구원사역을 신실하게 移行하여 가신다 意識으로 행하는 자는 구원을 ㄷ을 수 없다. ▣ 4b : 시51:4에 ”주께서 주의 말씀에 으롭다함을 얻으시고 판단을 받으실 때 내가 이기려 하심이라”<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실 때 내가 의롭다라고 하고 주께서 판단을 받으실 때에 내가 순전하다 하리이> 하나님 당신으 말슴은 지당합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 확실합니다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판단하시든간에 할말이 앖습니다.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다웃은 잘못이 잇고 인간에개는 문제가 잇지만 하나님은 항상 진실하시기 때문에 다웃이 말하기를 주께서 주의 말슴에 의롭다하심을 얻으시고주님의 말씀 자체가(판단)의로우시도다. 즉 주님꼐서 판단하실 때 주님은 승리하시고 나는 항상 진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말씀을 받으 놓고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 때문에 어떨게 되었느냐?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는ㄴㄴ냐?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옳고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정당하시다. ▣ 5절 :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을 하리요 나ㅐ가 사람의 말하는대로말하노니 진노를 ㅏ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옿으시고 내가 잘못한 것은 맞는데 내가 잘못하는 것만큼 하나님은 옳으시고 의롭다고 대조적으로 나타나니까 결국 하나님은 내가 잘못하는 것으로 손해보는 것은 없지 않은가? --악인을 심판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로움이 들어났느니까 결국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더 드러나지 않습니까?” 말은 맞으나 바울은 그래서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는 것이 잘못이란 말인가? 아니다 너는 잘못했고 하나님은 의로우시니까 너는 벌을 받아라. ▣ 6a : 그렇지 않다. 너 절못이 하나님의ㅏ공의로우심을 노출시키든 말든 너 줄 수 없고 너는 벌을 받아야 한다. ▣ 6b :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리요”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함면 공의가 서느냐? ▣ 7절 : 그러나 나의 거짖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도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내가 절못을 많이 범하고 (거짖말) 하나님은 참되신 분이라고 도 많이 들어났으니 하나님은 손해보는 것이 없는데 꼭 저에게 벌을 내리셔야 합니까? ▣ 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그러면 善을 이루기 위하여 惡을 행하지 않겠냐? 어떤 이들이 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를 받는 것이 옳으니라> --이 본문에서 가롯유다를 생각하여 보면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앗으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닌가? 가룻유다는 상을 받든지 벌을 내릴 수 없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ㅣ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ㄹ십자가에 죽게하는 드라마에 (각보냬해 주었으니 가롯유다가 아니면 누가 팔아도 팔아야 되지 않느냐? 십바가에 못박게 하소서라고 누가 부르짖지 않으면 어떻게 십자가에 못박느냐? 외치는 사람이 없는데 수고했다고 돈을 주어야 하지 않는냐? <억울하다고 외친 가롯유다이나 그것은 논리의 함정이다 가룻우다가 팔것을 미리 알고 예언을 한 것을 믿는다면 가롯유다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가롯유다의배신을 역이용하셔서 자기의 크신 뜻을 이루시는 능력도 믿을 수 있다. 또 가롯유다의 배신없이도 십자가의 사건은 성취될 수 잇다. 만일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나 빌라도나 로마병정이나 무지한 군중들의 반역행위가 없었으면 십자가가 어떻게 성취될 것이냐고 묻는다면 --人間의범죄나 사탄의 반역이 없는데 십자가가 ㅏ왜 필요하느냐고 물어야 하겠지요.이런 상상과 가정은 다 쓸데 없는 사람들의 공상이요 무가치한 논란이다. 때로는 하나님의 크신 지혜와 뜻을 그르칠 위험도 잇으므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ㅣ이것은 주로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비릇한다. 부활문제에서도 7형제와 형수와의 관계를 질문받는 예수니께서는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라고 하셧다. 어리석은 논란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人間의 犯罪때문에 필요한 것이며 가롯유다의 배신과 같은 죄를 범한 저와 우리 성도글의 죄탓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배신이나 과오가 하나님의 뜻을 도와드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배신과 과오 때문에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햇다. 기억해야 한다. 비록 가롯유다는 십자가의 혜택을 입지 못했지만 그날 예수님을 배신한 사람 중에는 십자가의혜책을 입고 용서와 구원을 입은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저희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눅 23:34)라는 예스님의기도를 기억하라. 결국 유다의 죄는 십자가에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합리화될 수 도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원수이다. 우리의 원수이기도 한 사단과 공모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방해하려고 한 것이 실패한 것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全知하신 智慧로 그 계략을 미리 아셨고 역이용하여서 차질없이 구원사역을 성취시키셨다. 또 다윗이나 바울은 자기들의 지난 과오를 뉘우치면서 그것을 거울로 하여 보다 거룩한 삶을 살았자만, 그 罪를 合理化하지 않았고 平生 근신하며 날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삶을 살았다. 롬3:4은 다윗의 고백(시51:4)이다. 우리들도 다윗과 바울과 같이 고백을 하고 저들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함이 당연하다.
3:9-18절 다 죄 아래있다. 序言 : 과연 이 세상에는 선인은 없는가? 어느 정도의 善도 행하지 못하는가? 韓國人도 다 罪아래 있닫고 宣言할 수 잇는가? 그럼 당신 저신은 어떤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水準의 善이나 義를 행하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구정될 수 잇는 의인이나 심지의 대인관게에서도 의인이 없다는 것이 1:-2:의 內容이다. 어떻게 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의 선이 잇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실로 인간의 스스로의 깨달음이나 努力으로 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양심을 주셨고 또 공의로운 심판과 선행에 대한 축복으로 인간을 선으로 유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1장에서 하나님께서 인간 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보여주셨고, 또 自然萬物을 통하여 분명히 보여주셧음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이 虛妄하여지고 어두워졌다고 했다. (1:19-21). 하나님의 진리를 거짖것으로 바꾸며(1:25)순리를 역리로 사용하고(1:26)악을 행하면 사형에 해당됨을 알고도 오히려 그것을 옳다고 판단한다. (1:32) 2장에서 남을 판단하는 정도의 지식과 수준이 잇으면서도 자신도 같은 일을 행하며(2:1) 회개의 기회를 주셧지만 구집을 부리고(2:4,5)율법을 받아 남응ㄹ 가르치기도 하면서 자신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그 율법을 범하고 잇고(2:19-23) 심지어 불의와 거짓을 행하면서도 그긋이 하나님꼐 보탬이 된다고 주장하는 철면피도 위선자이다. (3:5-8) 사실 인간은 선을 힘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을 힘쓰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이상에서 나열한 인간의 罪狀은 하나님의 啓示와 가르침,책망과 징벌같은 많은 ㄴ혜택을 받았음을 背景으로 하나님의 積極的인 개입으로 그나마 약간의선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우리들을 그냥 방치하지 않고 찾아오셔서 啓示하시고 깨닭게 하시고 인도해 주시기 떄문에 어느정도의 선이 유지되고,良心에 따른 行動이 있고 社會正義나 人類愛가 드러나 보이는 것 뿐이다. 때로는 이 福音의 빛을 받은 사람들의 도움이나 照明을 받아서, 때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전체에게 내려 주시는 빛을 받고서 어름푸시 희미하게 선을 알고 따르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는 소망이 없다.
결론 9절 :그러면 어떠하뇨ㅛ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1.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宣言하였느니라 Q)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事實을 어떻게 말슴하시고 있습니까? ♣핵심 우리가 범한 죄가 잇ㅆ어 죄인이지만 윌가 하나님의 의에 基準에 미달하기 때문에 죄인이다. ▣ 10절 :기록한바 2.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道德的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것) ▣ 11절 : 3.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찿는 자도 없고 ▣ 12절 :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Q)하나님꼐서는 우리의 죄가 우리 속 어딖ㄲㄲ가지 미치고 있다고 했습니까? ▣ 13절 : 저희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무덤 속에 송장 썩은 냄새가 끊임없이 나듯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악한 생각과 말이다. ▣ 14절 :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人間 속에서 나오는 惡에 대한 강력한 表現 ▣ 15절 - 18절 :그 발은 피흘리기에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에는 하나님 두려워함이 없느니라함과 같으니라 ? ???이때 사람 속에는 악한 죄가 끊임없이 나타남 죄가 역사하는 인체의 각 부분을 설명하고 있으나 文學的이기 보다는 죄가 우리의 全人格에 影響을 주고 잇습니다. 즉 우리가 하는 말과 意識的으로 행해는 행동(발이 가는 것), 우리 생활의 각 부분(그 길에), 우리의 마음의 각 처까지 죄가 支配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와 하나님ㅁ과의 관게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否認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적용 저는 가끔 사람들을 깍아내리는 말을 합니다. 저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기가일쑤입니다. 저는 가지말아야 할 곳에도 갑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저도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살함처럼 비참한 罪人입니다.
◎일이 아무 일 없으면 괜찮습니다.나에게 문제가 닥치면 역행하여 일어납닏. 형상시에는 괜찮은데 내게 문제가 생기면 일어난다. 사람은 일을 닥쳐보아야 내 안에 얼마나 악독함이 아득차 있는지(이기적인 생각)를 악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내가 떄로는 사람을 죽일 수 잇을 만큼 악을 행할 수 잇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생각 조차도 하지 않는다--(하나님없이 내 마음대로 하는 생각이 밑바탕이 되어서) 선악과를 따먹는 것도 개인이 따먹으라고 해서 따먹는것이 아니다. 내 안에 따먹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그것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탄이 예수님에게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어늘 존혀 그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는 말해 보았자 꿈쩍도 않는다. 사탄은 가능성이 보이면 유혹한다. 예수님께서 배가 너무 고푸고 돌이 떡으로 보이기도 하니 예수님이 배고푸지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유혹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우리에게 유혹이 오는 것은 내 안에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잇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으니 점검해야 한다.
죄는 누가 만들엇는가? 하나님이 만드시지는 않으셨다. 죄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죄란 피를 타고 내려오는 것도, 전염되는 것도 아니다. 죄는 어디에 잇는가? 각자 본인의 마음 속에 은근히 하나님을 놓이고 섬기고 영광스럽게 하고픈 마음이 아닌 엉뚱한 ㅏ생각을 추구하려는 그 마음 안에 욕심고 연결되어 잇다. 죄는 왜 생겻는가? 人間은 人格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로보트라면 가만히 있는다, 동물도 가만히 있는다, 동물에게 아무리 감투를 씌워도 우쭐대지 않는다.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ㅃ뽄능에 의하여 움직인다 그것은 生理的인 本能에 지나지 않는다. 실재적으로 본능이 죄를 범하지는 않는다. 어린아이가 젖을 먹다가 다른 애기가 젖을 먹는 것을 보면 탈치는 것은 욕심이고 죄라기보다는 ㅏ생리적인 본능으로 보면 그 본능을 죄로 보지는 않는다. ◎ 인격이 형성돠어 가면서 자아가 형성되어 가면서 묘하게 自我란 人格體는 다른 사람을 느끼게 始作한다. 어린아이가 처음에는 모르다가 자라면서 무엇인가 부닺치면 나 아닌 무엇이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점점 나이가 들면 나종에는 말을 걸고 남을 느끼고 좋아하게 된다. 그런 것이 형성되고 어느정도 자리 잡히고 나야만 그 사람과 자기와의 사이에 욕심이생기게 된다. 그것은 인격이 갖는 것이다. 인깐이 무엇을 決定할 자유가 주어져 잇기 때문에 자유가 주어져 있지 않으면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싸우고 욕하고 하는 것은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죄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 자유를 잘못 행사하는 것이 罪이다. 하니님이 인간에게 자유를 준 것이 잘못이다라고 한다. 왜 하나님이 자유를 주셨습니까? 한다.이 자유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使用하면 너무나 좋은데 ♧民主主義가 좋으냐 자유가 問題가 있으니까 民主主義하지 않고 獨裁를 하면 좋은데 왜 독재는 抗拒하고 自由를 가지고 좋은 國民, 종은 國家를 이룩할 수 있다한다. 可能性이 있으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막사아자유를 주고 나니 問題가 너무나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6.29宣言 이후 문제가 많이 表出되엇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시면 慾心을 부리고 犯罪할 것을 아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하시는가? 아예 하시지 마실 것이지! 그러나 하나님은 자유를 주고도 그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너 자유를 누리니 어떻냐?나가서 살아보니 어떻냐:내게 돌아와 나를 너의 창조주 하나님으로 모시고 내 말을 들으면 자유를 행사하라 내 안에서 올바른 자유를 행사하라ㅏ고 요구하신다. 구렇게 요구하시고 그렇게 우리를 만들어 가실 계획을 세우셨다. 자유때문에 우리를 포기해 버리시지 않으시고, 자유 때문에 내가 골치 아프고 하니까 주지말자 않으시고 자유를 주고서도 내(하나님) 말을 듣고 올ㄹ바르게 자유를 행사하도록 만들어야 되겠다. -- 그래서 그리스도 안ㅇ에 있는 자에게는 自由함이 있다고 하신다. ♣연구 : 삼상8장과의 관계 (8:5절 “우라에게 왕을 주소서”)
우리에게 굉장히 자유가많다. 특히 우리 교회는 자유가 굉장히 많다. 자유를 주는 만큼 성도들이 게으르다. 헌금도, 성도들에세 십일조도 주장하지 않는다. 자유다. 내고 싶으면 내고 내십시오하니 어떤 성도들은 잘 내지 않는다. 그러나 얽어매면 많이 헌금한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얽어매는 것이다. 본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자기가 자유를 올바르게 알고 자유를 올바르게 사용해서 하나님께 헌굼도 할 수 잇도록 할 사ㅜ 있을 때까지 내 ㅂ려 두자. 구속의 原理를 하나님이아시고 미리 계획을 세우시고 그그렇게 해서 하겠다는 것이 바울사도가 정리한 구뤈론입니다. 구원론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주신 그 자유를 올바르게 행사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쓰고 하나님의 동의대로 자유를 누리고 소속,복종의 상태를 들어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3:19-31절 댓가는 지불되었다.(칭의론)
서론 죄에 대한 설명 <구원에 대한 설명, 칭의에 대한 설명> ▣ 19-20절 : 칭의에 앞선 종죄에 대한 설명 律法이 律法아래 잇는 자들에게 말한다. 대상 : 유대인을 대상으로 특히 구약과 신약시대 예수그리스도 오신 후의 연관연관찿는 것이다(설명). 구약의율법의 배경이 잇어야 한다. 주의해야 한다 --한국인은 유대인이 아니면서도 그르스도인들은 구약을 ㅏ배우기 ㅒㄸ문에 구약율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유대인 쪽인지 아방인 쪽인지 불확실하면서도 율법문제가 나와 관계를 이룬다. 명백히 할 것은 우리는 율법아래 잇던 자ㅏ들이 아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잇다가 여수를 만난 것이 아니라 예수를 만난 후에 보니까 율ㄹ법이 잇었다는 것을 우리가 나중에 알았다. ♧우리가 전도받았을 율법을 먼저 받은 것이 아니고 예수 믿으라는 것부터 받ㄷ고보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이란 측벌한 백성을 선택해서 그들에게 수천년에 걸처서 율법으 주시고 그들의 歷史를 이끌어와서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예수 믿은 후, 긐리스천이 된 후에 배워서 아는 사실이지 우리느 ㄴ율법시대에 산 일이 없다(우리나 우리 조상이). 사실은 우리는 해당 사실이 없지만 구약을 배워서 알고 있기 따문에 구약에 나오는 즉 율법 아래 잇던 유대인들과예수와의 건계를 설명들음을 통해서 지금 크리스탄이 돈 이후 우리가 구약(율법)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하고, 믿음은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지를 整理해야 한다.
여기서 19절에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內容은? 19절 :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심판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은 모든 사람의 입을 막고 심판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1.2.3장에서 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햇는데 특별히 3장 끝에10--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모든 사람이 다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찿지도않고, 차우쳐 무익하게 도고 선을 해하는 자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즉 율법이 주어진 후 율법이 유대인들의 삶을 조명해 보니까 또느 이방사람인 우리에게도 율법으로 조명해 보면 우리 무두는 율법을 억신 자들(여러가지 법을 어긴 자들)이기 때문에 결국 율법을 모르면 잘 모르면서 설치고 잇엇지만 이제 율법을 가만히 듣고 보니까 나는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래서 입을 막고 아무 소리 못한다. 변명도 할 수 없고, 나는 잘 했다고 할 수도 없고 입다물고 유구무언이어늘 --입은 있지만 알을 못한다. ▣ 19절c:온세상으로 하나님의 섬판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사실 유대인만 아니라 한국사람,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삼판아래 있게 하려고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주신 율법이기는 하니만 결국 율법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점검할 수 잇습니다. (양심, 자연계시,율법을 통해서) 격국 율ㄹ법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냐? 19절에 서 너희들은 罪人이다. 입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하나님의심판아래 있고 하나님의 심판받을 수 밖에 없다.
????????????????????????????????????????????????????????????????????????????? ?※ 聖經에서는 律法의 用法이 무엇이라고는 말하고 잇지 않지만 學者들은 3가지? ??? 用法이 있다고 한다<율법의 技能>???????????????????????????????????????? 칼빈. 루터의 견해 1기능 : 모든 사람을 정죄해서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왜 율법을 주셨는가? 정죄해서 심판받는다. ▣ 20절 :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죄를 그의 앞에 의롭다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께달음이라 --율법이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더 많은 죄를 드러나게 하기 때문에 율법에 따라서 내 행함을 검사해 보면 의롭다하심을 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율법을 잘 지켜 구원얻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말은 율법율법은 구원을 얻으라는 구원의 방편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십계ㅒ명을 주시고 모세를 통해서 많은 율법을 주셧는데 그것은 너희들이 이 율법을 잘 지키면 구원에 이른다라고 해서 실제적으로 구원얻을 방편으로 주신 것 아니다. 사실 구원을 얻게 하려면 율법을 안 주셔야 쉽지 법을 믾이 만들수록 걸리니까 법이 주어질 수럭 손해본다. 그래서 하나님꼐서 율법을 주실 때 구원하고프면 율법을 주실 필요가 없고 그래야 구원이 쉬운데 율법을 많이 주신 理由는 너희들이 罪人이라는 것을 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주의할 점 :율법은 종죄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율법에 악한 검정을 가진 사람들도 잇다. 神學的으로 이것을 반율법주의라고 한다. ? ????內容--호렙산에서 율법을 모세가 받아와서 백성들에게 다 전했다. 백성들이 ‘아멘’ 우리가 다 지키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는데 그렇게 대답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아닙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없으니까 율법을 받지 안겠습니다.고 율법을 거절해야 되는데 “예”하나님께서 명령하시니 지키겠습니다 라고 말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하고 잇는데 좀 지나친 설명같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는데 안받을 수 없는 것이고 율법을 주실 때 “이것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라. 너희들이 이것을 안벋으면 다른 것로 구원을 주지만 이것을 받으면 이길로 구원을 받아야 된다고 그 길로 율법을 주신 것은 아니다. 율법을 주실 떄 처음부터 하나님의 의도가 죄를 노출시키고 정죄하기 위한 의도가 잇기 떄문에 할 수 없이 그 율법을 받고 자기들의 잘못이 드러나야 한다. 이것이 율법의 첫번째 용법이기에 두번, 세번째 것을 봐야 한다 19-20절은 : 율법의 시대를 말한다.
Ⅰ.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마련된 하나님의 의가 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의를 율법을 통해서 알 수 잇으나 문제는 이 의를 우리 것으로 만드는데 잇다.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는 이 의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받게 되었다. 이 의는 유대인, 헬라인 차별없이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21절 : 이제는 (신약시대--예수님이 오신 때)율법 외에 하나님에 한 의(예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구약성경.눅14:44) 증거를 받은 것이라. ♣ 21절 主題 : 하나님의 의 19-20절에는 율법을 주셧다고 말슴하시고 21절에는 율법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한 의(그리스도)를 보재시는데 이 하나님의한 의는 갑자기 공중에서 홀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고 그 율법이 오햇동안 꾸준히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날 것을 예고해 왔다. ※ 율법의 둘째 용법(기능) 하나님께서 구원의길로 하나님의한 의인 그리스도를 보내신다는 것을 율법의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율법은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기능을 갖고 잇다. 바울은 이를 가르켜서 “몽학선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율법이 가정교사처럼 있으면서 그 아이가 자랄 때 가정교사 노릇을 했다. 내용 -- 나중에 진ㅉ짜 스승인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예수님이 올 것을 대비해서 설명하고 예수님이 오셧을 때 이 아이가 자라서 참 스승인 예수님에게로 보내준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임시로 역할을 하던 교사가 몽학선생이다. ==몽학선새의 두번째 용법은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의 구약전체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잇고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은 이 율법의여러 조항에 어슷나고 잘못했고 정리되고, 심판을 받을 것이니까.너희들이 살려면 이 율법아래 살지말고 빨리 그리스도에게 가라는 안내역할을 율법이 하고 잇다. 그래서 율법 하나가 양면성을 갖고 잇다. ♧적용 구약을 읽을 때 우리의 잘못도 보아야 되지만 동시에 그 율법자체가 보여주는 그리스도를 잘 보지 못하면 구약을 읽을 때 자꾸 마음의 걸림돌이 된다. 예증 구약의 제일 많은 법은 제사법이다. 죄를 범했을 때 성전에 와서 제물을 드리고 죄사함을 얻는 방법을 보여주고 잇는데 그것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이라고 히브리서에서 길게 설명하고 잇다. 실제로 짐승이 피를 흘리고 죽고했드라도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죄가 없어진 것처럼 가르치는 것이지 실제로 그 양이나 염소의 피 때문에 죄가 사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죄가 사해지는 것처럼 설명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임시로 설명하는 대치하는 벙법, 그림자에 불구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막상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그러한 혜택을 받은 것이지 짐승 자체가 아니다. 그약의 제일 많은 제사법 -- 구약의 율법을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측면에서 잘 보아야 하는데 -지나치게 말며--모든 사건은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은 사실이다. 특별히 창--말까지의 윱법도 많이 나오지만 율법의에 歷史도 많이 나온다. 오경도 율법은 1/5 역사는 4/5이다. 그 많은 역사는 장차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잇다. 예증 그래서 아브라함도 나의 때 볼 것을 기다리고 보고 즐거워한다. 예수님이 하시니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1500년 전에 사람인데 당신 나이가 얼마냐고 한다. 아브라함이 1500년후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떄를 보고 기대하고 있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아들을 낳으면서 그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된 것을 알았고 이삭의 몸에서 메시야가 올 것을 잘 알았고 이 아들을 바친 후 다시 살아나서 얘ㅖ수 그리스도가 구세주가 될 것을 았았다는 것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족장들...출애급도 예수가 우리를 노예상에서 건져내는 사건으로 이해 가나안 정복사건도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장, 사령관이 되어서 우리의 앞정을 서는 것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의 땅으로 데리고 가시고 그 나라를 정복하게 하시는 개념을 받아야 한다. 사사기의 사건도 사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왕국이 왕권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과 왕권을 설명한다. 시, 욥, 잠언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욥기의 주죈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다. 지혜ㅒ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릍치고 있다. 잠언에 나오는 대부분은 그리스도를 가르킨다. 지혜는 사람의 이름같이 나오니 예ㅒ스 그리스도이다. 시편의 시인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다윗이 자기의 왕권에 대해서 기도하고 자기 왕권과 자기 왕국을 보호해 불 것과 하나님이 함꼐 해 주시는 것과 대적을 진멸하고 대적의손에서 구원해 달라는 기도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그리스도의 대적 원수의 나라를 대항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과 똑같은 맥락이다. 시편도 얘ㅖ수그리스도의왕권에 대한 인식이 없이 읽으면 가ㄲ끔 학자들이 오해하는 것처럼다윗이 믿음이 좋고 다 훌륭한데 잘못을 몇차례 범한다. 하나는 밧세바를 범한 것이고 또 하나는 자기 원수에 대해서 봅ㄱ심을 못버리고 항상 보복의기도르 (원수를 갚아달라고) 했는데 다윗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점검 특별히 예수님이 다윗의 시편에서 인용을 많이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다윗의 시편에 나오는 많은 구절을 전부 자기와 연관을 지어서 예수가 우리에게 해석을 하기 때문에 다윗의 시를 잘 이해해야 한다. 율법과 선지자를 (구약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하고 있고 요한복음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차례 너희들이 성경을 읽을 때 그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인데 너희들이 왜 내게로 오지 않느냐? --성경이 스스로 자기를 소개하고 있는 것을 예ㅒ수님이 강조하고 있다(요5:39-40.
♧19-21까지 중에서 점검할 것 1.율법이 그렇게 複合的으로 되어 있을까? 2.율법은 신약시대 복음과 相反되는 對照的인 것인가? 율법이냐 읂몌냐? 율법이냐 믿음이냐 할 때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이미 율법 안에(구약 안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많이 하기 때문에 구약 자체가 은혜의 책이고 복음이다. 구약 자체가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구약자체가 복음이다. 예증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먼곳까지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사람이 발이 아름답다하는 표현을 구약에서 쓰고 있다. 즉 복된소식 --기쁜소식을 전하는 자의발이 아름답다는 것이 신약에 나오는 것이 아니고 구약에 나오는 것을 인용하고 있다. 예증 예수께서 핫신 대부분의말들은 구약에서 인용하고 있고 바울과 사도들이 인용하고 있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율법의 時代이고 신약의 시대는 恩惠의 時代이다. 다만 시대적으로 역사적으로 하나님의한 의인(구약에서 계속 설명하고 잇는 복음 자체의 내용인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기는)이 역사에 등장하기는 -- 신약시대지만 구약 때부터 율법이 주어져 있고 구약과 신약은 꼭 같은 내용인데 다만 구약은 예고된 정도이고 신약은 성취된 부분을 설명하는 정도의 차이다. 즉 시대적인 차이다. 예ㅒ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과 이후의 차이나 내용자체가 다른 것은 아니다.
22-25절 稱義의 內容
▣ 22절 :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2절 주제 : 하나님의 의 21절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22절은 하나님의 나타난 의는 이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고 있다.-- 파급, 적용되고 있다. ? ??차별없이 똑 같이 미쳐가는 영향 혜택을 준다. 단 모든 사람은 누굴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믿지않는 자에게는 미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한 의(예스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예수그리스도와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만 복음이 되고 은혜와 혜택이 된다. 이 면에서는 율법과 좀 다르다. 율법 자체는 복음이지만 율법이 종죄할 때 어느 한 사람도 예외없이 정죄되지만 이 율법의 증거한 하나님의 한 의인 그리스도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에게만 헤택이 주어지기에 제한적이다. ※주의할 것 : 두가지 주제가 나오는데 하나는 믿음, 의다 믿음과 의는 같이 나온다. 우리=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데 본문=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의를 받게 된다고 한다. 구원이란 말과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칭의롬이지 구원론은 아니다. (풀어서 쓰면 마탄가지지만) 구원을 얻은다고 하지않고 의롭게 해 준다고 말씀하신다. 즉 의롭다 해 준다고 말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미쳐간다(영향준다)고 한다. 하나님의 의가 미쳐온다가 무슨 말일까?
Ⅱ.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의를 받기 전의 사람들의 상태(23절) 1.범죄한 상태. 2.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상태 23절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더니--전제조건--
Ⅲ.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의를 받은 사람들의 상태는(24-26절) 1.의롭다함을 얻는다. 2.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조가 용서되었다. 3.우리는 예스 그리스도의 의를 나타내는 사람이 되었다. 24절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한 의가 미치어간다는 부분을 풀엉서 설명하기를 1)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역광에 이르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게 되었다. 의롭다하심을 얻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된다. 2) 그 방법은 24절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무로 말미암아 --구속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 믿음이라고 할 때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라고 한다. “안에”라는 말은 외부에서 그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기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 =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는 (믿는 )사람들이 받을 혜택 ※ 구속=속량=값을 주고 산다. (원뜻=노예 해방) 노예를 해방시킬 떄 원주인이 있는데 딴 사람이 나타나 주인에게 돈을 주고 그 노예를 사서 자기의 소유로 해받시켜 건져 가는 것을 구속이라 한다. 실제적으로 예수님이 돈을 주고 사는 것은 아니다. 그 낱말을 쓰신 것 뿐이지 예수님이 사탄(죄)의 노에되어 잇던 우리들을 사서 건져온다는 낱말을 쓰고 계시지만 실제적으로 돈을 치루고 사올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건져내어 온 것이 노예해방과 비슷하여서 노예해방이란 낱말을 쓰신 것이지 실제적으로 예수님은 값을 치루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노예해방과 비슷한 비슷한 구원에 대한 적당한 말이 없으면 할 수 없이 불완전하지만 노예해방의 낱말을 쓴 뿐이다. 예증 성경을 읽을 때 아무리 헬라말로 뚤어도 원래의 뜻과 상관이 없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원래의 뜻을 조금은 도와주지만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가시는 삭ㄴ은 이 새생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전혀 똑 샅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사건 / 세상 구원사건 ♣해석 그래도 노예해방이란 낱말을 쓰시면서 하나님이 피로 값주고 샀다.이런 말을 스신다. 그러면 -- 예수의 피를 누구에게 주었다는 말이냐?실제로는 아무에게도 준 것은 아니다. 다만 예수님이 그만큼 피로 값을 내는 것 만큼의 수고를 하셨다. 굴러다니는 ㄴ것을 그냥 줏어 온 것이 아니고 사탄의 소유로써 억눌러서 노예로 잇는 우리를 거기서 상당한 희생을 치르고 건져낸 것처럼 그런 의도를 살리기 때문에 피로 값지게 삿다고 한다 이것이 구속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잇는 값주고 산 것으로 말미암아 ? ????값을 주고 건져내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했다하면 말이 쉬운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잇는 값을 주고 산 것이라고 하니 말이 어렵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사탄의 손에서 건져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을 행하셨다는 뜻인 것인가? 아무튼 ♣적용 예수 그리스도는 상당한 수고를 하시고 피로 우리를 삿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노예로 부터 건짐받은) 하나님께서는 돈을 한풑오 받지 않으시고 은혜로(값없이)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엇느니라.
◆ 20-23절의 정리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서 우리에게 미쳐오는데 이 하나님의 한 의 때문에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받는다. 실제로 의롭지 않은데 의롭다 하시기 때문에 인정(간주)하시는 것 뿐이다. 그렇게 하시는 理由는 예ㅒ수님이 우리를 값을 주고 사서 건져 내었기 떄문이다. 칭의(의롭다) 함을 받는 것 하고 건져냄을 받앗다(구원함을 받앗다)와는 밀착되어 있다. 칭의와 구원은 밀칙되어 있다. 에증 사탄의 손에 노예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은 죄를 범하고 있다는 말이다. 도덕성이 없어서 실제로 어떤 사슬(교도소)메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유혹을 받아서 아담 하와처럼 죄를 범하고 있는 자체가 유혹하는 것을 듣고 따라가는 것이기에 그의 노예이다. --내가 죄를 범하는 그 죄의 노예가 되어 있다고 표현 --내 마음이 항상 가 있는 곳이 있다. 취미생활에 미쳐잇는 사람은 그 취미생활의 노예가 되어 있다 내 마음과 모든 것이 거기에 가서 붙들려 잇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이다. 찾아 간다. 붙들려 있는 것 아니고. 그래서 우리가 사탄에게 스스로 찿아가서 죄를 범하고 있는데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피로 다시 사서 값주고 건져 내는데 죄를 범하고 잇는 자체서 나를 건져 내면서 죄를 범하는 자체를 묵살해 버리고 죄 안지은 것처럼 인정해 준다고 해서 의롭다 하신다 한다. 그래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칭의하고 구원하고는 같으면서도 개념의 차이가 있다. ♣ 구원 = 단순이 건져 내 준다는 말에 불구하다. 착각--건져 냄을 받았다는 것이 도덕적인 의미가 안 따라오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에 내 행함은 일어나지 않아도 구원함을 받는다고 잘못 알고 있다. ◎ 점검--구원을 받았다는 말은 바꾸어서 말하면 의롭다 하심을 받었다는 말이기 때문에 죄르 ㄹ범하는 내가 이제는 죄를 범하지 않는상태로 끌어 냄을 받앗기 대문에 구원을 받았다느 ㄴ말은 죄를 범하는 삶이 멈추고 죄르 ㄹ범하지 않은 상태로 와 있어야 한다. 얽매여 있다는 상태와놓여 남을 받은 상태와는 무엇이 다른가? 여기는 죄를 범하는 곳이고 여기는 죄를 안범하는 곳으로 끌어 냄을 받았으니까. 예증 불에 타고 있는 나무를 끌어내면 안 타야지 ㅂㄹ이 계속 타고 잇으면 끌어내나 마나다. 예증 홍수가 났는데 떠내려 가는 사람을 안떠내려 가는 곳으로 건져 내야지 끌어 내어서 이쪽 물에 집어 내어서 떠내려 가면 하나마나이다. =구원을 받은 내가 다시 죄 가운데서 종노릇하고 있으면 그것은 구원이 아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건져냄을 받았다라고 하니까 칭의라는 말을 주의해야 한다. 의롭다하심을 받앗다는 것은 보완적인 말이다. 25절 : 실제적으로 값을 치루고 산다는 말은 무엇인가? 왜냐하면 사탄에게 얽매여 있는 나를(죄를 범하고 있는 나를) 예수님이 끌어 내셧는데 끌어 낸다는 말이 무엇인가? 마치 사탄에게 매여 있다는 말 자체가 실제로 꽁꽁 묶여 있다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내가 죄를 즐겨서 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으면 끌어낸다는 말은 실제로 끌어내어 오는 것은 아니죠. 예수 믿고 구원얻는 다는 것이 어떤 구덩이로 옮겨 온 것이 안다. 제자리에 가만히 잇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을 세우셨으니” Q) 누가 화목제믈이 되셨나?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심. Q) 화목제물이 될 때 그의 제물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피이다. --구약의 제사법에는 항상 피를 흘려야만 죄가 사해진다 말했다 (히9: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 구약에서 반드시 죄를 범한 내가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짐승을 가지고 와서 피를 흘여야 한다 그 피는 생명을 의미한다. Q) 왜 하나님께서 구약 때 죄를 범한 사람들의 죄를 사해 주려고 할 때 돈만큼 받든지, 절만 조금 받든지 않고 짐승을 죽여서 피를 흘려 피를 가지고 재판에 성소에 뿌리라고 하시는가? -생명과 관게도는 상당히 중요한 말이다.우리가 사탄에게 종노릇 노예생활한다는 말이나 구원을 얻어서 하나님께 돌아와 있다는 말이나 이것은 내 생명 전체와 연걸해 잇는 말이지 내 생명 전체와 관계없이 내 삶의 행동의 일부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다고 말 할때 목숨은 왔다 갔다 하지 않고 내 행동만 처리하는 회개를 말하면 안된다. 내 목숨 전체가 이 분에게 갔다가 이 분에게 간다는 것이다. 회개가 내가 사탄에게 매여서 사탄을 섬기고 사탄을 좋아 했는데 거기서 내 목숨을 몽땅 끌고 하나님에게로 와서 하나님에게 내 목숨을 내어놓고 하나님을 섬기는 상태까지로 와야지 그것을 회개하지 어떤 잘못한 부분만을 고치는 것으로 회개라고 해서는 안된다. 예증 구약 때 제사드릴 때 제사드리는 법은 단순하다. 죄를 범한 사람이 제사드릴때 자기가 제물로 드릴 짐승을 가지고 온다. 제자장에게 인계하기 직전에 제사장이 보는 앞에서 자기가 잘못한 죄를 죽을 짐승의머리 위에 손을 얺고 안수하며 죄를 하나님께 고한다. --“하나님 나는 이러 이러한 죄를 범했습니다. 나는 죽을 죄인입니다. 죽어 마땅합니다. 하나님 제 대신 이 짐승이 죽을 것입니다”고 말하고 내 죄를 다 고해서 머리에 얹는다. 그러면 제사장은 나 대신 죄를 고해서 옮겨놓은 짐승을 끌고가서 재물을 드리면 결국은 내가 가서 죽는 것처럼 된다. 내 대신 죽을 짐승에게 내 죄르 ㄹ뒤짚어 씌운다(레16:).- 대속죄일 때 자세히 나온다. -- 그리하면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화목제물이라고 한다.(이것은 절차이다)
하나님꼐서 하나님을 떠나서 사탄에게 소속되어 죄를 범하던 나를 건져내어 다시 자기와화목하게 하시려고 제물을 요구하신다. 이 화목제물을 받으시고 우리를 받으시고 화목하게 하신다. 그 화목제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예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게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하나님과 화해케 하실 것을 미리 짐승을 통해서 하신 것이다.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을 때 내 죄를 (화목제물) 예수께 다 고해서 예수께서 내 대신 죽으셔야 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한다고 할 떄 그 과정이 없이 영접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예수님 내 이러 이러한 죄를 다 담당해 주십시오”하고 罪를 다 고백하고, 그래서 에수님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신 이루에 드디어 그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로서 내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를 고백한(죄를 위임) 사람들의 죄만 지고 가시지 죄를 위임하지 않은 자의 죄를 지고가지 않습니다. 가끔 예수님의 十字架사건을 부제한적인 속죄로 해석하는 學者들이 많은데 여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셧는데 그 혜택은 누구든지 다 받을 수 있다.--고 외친다. 누구든지 다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에게 내 죄를 고백하고 “내 죄를 맡아 주십시오”라고 위임하는 삶들의 죄만 담당하시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의 죄는 지고 가시지 않으셧으니까?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설 떄 전 人類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 지신 것은 아니다. 만인구원설의 主張은 잘못된 것이다. 예수께서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면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안믿는 사람도 구원을 받아야 되는데 성경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예수 안에 잇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구속과 화목제물의 혜택이 잇다. 그의 피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묵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예수에게 내 죄를 고하고 “예수님 내 죄를 맡아 주십시오, 하나님과 저와의 사이에 화해를 시켜 주십시오”라고 고백하는 행위를 빋음이라고 한다. 화목제물의 개념에서는 그렇다. 예증 “내 병을 고쳐주십시오”라고 믿고 기도할 떄 내 병은 고침받을 수 있으나 내 죄사함받는 것하고는 관계없기 떄문에 구원앋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벙은 나으나 구원얻는 것하고는 별개의 이야기다. 예수님에게 내 병을 부턱하고 내 벙은 나을 수 있지만 예수님에게 내 죄를 고백하고 죄사함받는 것 하고는 별개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예수 믿을 때 내 병 낫는 것 가지고 구원이 이루어 지는 것 아니다. 간증할 때 : 내벙 나은 건증만 가지고 그 사람이 믿음 있다고 할 수 없다. 병나은 믿음은 잇는데 과연 이 사람이 구원받았는지 아닌지는 구원에 ㅏ대한 고백을 들어야만 한다. 25절 b :이는 하나님꼐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왜 하나님꼐서 화목제물을 받으시는가? 왜 화목제믈을 걸어 놓고 우리의 문제를 풀어 주시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사실은 벌써 벌을 주소 죽여 버려야 하는데 참고 기다리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간과:Pass over 돌아볼 간, 지나갈 과=얘사로 보아 넘김, 보고 지나감, pass over:위로 넘어 감, 유월절=넘을 유 넘을 월). 하나님꼐서 심ㅁ판하셔야 되는데 심판하는 천사가 심판하러 가다가 문설주에 문에 피를 바른 집은 간과해 버린다. 넘어가 버린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셔서 --전에 지은 모든 죄를 다 무사 통과해 버리신다. 그렇게 하시고 기다리고 게시다가, 마침내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주시고 이 아들을 화목제물로 받아 주리는 사람에게 한해서는 예수님이 죄를 그냥 넘어가 보리시고 벌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을 받으 죽일 때 나의 화목제물로 받아들이는 순간에 나의 모든 지나간 죄는 청산 된다. 이것은 지나간 죄를 말한다. 그 이후의 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따로 설명햐야 한다(6장에서). 그리스도 밖에서 죄와 사탄의 노예로 있다가 우리가 하나님꼐서 자기 아들(한 의)을 보내셔서 그 의를 입게 하시는데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새우시고 우리에게 네가 내 아들에게 봐서 너 죄를 다 고하고 화목제물을 받아 들이면 내가 내 아들이 너의 죄를 지고가고 그래서 내 아들 떄문에 너를 용서하고 화해하겠다 지금까지 지은 지는 다 무시하겠다고 말슴하시는 것을 代贖의 原理라고 한다. 25절 C :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우리가 죄를 범했는데 자기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세우시고우리를 우리가 지은 죄를 간과(보지 않고)하고 화해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인가? 물론 일부분은 의롭다. 왜냐하면 하나님 당신이 화목제물을 세우셨기 때문이다.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의 사이에 예수님을 놓고 회개하겠다고 받아 들여서 우리가 화해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전담하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하게 보지말고 26절에는 :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도 위로우시고 예수 맏는 자도 의롭게 하는 사건이다. 왜 화목제물을 세우시고 하나님이 의로우시는 것도 이상하고 왜 죄를 범한 우리를 예수님의 화목제물을 통해서 의로워졌다는 것도 이상하다. 용서받았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왜 의롭다고 하실까? 이것이 참 이상하다.== 4장에 가서 자세히 정리하자!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고 할 때 쉽게 예수 믿고 구원 받는다는 두 낱말로 다 적당히 휩슬어 버리는데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가 지은 죄를 휩쓸어서 없이 하시려고 간단히 생각지 않고 신중히 다루셨기 떄문에 율법을 주셨고, 율법이 아쥐자세하고 이 율ㄹ법으로 우리의 죄를 하나 하나 다 지적해서 정리하시고 나서 그 다음에 자기 아들을 보내시면서 말하기를 이것이 내가 보낸“義”다 용서한다고 말하지 않고 “의”다라고 말씀하시니 이것이 의의 개념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왜 의냐? 롬1: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복된 소식이 --하나님의 용서--나타나지 않고 애 의가 나타났느냐? 라는 이야기이다 이 의라는 말을 쓰면서 그 속에 값을 치루고 샀다. 홤ㄱ제물로 세웠다라는 표현이 나오면서 이떤 면에서는 하나님이 상당히 신중하게 꼬치꼬치 떠지시면서 일을 처리해 나가신다. 그래서 이 대속의 이야기와 화목제물의이야기는 구약에서 읽어보면 하나님이 아주 섬세하게 굉장히 중요하게 처리하신다. 대충 처리하시지 않는다. 예증 하나님이 우리와 화해하는 계약서를 쓰시는데 ”너 내 아들아 이렇게 다 했느냐? 도장 찍고 하자.됐다. 믿겠다고 이렇게 하시지 않고 일일이 다 읽어보고, 한 종목 한종목 다 읽어보고 따지고 계시는 것처럼 아주 섬세하게 이 문제를 처리하신다. 왜 이렇게 하시는가? 그 理由는 이렇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단순히 예수 믿고 용서했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구원의사건이 아니다. 구원의 사건은 우리 안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사건이기에 자꾸만 “의”라는 단어를 사용하시고 이렇게 하면 하나님 자기도 아주 의롭교, 이 사건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은 대충 보아 넘기시는 분이 아니시고, 하나님은 상당히 친밀하게 착오없이 일을 잘 처리하시는 의로우신 분이라고 우리가 고백해야 되고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도 “너도 의롭다”고 할만큼 심각한 본문이다. 27절 : “그런죽 자랑할 데가어디 있느뇨, 있응ㄹ 수가 엊ㅉㅈㅅ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우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우리가 자랑할 대가 없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해할 때 무슨 법으로 화해하느냐? 행함의 법으로면 우리가 자랑핼 데가 있지만 믿음이란 법을 통해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전혀 자랑할 데가 없다. 하나님이 단정적으로 말씀해 놓으신다. ♣적용 신앙생활 중에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는 것은 좋지만 하나님 앞에서 잘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큰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ㅏ생각하는 사함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28절 : 결론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을 우리가 인정하노라 그래서 율법과 밈ㄷ음을 대조하고 잇다. 29절 :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이 아니신뇨? 진실로 이방인의하나님도 되시느니라. 萬一 하나님이 율법하고 관계시켜구원하신다면 유대인만 혜택을 받는다. 왜냐하면 이방인은 제사도 드리지 않고 절기도 지킨 일도 할례도 받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믿음이란 길을 통해서 했기 때문에 이방인도 헤택이 주어진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의하나님도 되신다. 30절 : 할례자(유대인)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 무할례자고(이방인, 우리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같은 분). 31절 :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오해하지 맙시다. 30,21 -- 율법 외에 하나님의한 의가 나타낫는데 그 內容을 자세하게 說明해 왔는데 끝에 와서 결론이 행함이나 할례를 통해서 율법을 통한 것이 아니고 운혜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이방인과 ㅇ대인의 구분이 없이) 그렇다면 이제까지 주어졋던 율법은 무었이나? 율법은 정죄하고, 율법은 그리스도를 소개했는데 이 율법으로 구원받지 못하니까 이 율법은 무엇인가? 필요없는 것인가? 예증 율법은 정죄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인데 예수님이 오셔서 우릴 구원하시니 정죄할필요없고, 율법은 예수님을 소개하던 법이 었는데 예수님이 오셨으니 이제는 율ㄹ법도 예수님이 오셧고 우리가 믿었으니까 필요없다. 더우기 우리 이방사람들은 율법을 믿고 예ㅒ수를 받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보고 복음을 바로 받았으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율법 하에 잇지 않았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대도 율법하고는 사실 아무 관계도 없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필요 없어시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도리어 굳게 세우느니라. 그럴 수 없느니라까지는 다 이해가 되는데 도리어 율ㄹㄹ법을 굳게 세우느니라에 가서 두가지 견해가 있다. 1.잘못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려는 사람이 잇다. 돌아가면 안된다. 우리가 다시 율법하에 잇다. 우리가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율법은 지켜야 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율법은 정죄의 기능이 있고, 예ㅒ수 그리스도에게로 가라해서 율ㄹ법과 우리와의 관계는 끊어져야 하는데 아니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운다는 이야기는 다시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말하면 왜 지키느냐?
이 본문은 율법의 3의 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제1, 제2의 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율법이 아니고 믿음의법이라고 설명한 후 겔론짓고 나서 그런죽 율법을 도리어 굳게 세운다는 말이 앞으로 되돌아 감이 아니고 율법이 할 일이 이제 제대로 다 이루어 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불법이 폐지된 것이냐? 그게 아니고 울법이 더 확실하게 되엇다. 어떻게 죽 율법이 정죄한 것도 분명해 졌고 우리가 정죄받는 것도 인정햇고 율법이 소개한 예수님이 오셔서 화목제물이 되고 다 하셧으니까 율법이 설명한데로 일이 이루어졌고 율법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말이다.
제 4 장 연구
1.나는 내 믿음을 자랑하지는 않습니까? 흔히 어떤 교우를 가르키면서 저분은 참 신앙이 좋은 분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행위(신앙생활)를 칭찬하는 것입니까? 믿음(신뢰)를 칭한하는 것입니까? 2. 반대로 나는 내 믿음이 부족해서 의롭게 된 것같지 않다거나 내 믿음은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못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 또 나는 죄가 많아서 믿음이 엊ㅅ는 자이다. 그리고 나는 아주 구원은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십니까? 4-6절을 천천히 읽어봅시다. 7-8도 `` `` 일한 것이 없고 죄가 많기떄문에 하나님께 도옴을 청하는 것이며, 예수님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빈손들고 예수 나오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어떤 열심이나 자랑할만한 것을 가지고 나가면 믿음이 아니고 행위이다. 2절을 다시 봅시다. 그리고 다시 나를 살펴봅시다. 나는 빈손인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한 의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라? 그것이 복음이다. 4. 주번에 나와 비슷한 친구가 있는가? 그에게도 이 복된 소식을 전하겠는가? 5. 그기에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라고 했는데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휘를 따르는 자를 두고한 말이다. (12절) 나도 아부라함의 믿음응ㄹ 따르고 있는 후손인가?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려면 아브라함의 믿음의 발자취를 잘 알아야 따라갈 수 있다. 나는 그의 발자취를 잘 아는가?
믿음과 행위 의 = 1:17, 3:21-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목표이다. 1.아브라함은 무엇을 얻었습니까? 의롭다함을 얻음 4:3의로 여긴다(간주한다) 4:5 여긴다.(전가한다 - 로 돌린다 2.그것을 어떻게 얻는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지않고 누구를 믿었다고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 3.아브라함은 왜 자랑할 것이 없는가? 믿음으로 얻었기에 3:27-28의 복음 4.일이나 믿음. 삶과 은혜는 어떻게 다른가?(4-5) 5.다윗은 무엇을 복이라고 했는가? (6-8)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 가리우심을 받고 그 죄를 -- 인정치 아니한 자 복 6. 이 행복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9-10) 그러면 이행복이 할례자에게만 미치느냐? 그렇치 않음ㅁ면 무할례자에게도 미치느냐?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김을 받았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레이다. 7. 앙브라함에게는 할례와 믿음과의 어떤 관계가 있는가?(11)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다. 8. 아브라함은 누구의 조상이 되었는가? 11절 모든 믿는 자의 조상 그럼 어떻게 되는가? 누구의 편인가?--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의 조상 9.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언약) 율법과 관계가 있는가?
4:1-25절 믿음과 행위(믿는 자의 행복)
序論 1:17 - 3:8 죄론 3:20 - 3:31 칭의론 4: 믿음에 대한 이해기를 죽 하고 있다.
1절 :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앋엇다 하리오? 유대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육신으로 조상된 사람들이다. 영적으로 조상된다면 우리도 해당되지만 2절 :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앞에서 하던 말의 반복이다. 우리 믿음의 조상된 아브라함도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 아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그래서 구약떄에도 밈ㄷ음으로 두원 얻은 것이지 행함으로 구원얻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도 율법시대가 아니고 은혜의 시대이다. 다만 은혜인 예ㅒ수 그리스도가 歷史界에 등장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율법의 시대라고 쓸 수 잇지만 쓸 때 주의해서 써야 한다. 구약시대가 은혜의 시대가 아니라고 율법시대라고 말하면 안되고 구약시대도 복음과 은혜의 시대이지만 아직은 율법하에 있을 떄이다. 그러나 구약에서 이스라엘민족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도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가? 유대인들--착각하기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할례받고 율법을 따라서 행햄으로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하나 그것은 잘못알고 있다. 아니다. 3절 :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뇨? (구약성경에는 무엇이라고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창15:6)라고 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믿었는가? 14장의 전후배경 속에 “네 몸에서 자손을 주고 네 몸에서 날 자손이뭇 별과 같은 것이니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엇다. ???믿음이란??????????? ?????????????????????? 1.대상이 분명해야 한다. 2. 정기적 교회줄석 기도생활 역심히 하는 것--아니다. 3. 내 안에 어떤 변화나 종교적 수양 저기 노력이 아니다. 4. 대속 -- 깊이 생각 전능하신 하나님꼐 내 人生릏 全部 마끼고 종속시킴 ??? ???고후6:1 동역자됨???가족 등??연합 우리가 믿음이란? 예수님이 내 죄를 담당하신 것을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믿음이 전부 거기에 달려 잇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아브라함은 그런 믿음을 믿은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믿음 안에는 “네 몸에서 날 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얻을 것이라는 말로 아브라함이 믿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우리가 구약을 읽을 떄 너무 비약해서 읽지 맘ㄹ고 그 싯점에서의 아바라함이 받아들인 만큼 이해하고 지나가야 한다. 창15장에서의 아브라함은 아직도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 철저하지는 않은 것같다. 아직은 조금씩 지나가서 나중에 이스마엘을 낳고 해서 회의가 있는 것처럼 보이며 나중에는 확실하게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러나 15장에서는 아직 메시야를 보내실 것과 그 떄를 바라보기 보다는 “하나님이 나에게 상급을 주신다더니 내 몸에서 아들을 주시는가 보다 그리리고 내 몸에서 날 아들의 후손이 괸장히 크게 번식해서 큰 민족이 되겠다고 말씀하시는구나”라고 믿었다. 3절에서 : 성경에서 이것을 왜 의롭다고 하실까?(잘했다고 하지 않고) 4절 :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한 사람에게 주는 삯은 은혜가 아니고 빚이다(당연히 주어야) 5절 : 일을 아니할 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혜택을 받는다. 일하지 안ㄴㅎ고 어떤 혜택을 받는가? 예증 1장에는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대우하지 않은 것을 경건치 않다고 한다(자기욕심대로 엉뚱한 일을 하는 것을 ) 경건치 아니한 자를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나님은 하신다. 그런 하나님을 빋는자에게 그 믿음을 하나님은 의롭다고 하신다.
♧정리 아브라함이 무엇을 믿었는가?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나같은 사람에게도 큰 혜택을 시는구나. 하나님은 나같은 사람도 의롭다고 일컬으시는가? 그렇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꼐 감사하다고 했다. ♧우리는 어떻게 믿는가? 엣날에 하나님이 갑자기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무슨 복입니까? -- 아들을 주겟다. 하늘의 뭇별과 같은 많은 다들을 주겠다고 할 때 믿겠습니다. 하니 하나님이 너 의 다하는 하나남을 보고 우리가 하나님은 참 이상하시다. 선물(은혜)로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축복(혜택0을 주시고 그냥 그것을 예 1 이의없이 받아들인다고해서 아브라 을 의롭다 이렇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나도 믿어서 의롭다함을 받을 수는 없을까? 그래서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하는 하나님을 빋는 믿음을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도 의롭다고 하신다. 」 6절: 일한 것이 없이 나님꼐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말한바. -- 이제 다윗의 예를 돌고 있다.
?????사죄의 原理????? ????????????????????? 7절 :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으 받은자 는 받고 8절 :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할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고 같으니라 3:25에서 하나님꼐서 죄를간과하셧다. 하나님게서 죄를 지나가 버렸습니다. 지나가 버린 사람들의 복에 대하여다윗은 말하고 있다. 예증 실제로 다윗도 그했다. 다윗도 죄를 범했는데 하나니몎서 용서하셨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했는데 하나님꼐서 용서하셨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후에 아들을 낳았다. 하나님이 이 아들을 데려가력 하셨다. 그런데 이 아들은 데려가려 하시기 전에 하나님이 다윗에게 나타나서 죄를 용서해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아무한 일도 없는데 그랬다 그리고 그 아들을 데려 가셨다. 그 후에 하나님이 밧세바의 몸에서 새로 아들을 주셨다. 그 떄는 밧세바와 나쁜 생각 속에서 낳은 아들이고 지금 이 아들은 다시 용서받은 상태에서 하나님에게서 정식 허락을 받은 상태에서 밧세바와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아이의 이름을 여디디아라고 하나님이 불러 주셔삳. 다윗은 솔로몬이라고 지었는데 (평화=하나님과 화목). 하나님은 여디디아라고 지어서 ”내가 너를 사람한다“ 그러니까 다윗은 용서를 받았다. 엄청난 죄를 범했는데 아주 건단히 용서받고 아들을 낳게 되고 여디디아라는 이름까지 주시고 이 여디디아란 이름의 솔로몬을 통해서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으리에게 보재 주셧다. 그런것을 생각하면 다웃에게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다. 다윗은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엄청난 축복을 주시는가?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만해도 큰데 또 내게 아들을 주시고 이 아들을 통해서 메시야를 보내시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너무나 놀라운 은혜이지요 감사를 드린다. 다윗은 7-8절을 읽으면서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한 일도 없이, 한일만 없는 것이 아니라 나쁜 짖만 했는데 불구하고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내가 만나고 그 하나님을 내가 신뢰하고 그 축복을 주시는 하나나님을 내가 “예! 감사합니다 . 내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주시ㄴ 복을 받겟습니다.”라고 당연히 그런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배경이 깔려있다. 너희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애 한다. 9절 : 그런즉 이 ㅏ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뇨? 대저 우리가 ㅁ발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할례, 무할례와 관계없이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하느로 10절 :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아브라함의 의롭다 칭힘을 받은 깃점은 언제인가? 할례의 깃점으로 보면 아브라함이 할례 받기 전이다. 할례와 관계없다ㅏ. 할례 후에 받았다 할지라도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할례와 관계없음을 설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할례 그 전에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고 그 후에 할례제도르 주셨으니까 할례는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칭의와 할례와의 관계??????? ??????????????????????????????? 갈5:2-6절을 읽을 것 그래서 11절에 :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의로 여기심을 앋게 하겨하심이라? ???言約이다. ab에서--모든 믿는자 우리,나에게도 하신약속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왜 할례를 주신 것인가? 이는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하나님꼐서 의롭다고 하신 것을 확인하기 위한 표로 할례제도를 주셨다. 예증 창15: 6절에 의롭다 칭하신 후에 7절에 약속을 하시고 8절에 약속을 分明히 하시기 위하여 구약의 約束의 方法대로 짐승을 쪼개어 가운데로 지나가는 것으로 約束을 분명히 하셨다. 창17:에 ab에게 99세 되던 때에 처음으로 아들을 주시겠다고 할(75歲) 때로부터 24년 後 아들을 낳기 1년 전에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시어 ㄸ독샅은 福을 約束하시고 나서 9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절에 “너희 중에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15절가지 읽을 것 이에 내 연약이 너희 살(속)에 있어 영원한 言約이 되리니.. ? ??생명과 관계되는 부분에 손을 걸고 생명을 걸고 약속함 ♧할례 : 생명과 관게되는 생식기에 손을 대고 의식을 가함으로 生命을 새롭게 하는 의미를 준 것같다. 할례는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지 오랜 후에 아브라함이 99세 때 할례제도를 주셨다. 하나님이 “나하고 너하고 언약을 맺자” 내ㅏ 너에게 수많은 후손을 주게따고 ㅏ내가 約束을 했는데 이 약속을 하나님이 내갸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 그 대신 너도 목숨을 걸고 나오의 관계를 맺어야한다. 네갸 이 언약을 거절하면 네가 죽을 것이고 너는 내 언약을 ㄸ라와야 한다 라고 해서 言約을 쌍방의관계로 만드시는데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통과하시면서도 쌍방의 관계로 만드시고 못슴을 것고 지키게 하신다. 그래서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목숨을 걸고서 할례를 받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받기 때문에 우리만이 특별한 백성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바울이 說明하기를 “아도 약간의 오해가 있어서 할례받을 것을 자랑했는데 성경을 다시 찿아 보자. 성경에는 외롭다 하심을 받은 후에 믿음으로 그 다음에 할례제도를 주신 것이다. 할례는 무엇인가? 이것은 믿음으로 의롭다한 사실에 대한 확인으로 아브라함엥게 준 것 뿐이다. 표에 불과하다. 11절에 가면 이것은 자기가 믿음응로 의롭다하심을 얻은 후에 할례를 믿음으로 그것을 확인 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마치 할례 받기 전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처럼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도 자기처럼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을 것을 알고 양쪽을 다 생각해서 유대인이나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이나 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다. 그래서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고 아브라함이 할례받기 이전에 의롭다함을 받았다. 12절 :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받은 자에게 뿐 아니라.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11절이 이방인들에게 라면 12절은 유대인을 말하면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를 받았던 받지 않았던 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데 그 조건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은 모두가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다. 13절 :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울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오 오직 믿음의 의로 밀미암은 것이니라. 지금까지 세상을 차지하겠다고 하신 約束은 율법을 주신 후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아니오 율법을 주시기 이전(할례를 주시기 전) 모세율법에서 믿음을 통해서 주어진 것이다. 14절 :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손이면 믿음은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졋느니라 -그래서 만약 유대인들이 착각을 하드시 너희들도 율법을 통해서 구ㅜ언을 억고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착각하면! 그러면 믿음의 길로 가는 사람은 헛된 일이 아니가? 할례받지 않았으면 율법을 지키지 않았으면 믿음은 헛일이 아닌가? 하나님의 약속은 다 폐하여진 것 아니냐? 라고 하면서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1. 아브라함의 믿음과 나의 믿음응ㄹ 비교해 봅시다. 비슷한 점 차이점 2. 아브라함은 그의 귀한 믿음때문에 믿는자의 조상이 되엇는데 나는 무엇으로 누구의조상이 될까? 3. 아브라함처럼 나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이 있는가? 그런 체험이 있난가? 물론 이 바람이나 믿음은 아무것ㄱ이나 바라고 믿는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고 믿는 것이다.(20-21) 나는 하나님의로부터 어떤 약속을 받았는가? 혹시 내 구원에 대하여 의심은 없는가? 롬3:21-26절의 말씀을 믿을 수 없습니까? 있습니까? 4. 25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 준 바 되신 과 나를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부뢀하신 것을 믿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믿어져야 하고 동시에 그 사건이 나 자신의구원을 위한 것임을 믿어야 한다. 5. 믿음이 잘 형성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갓 같은가? 믿음은 무작정 생기지 않는다. 상댜편이 믿음직스러워야 믿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아주중요하다.
♧ 本文理解 1.후사(상속자)가 되는 길이 무엇인가?(16절)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것은 은혜를 따라 되게 하려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 그것은 그 약속이 모든 자손 곧 율법에 속한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믿음에 속한 이에게도 보장이 되기 위함이다. 2. 아브라함은 누구의 조상인가? 16절: 율법에 속한 자 +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 17절 : 많은 민족의 조상 3.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나미은 어떤 분인신가? 17절 :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잇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生殖의 意味로 죽은자 아브라함) 21절 :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시느 ㄴ하나님 4. 아브라함은 어떤 상태에서 아들을 주실 것을 믿고 기다렸는가? 19절 : 자기가 백세가 되어 몸이 죽은 것 같음(생식), 사라의태의 죽은 것같음을 보고 5. 아브라함은 실제로 무엇을 믿엇는가? 20-21절 :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의심치 않고(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믿음에 굳게 견고하게) 서서 그 하나남이 능히 이루실 것을 믿엇다. 6. 아브라함은 무엇을 의로 여기심을 받앗는가?(22절) 하나님을 믿었기에(신뢰하였기에) 7.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여김을 받은 것은 오늘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23-24절 : 아브라함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아브라함 한 사람만 위한 것이 아니요 우리에게도 같은 혜택을 주시려고 아브라함이 대표로 그 혜택을 약속받았다. 8. 오늘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의 내용은 아브라함의믿음의 내용과 어떤 차이가 잇는가? 24-25절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심을 믿는 것 예수는 내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의롭다하쇼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믿음이 약하여지거나 의심에 뻐지지 않고 오히려 굳건해지고 견고해 졌다고 했다(19-20).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約束을 信賴햇기 때문이다(20-21). 그러나 다 똑같은 약속을 받고도 어떤이는 그 약속을 믿지 못하는데 아브라함은 믿었는데 무엇이 달라서 일까? 아브라함도 처음부터 하나님을 잘 쇤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들을 약속받고도 쉽게 그 약속을 믿지 못햇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하나님 자신의 능력과 신실함을 보여 주셨고 체험하게 하셨기 때문에 마침내 온존한 신뢰에까지 (믿음) 이를 수 잇게 되었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을 접하고 교제하면서 자라가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경우 불신앙(회의)과 하나님의격려와 교훈을 보면 1. 기근을 당한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피난하고 거기서 아내를 잃을까 두려워하여 거짓말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보호하시고 풍부한 선물을 주셧으며(창12: 20:) 2.롯이 비옥한 땅(소돔)을 택하였으나 (창13:)결국은 연합군의 잰쟁에서 패하여 포로가 된 것을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구출하게 하시면서 멜기세덱(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을 보내시고 또 하나님께서 “나는 너의 방패와 상급이라” 격려하셨고 (창14:, 창15:1) 3.저자 이스마엘을 낳앗을 때도 다시 이삭을 약속하셨고(16:-17:) 4. 이 떄 훨씬 더 구체적인 약속과 함께 할례제도를 통하여 강한 교훈을 주셧으며(창17:) 5.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은 롯에게 임한 환란을 보여 보여 주셧으며 6. 아들을 약속한지 25년 만에 드디어 이삭을 주셧으며(21) 그 후에 그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밀슴햇을 때 (창12) 그 아들을 통하여 주실 메시야와 많은 믿음의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아들을 바칠수 잇었다.(창22:)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실 約束에 대한 믿음이 오늘 롬 4:18-21에 소개되어 있고 두번째 사건인 아들을 바칠 떄 메시야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은 것은 히11:17-19에 있다. = 창22:8, 22:12, 히11:17-19
우리가 창세게를 잘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믿음을 가질 수 있엇던 근거는 어디까지나 1)하나님의 사역 2)하나님의 나타나심 3)하나님의 말씀 4)하나님의 격려임을 알 수 있다. 즉 信仰은 그 대상에 따라서 형성된다. 대상이 뚜렸하고 쇤뢰할 만하면 믿음이 싹트고 자라게 되어 있다. 그러기에 이 신앙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은 기독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교에서만 그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인 믿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 한가지 주의할 점 오늘 나도 아브라함과같은 믿음에 이르려면 아브라함돠 같이 하나님의 실존과 능력과 신실하심을 체험해야 하는가? 예스 땡큐 오 예--지당하고 당연하여라. 그러나 다른 사람이 체험한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성경을 통하여 그러한 신실하신 하나님을 체험하면 되는 것이다. 성경을 통한 체험이 직접적인 나의 체험보다 훨씬 뚜렸하고 강렬하다. 직접적인 체험은 잘모소된 체험(미혹)이 될 때도 많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성경 속의 체험보다는 안전하지 못하다. 그리고 주고적인 체험은 말슴으로 확인되어져야 한다.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18절 :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19절 -- 22절을 읽고>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셧느니라?
※ 믿음을 이해하기 위하여 1.믿음의 대상 신앙 = 믿음의 대상이 분명해야 한다. 믿음은 상대편을 신뢰하는 것이 자기혼자하면 된다고 하는 신념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야 그렇게 그렇게 된다 믿고 하라고 유리겔라 같이 움직여라 하는 것은 인간의 신념이다. 인간의 신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전혀 불가능한데 아무리 된다고 믿어라고 해도 전혀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 믿느냐? 불가능하다 . 불가능하나 하나니몍서 된다 하시고 그 하나님은 너무 특별한 분이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하나님은 하시겟지 하고 믿는 것이다. 믿음이란 나를 믿는 것이 아니고 그 분을 믿는 것이다. 대상이 없이는 믿음이 형성되지 않는다. 신앙을 갖기 위해서 지식이 필요하다. 모르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확실하다 하나님이란 분이 계신 것이 확실하고 그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라는 것이 사실이 확실하지 안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의신실하심 속에서 틀림없이 이루어 진다는 사실이 분명하지 않으면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가 없다. 하나님이 너희들이 죽으면 새몸으로 부활시켜 주겠다. 성경이 늘 가르쳐 주고 잇지만 글쎄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까 새하늘과 새 땅이 글쎄요 있을까? 그러면 우리는 믿을 수가 없지요, 대상을 신뢰할 만한 분이면 믿음이 생긴다.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혼선을 빚지 말자. 우리 한국교회 안에서 그런 일이 많이 나오는데 적극적인 사고방식, 하면된다. 라고하고 믿어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면된다 믿고, 뛰어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의사상이 아니다. ‘아주 명쾌해져야 한다. 소년들아! 야망을 품어라! 그것은 자기 신념이다. 그런 자기 신념은 1장에서 그것이 죄이다. 정반대 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종종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믿음과 연결되는 줄로 생각하고 병이 낳는다고 믿고 기도하라낳는다고 할 때 믿음은 내가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 그것은 자기 신념이다. 하나님이 고쳐주면 낳고 안고쳐 주면 내가 백번 떠들어도 안 낳는 것이고 그것은 당연하죠. 하나님이 고쳐주실 것을 믿어야지 내가 틀림없이 낳는다고 믿어서 낳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그래서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전혀 아니다. 믿어야지 잡념을 버려야지 의심을 버려야지, 그렇게 해서 믿음에 이르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런 훈련을 받는 사람이 많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부흥회를 한다든지, 수련회에 들어 간다든지 기도원에 간다든지 하면 주여! 미-읻습니다.(미에다 엑센트를 강조) 그렇게 하면 믿음이 생기리라고 망상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하나님에 ㅏ대한 신뢰에서 점점 멀어진다 아주 주의해야 한다. 2.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나는 하나님이란 분을 긍젖적으로 보는 반면에 나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아야 믿음이 생긴다. 하나님이 물론 가능하지만 나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1/10 정도는 가능하다느 ㄴ생각이 있는 한은 믿음ㅁㅁ이 형성되지 않는다.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줄어든다. 알겠어요, 만일 한국이 미국이 한국의 국방을 도와주지 않으면 100% 불가능하다면 미국만 붙잡고 늘어져야지요, 살려달라고, 그런데 물론 미국이 도와야 하지만 당신들이 50% 도와주야 하고 우리 힘으로 50% 가능하다면 믿음이 50%로 줄어 든다. 그것은 당연하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는 자기에 대한 신뢰가 없어지는 만큼 저쪽으로 신뢰가 생긴다 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지 내가 어느정도 가능하면 저 사람의 도움만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자아에 대한 신뢰와 상반되기 때문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없애는 것 만큼 내 믿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란다. 그런데 자기 신념을 강화혀면 강화하는 만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서서히 줄어든다. 그렇게 하는 만큼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서서히 떨어진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처음부터 의도한 바와는 정반대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구원히시려는 근본 목적은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인간이 잘해서 할려면 에덴동산에서부터 잘해 가야지 에덴 동산에서 아담을 조금만 호호해 주셨으면 범죄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지요, 그런데 그 때 우리 하나님은 그쪽에서 일을 시작하지 않고 선악과를 따먹게 내버려 두고 , 아들을 보내어 일을 새로 하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럼 아담 자기 생각대로 해 보라 이럽니다 너 샐각대로 해 봐라 되는가? 이스라엘백성을 애급에서 끌어내면서 너희 멋대로 해봐라 되면, 안되죠 만나 내려주지 않으면 긇오 죽게 되고 아무것도 불가능하고 불가능해서 불가능해서 결국은 하나님망 붙들고 매어 달리게 해서 하나님만 쇠뢰하는 쪽으로 계속 유도하시고 거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Key Point가 있다. 믿음의 Key Point가 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와 복종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완벽한 하나님 통치의 체제로 이성적인 국가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에 인간으로 하영금 자기 부정을 100% 하고 하나님꼐 100%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사이다. 그래서 너희 믿음이 겨자씨 만큼 잇으면 좋겠다는 것. 말은 하나님을 요것만큼이라도 일단 신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니 나보다 위대하고 조금더 신뢰하고 신뢰하여 내가 갖고 있는 벌 볼일 없는 인 줄 서서히 서서히 꺠달으면 내 생각을 정리 해 버리고 그래도 내가 뭔가 갖고 있으면 딱 떄려서 파괴시켜 너희 가지고 실패하고 실패하게 해서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고 실패하게 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라게 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세워 가시는 자기 나라 건설의 핵심이다. 그래서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을 점점 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위대한 분으로 인정하고 신뢰하게 되고 반면에 나는 점점 그 하나님에 비교해서 점점 초라한 존재로 나타나게 된다. ’켈빈의 기독교강요 1권 첫번에 나오는 것으로 안간에기는 두가지 지식이 필요한데 하나는 하나님꼐 대한 지식이요 다른 하나는 자기에 대한 지식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자아에 ㅏ대한 지식은 비례적으로 상반되게 나타난다. 이사야도 이사야서 6장에서 높이 들린 보좌 위에 계신 위대하신 하나님을 볼수롤 지기가 초라하고 자기가 하나님을 뵈옵는 것 조차도 너무 너무 죄송스럽고 죄를 범한 것처럼 그래서 하나님께 큰 회개를 했다.하나님을 별 볼일 없이 보는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래서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함께 자기가 점점 작아보이고 자기에 대한 신뢰를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항간에 많이 강조되고 떠돌아 다니는 잘못된 적극적인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되고 주의해야 한다. 휴메니즘에 가깝기 때문에 그 적극적인 사고는 가장 솔깃하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은 신자보다는 불신자들이 훨씬 더 잘한다. 정주영 이병철 등 대기업에서 많이 활용한다. 능히 일하고 잘한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은 있다. 하나님이 그런 인간에게 자기 가능성을 계속 부정하게 하고 하나님께 오게 하신다. 실제로 인간에게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었기 ㅏ때문에 가능성은 있다. 그런데 자기 가능성은 하나님의 가능성에 비교하면 너무 너무 초라하니까 그것을 부정하고 겸손히 나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기까지 하나님꼐 복종하고 하나님께 나아 오라는 것이 예수님의 교훈이다. 자기부정이 되어지지 않으면 믿음돠는 정반대이기도 하다. 3.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건고하여 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ㄸ도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활실하였으니 믿음이 점차 자랄 뿐만 아니라 믿음은 지속적이다. 에수 그리스도를 처음 믿게 될 때 어릴때부터 쭉 지라서 어느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원리를 배워서 예수님을 영젖합니다. 그럴까해서 에수님을 영접했을 때 자! 나는 이제 그것을 예수님을 믿었다고 나는 믿었으니까 이제는 으롭다함을 받았고 구원함을 받았다고 하죠, 그 말에 대해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주의해야 될 부분의 점검을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처음 믿었을 때 그 한번에 단번에 믿음으로 믿음이 끝나는 행동이 아니다.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었느냐? 그것으로 구원분제는 다 해결 되었고 ㅌ나버린 이야기 가 전혀 아니다. 오해하지 말것.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람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라이라. 천국에 간 후 천국이 완성된 후에 믿음이 필요할까요 없을까요? 소망은 ,사람은 계속 필요하다. 그것은 하나님과의관계이다. 그 말은 필요하다는 말은 가만히 있는 다느 ㄴ말이 아니다. 믿음은 사상이 아니고 신념, 의지도 아니다. 믿음은 나 아닌 딴 사람과의 관게를 말한다. 그래서 죄도 관계로 설명을 했다. 믿음도 죄에 개념과 반대되는 관계를 말한다. 다른 사람에서 독립해서 나 혼자 스스로만 긍정하는 관계이고 그래서 상대편에 대한 신뢰를 아예 안하는 것이고 믿음이란 상대편을 신뢰하면서 유지해 나가는 관계를 말한다. 믿음이란 하나의 관계이다. 관게는 인격 사이에서 계속해서 어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 분에 대해서 마음이 계속해서 ㅇㅁ직이고 하나님도 나에게 대해서 계속해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시고 그것으로 하나님의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아들만 믿음으로 내 구세주로 긍정하고 그것으로 끜나는 것은 아니다. 그ㅏ것을 긍정했으므로 긍정한 그 분에 대해서 믿ㄷ고 의지하고 나를 부정하는 자세로 계속해서 잇어야 하기 때문에 믿음은 지속적으로 오히려 성당해 가면서 관계가 가까워 진다는 하나님에 대한 쇤뢰가 점점더 커져 가면서 든든한 마음으로 그 분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상ㅌ태로 발전해 가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기 때문에 믿음은 사상이 아니고 노력이 아니고 믿음은 어떤 하나의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만큼 했으니 봐 주십시오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긴밀한 관게 속에 잇는 것이다. 4.야고보서 2:26절과의 조화는 2:26절?영혼없는 뭄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1절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함께 잏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 행함 강조 이에 경에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밀슴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 믿음으로 이로보건대 사람이 ㅏ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롬=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얻는 것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하고 야고보서는 믿음만이 있으면 의롭다 하심을 얻고 생활을 무시하기 때문에 아니다 행함이 잆으면 그 믿음이 아무 가치가 없지 않느냐? 믿음은 행함이 따라와야 한다고 ㅏ반대ㅉ족을 강조한 것이다. 행함과 믿음은 동전의 양 옆과 마찬가지다. 맞습니까? 잘 들어보면 그 말은 혼란에 빠뜨리는 잘못된 논리다 너무나 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설명하는데 잘 생각해보면 행함으로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말은 행함만이 아니고 믿음도 있어야 된다는 말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행함이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너가 뭐 행한 것이 잇느냐 그리스도의 공로만 구원을 얻는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어라고 말슴햇는데 야고보서에 있는 문맥은 약1:-의 문맥은 약의 문맥은 말남하지 말고 실천하라 2:초에 교회에 아름다운 옷을 입고 오면 좋은 자리 내주는 사람을 외모를 보지 말라 . 2:14--믿음이 말만하지 말고 먹을 것을 주면서 하라는 것으로 사람이 말만 많이 하고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혀에 자갈을 먹이라는 말이 계속헤서 나온댜ㅏ. 말이 많은 스승이 되지 말라, 실쳔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그 이야기를 하다가 믿음으로 넘어온다. 믿음이란 말이 아니고 실천이다. 주여 믿습니다.믿습니다. 하면서 실제로 안 믿는 사람을 두고한 말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을 재단에 드려라, 네 하나님 손종하겟습니다. 그렇지만 아까운데 어떻게 드리지 그 두 아들 비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들을 안 드리면 그것은 예하고 말하는 하나님께서 말슴하신대로 제가 하나님이 죽은 가운데서 살리셔서 약속을 지킬 것을 믿습니다. 그렇게 했으면 하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든지 어떻게 해야 하는데 약속하신대로 하늘의 별과같은 내 후손이 어디서 생깁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아들을 바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이 별과 같은 후손을 주겠다는 악속을 성취흐는 것은 못 믿는다는 것이고 그래서 안 바치겟다는 것이다. 그러면 믿습니다. 하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냐 믿으면 아들을 바치라는데 네가 내가 약속한 것을 믿는가 보자. 하날의 별고 같은 자식을 네가 믿는지 안 믿는지 보자, 그래서 아들을 하나 줘 놓고는 그떄는 믿었겠지, 아들이 하나 생겼으니 이제는 가능하겠다. 가능성이 있는데 그 아들을 바치라 그 가능성은 없어져 버리는데 그러면 하나님 곤란합니다. 그래서 히11장에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체험적인 신앙을 갖고 간증하며 남에게 유식을 끼치는 분들을 오래 관찰해 보면 그 체험이 신앙에 기초한 것이 아니고 결국은 자기의 신념이나 망상으로 흘러가 버리는 경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반대로 체험 후에 성경을 잘 배우게 되어서 참된 지식을 얻은 분은 자기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슴에 근거한 올바른 믿음에 서게 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이 하신 말ㅆ슴을 봅시다. 눅16:31 모세와 선지자들(구약성경)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 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요20:29-31절 :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이에 대한 사도들의 증언 벧전1:8-12절 :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줄거움으로 기뻐하니....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상고하니라 그들이 예언한 내용이 자기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한 것임이 그들에게 계시되었고 이제....복음을 전한 사람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전하여 졋으니 딤후3:15절:성경은 증히 너로 하역ㅁ 그리스도 이ㅖ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히12:1 이럼로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구름같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4:16-25절 아브라함의 믿음 15절 율ㄹㄹ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노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율법은 그러면 왜 주셨늘까? 범죄를 했기때문에 쭈어진 것이다. 율법은 구원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고 율ㄹ법을 범한 사람을 정죄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는것이지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16절 : 그러므로 후사(상속자)가 되는 이것이 운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은혜로 구원받기 위해서 믿음에 속해야 되고 이는 그 약속을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우리까지 해당된다)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뿜ㄴ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 =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절 :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음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사리사며 없는 것을 잇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라. ♧많은 민족의 조상 : 창12:에 아브라함을 부루실 때부터 분명한 것이다. (모든 민족으로 복의 根源으로 삼겠다) 구약시대부터 이스라엘의 選民思想은 이스라엘 民族ㅇ에 국한 된 것이 아니고 모든 세계,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의 믿은바 : 17절 하반절의 아브라함의믿은바 하나님은 죽은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엇다. 즉 아브르함은 아들이 하나도 없고, 아들을 낳을 수도 없는데 아들을 낳는 생식의 의미에서는 죽은자와같앗는데 하는의별과같은 후손을 준다는 약속을 믿엇다. 왜 ? 죽은 자를 살려서라도 자녀를 줄 것이라고 믿엇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나중에 아들을 바치라고 했을 때도 바쳤다. 이 아들을 살려서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고 믿엇다고 히11:17-19에 나온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가 말하는 예수님이 내 죄를 담당했다는 그런 믿음이 아니고 아브라함은 나 같은 아무 능력도 없고, 아들도 낳을 수 없고, 아무 볼일도 없는 나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고 많은 후손을 주신다 그렇게 능히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라고 내가 믿는 것이다. 18절 : 아브라함이 비릴수 없는 중에 (소망이 없는 )바라고 믿엇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슴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브라함이 그렇게 되려고 햐ㅏ나님이 행하심이다. 19절 :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고 사래의 태ㅢ 죽은 것 같음을 악고도--자기도 부인의 죽은 것같음을 알고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 20절 -- 22절 :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1-- 설명한 것을 다시 설명을 하고 있다. 앞에는 행함과 반대쪽의 說明을 죽 해 왔다. 어떤 일을 했기 때문에 품삯처럼 주는 것이 아니고 일을 하지 않았는데(경건하지 않았는데) 도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햇는데 뒤에서 자세히 說明하기를 아브라함은 전혀 불가능한 상태 속에서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의심하지 않고(믿음이 약해지지 않가) 믿음에 굳게 서서 그 하나님이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실하게 믿엇다. 믿음이란 십게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에증 우리가 구원을 얻을 때 다른 사람에게 젼도할 때 잘못 “당신 죄인이지요, 당신 죄를 범했으니까 지옥에 가야합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담당햇으니까 예ㅒ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로 바로 도입하기 때문에 항상 基本的인 믿음은 없고 내가 天國에 가기 위해서 믿는다는 말을 고백하려 하고 있다. 바름-- 처음부터 하나님에 ㅏ대한 설명을 충분히 해야 한다. 4영리를 사용한다면 제 1영리 하나님에 ㅏ대해서 아주 많이 설명을 해야하고 그 나머지는 저절로 받아들일 수 있고 실제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잇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람하시는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지 나는 구원받을 능력이 없ㄱ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자기의능력으로 구원해 가실 수 있는 위대한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단순히 하나님이 내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으로 믿는 것이 아니고 용서 이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해시고 엄청난 큰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실제로 실현하셧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약속을 나에게 하신 신실하게 지키는 신실성, 그런 부분에 대한 믿음이 일차적으로 필요하고 그 믿음만 잇으면 구원을 얻는 것이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화목제묵로 삼으시고 내 죄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처리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잇으면 그 분 안에 이런 모든 구원의 방법이나 모든 선물과 ㅎ켸택이 다 들어 있는데 그 전체를 다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전부 다믿지는 않고 내가 예ㅒ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 그것만 믿으려고 한다. 확인 : 구원의 확신이 잇다고 말하면서도 아브라함과같은 믿음은 안갖고 잇다. 구원의 확신이 잇다고 말하면서도 아브라함의 믿음이 없기에 항상 걱정이 잇고 의심이 있고, 조그만 어려움이 있어도 믿음이 옸다, 갔다 한다. 죄 문제만 생각하지 말고 基本的인 믿음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그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를 ! 23절 : 저가 의로 여기셧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함이 아니요 24절 :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아브라함 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아브라함 한 사람만 위한 것이 아니요 우리에게도 같은 ㅎ켸택을 주시려고 아브라함을 대표로 그 혜택을 약속 받앗다. 24절 b : 곧 예수 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 우리가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분으로 믿는데 성경에는 ”죽은자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믿으라, 예수를 부활시키신 하나님을 믿으라“고 되어 있다. 예증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이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사람이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구원에 이르니라. 성경에 이르되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하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앋어리라 --1.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구원얻기 위한 믿음은? 두가지 요소가 있다. 1)예수를 主로 시인하는 것-- 단순히 예수님ㅁ이 내 죄를 담당했습니다.고 시안한다고 되어 잇지 않고 이ㅖ수님이 나의 主人이라고 시인하라는 것이다. --느는 아ㅖ수님을 나의 主라고 고백하기 전에는 내 주인이 따로 있었다. 사탄의말을 들어며 사탄이 내 主人이고 누가 나를 시키는 대로 그 사람만 따라 다니면 그 사람이 나의 주인이 된다. 때로는 돈이 나의 주인이고 잘하다가도 돈만 주어지면 모든 거사을 버려두고 그 쪽으로 가면 명예가 나의 주인이고, 컴퓨터, 돈, 기술, --내가섬기는 주인이 잇는데 그 자에가 하나님이 아니기에 죄는 우상이다. 그것이 죄이다.
내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섬기던 것을 버리고 새롭게 예수님을 주인으로 맞는 것을 말한다 롬3:에서 이 땅 어떤 잘못된 주인에게 묶여서(내 스스로 기뻐서 갔지만 )노예로 잇는 나를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노예 해방을 시키셔서 구속해서 하나님 자기의 백성으로 만드신 것을 구원이라고 하고 의롭다 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구원은 내 주인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우리 머리 속에는 구원은 죄의 형벌에서 놓여 남을 받는 것으로만 생각한다.형벌은 자동적으로 처리된다. 주인만 바뀌면 일은 ㄲ긑난다. 예증 내가 옛날에 섬기던 상전이 잇는데 이 상전에게 노예가 빚이 있거나 매맞을 일이 있거나 감옥에 들어 갈 일이 있다고 가정해 보면 다른 주인이 와서 이 주인에게 돈을 주고 이 노예를 샀다. 그 때 예 주인에게 새 주인이 물어줄 것은 다 물어주셨다. 사서 새로운 주인이 되었기에 형벌은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것이다. 오류: 다만 이 노에가 생각하기를 어떤 부자 영감님을 보고 영감님? 내가 이 主人에게 빚이 있어서 감옥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내 형벌좀 면하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그 때 내가 내 형벌을 주구를 보내서 대신 받게 해 주마 예! 그래서 내가 감옥에 들어가는 대신에 어떤 사람이 감옥에 들러가서 --내가 감옥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내 구언이라고 말하는가? 우리의 믿음이 대개 이렇다. 점검 : 그것이 아니다. 옛 주인에게서 놓여남으로 꿑나는데 옛 주인 밑에 잇으면서 감옥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ㅏ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구원받는다는 것은죄의 대가인 형벌을 받느냐 안받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아예 그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주인에게 돌아오면 끝이난다. 그 주인인 예수님이 대단힌 분이니까 사탄이고 뭐고 얼시고 할 수 없ㄴ으니까 끝난다. 그래서 내가 믿을 때 예수님이 아의 主人이 된다는 것을 먼저 믿어야 한다. 그것은 이제 그분에게 복종하겟다고 복종하라느 ㄴ것이다. 2.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는다는 것은 그렇게 믿지 않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ㅂ활시키셨다고 믿으라는 것이다. 전도할 때 이 부분은 상당히 종요하고 점검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이시고 부활햇다고 전도지에 적혀 잇다. 부활을 보고 믿어야 하는데 십자가를 보고 믿어야 한다고 한다. 성경은 십자가를 믿으라고 하지 않고 부활을 믿으라고 한다. 즉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믿으로고 되어 앗다. <24-25절을 읽고> 예수는 우리의 법죄로 말미암아 내어주신바 되었고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기 위하여 일으키심을 받앗다. --하나님이 그를 살리셨다. 십자가는 형벌과 연결되어 있고 부활은 의롭다하심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은 죄인이니 삽자가에서 처형되어야 한다고 하나 하나남은 다시 살리시니까 ”앞에 벌을 준 것은 잘못되었다. 너희들이 잘못되었으니까 점검하라고 하신다.
제 5 장 연구
5:1-11 칭의의 결과 (義롭다함을 받은 자가 누리는 혜택)
본문이해 1.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앋은 우리에게 무엇을 約束하시면서 격려하십니까? 1) 1절-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화를 누린다. 2) 2절 a-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3) 2절 b- 하나님의영ㅇ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의영광에 대한 소명을 자랑으로 여긴다. 2.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인정받게 되면서부터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되었습니다. 이것을 보통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 시작된 관계의 出發點이며 目的地는 아니다. 그 目的地는 무엇인가? 1) 2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이다. 2) 9-11절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3. 그 目的地인 하나님의 榮光에 이른다는 말은 나도 영광스럽게 된다는 ㄸㄸㄸㄸ뜻이다(8:30절 미리 정하신 자를 ㄹ부루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게 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셧느니라) 그런데 그 상태에 도달할 떄까지 나는 어떤 과정을 지나가야(겪어야) 하는가? 환란을 즐거워한다. 3-4절, 환란 -- 인내 -- 소망 -- 연단을 이룸 8:17절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 가 그와 한꼐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임이니라.」 빌1:29에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위하여 고난도받게 하심이라.」 행14:22에도 「제자들의마음을 굳게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격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4. 왜 환란을 겪어야 하는가? 환란--인내--훈련받은 인격--소망을 이룸.3-4절 소망을 이루기 때문에 -- 요15:18-19절 ?세상이 너희를 미우하면 너희보다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엿으면 쌍이 자기의것을 사랑할 처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오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탁함을 입은 자인고로 새ㅔ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약1:2-4절 ?12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기ㅃ브게 여기라 이는 너희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2절에도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하심을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지께서 자기를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로다. 히2: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마암은 자에게(하나님)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창시자를) 주를 고난으로(을 통하)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5:8-9절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을 통하여) 순종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셧고, 벧전4:1-2절 ?그리스도꼐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무장하여).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거쳤음이니라 그 후로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안ㄴㅎ고 오직 하나님의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하려 함이라. 벧전4:12-13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도리어)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것이니) 즐거워하라(기뻐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이)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하심이라? 5.그러면 그 환란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게 될 것이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있다면 무엇입니까? 5절 : 이 소망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 9절 :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함을 얻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노여움에서 구원받을 것이다. 10절 : 원수되엇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음으로써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으니 그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다. 고전 10: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주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 벧전 5:10절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고 굳게 히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히시리라? 6. 우리에게 쏟으신 하나님의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6-8절
本論
???♣ 代表原理????????????? ???????????????????????????? 1.글의흐름(문멕) 4장은-- 칭의와 믿음에 대하여 설명함 5장 1-11은 --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은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과의 和平을 누리고 하나님의 榮光을 바라고 즐거워하면서 구원의 完成을 소망하며 격려와 위로와 즐거움을 주고 있다. 5장12-21은 -- 그러한 恩惠와 祝福이 어떻게 우리에게 흘러 넘쳐오게 되엇는가를 새로운 각도에서 明白하게 說明하고 잇다.
2. 두 대표자 : 아담과 그리스도 3:19-20 4:15 5:13 에서 볼 수 잇는 것처럼 人間에게 잇는 죄를 드러내고 정죄하고 審判하려고 律法을 주셨다. Q)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보내서서 구원하실 計劃인데 무엇때문에 뮬법을 먼저 보내서 정죄하는 일을 하실까? (병주고 약주고) --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이 법적인 처리이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의 球束을 이해하려면 本人의 行動과는 相關없는 代表者의 行動에 따라서 그에게 所屬된 모든 사람이 責任을 져야하는 事實을 理解해야 한다. 예증 株式會社의 代表理事는 모든 株主들을 대표하고 잇어서 代表理事의 過誤나 業績이 모든 株主에게 合法的으로 전가된다. 이것을 代表原理라고 한다. 一般社會에서 흔히 잇는 原理이지만 특히 聖經에서는 代表原理가 아주 많으며 그의가 다 그리스도의 대표적인 球束事을 件說明하기 위한 예표로 使用되고 있다. 즉 長者의 代表權, 가나안을 정탐한 12사람(불순종으로 40년 공야), 십이조제도(전체를 대표하서 드리는 것임), 다윗과 골리앗(두 사람이 대표로 결투해서 그 숭부에 따라서 승자의 종이됨), 맥추절의 첫곡식(첫 곡식단을 대표로 먼저 거두어서 요제로 드리는 일),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全國民을 대표해서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고 贖罪祭物을 바친 事件들이다. 이와같이 그리스도꼐서도 우리의 代理者이면서 代表者로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順從하셔서 義人이 되셧고, 또 우리를 대리, 대표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대표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칭의)이 되었고 형벌을 받아 처형되었고 다시 살아 났다. 그리스도의 대속을 代表로 理解하면 바람직하다. 그리스도의 대표적 位置를 確立하고 또 이에 따른 칭의를 합법화하려고 미리 法的인 조치를 치하셧다. 그 첫 事件이 아담의 代表的이다. 즉 아담의 行動은 그의 後孫으로 태어날 모든 人類의 代表者로 看做(간주)되었다는 것이다. 예증 1.창1:28 아담에게 세상으 모든 것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창2:19 아담이 먼저 지음받은 후 그 일을 혼자 수행함(딤전2:13) 2.女子를 아담의 몸의 일부(갈빗대)로 지으셔서 아담에게 소속되게 하심 3.창3:16 아담에게 하와를 다스리라고 하심 4.그리스도를 女子의 後孫이라고 하신 것은 그리스도가 아담의 後孫이심을 나 타낸다.(창3:15) 즉 그리스도는 들째아담이요 또 다른 代表者이니 아담에게 所屬된 자는 아 니시다.. 5.창3:20 여자에게는 이름(固有名詞)를 지어 주었지만 아담은 固有名詞인 자 신의 이름이 따로없고 ‘사람’이라는 普通名詞를 그대로 使用해서 그의 이름 됨. 6.신약에서 分明히 說明함. 고전15:45 ?첫 사람 아담은 산 영혼이 되었다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다? 고전15:47 ?첫 사람은 땅에서 나서 흙에 속하였으나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다.? 호6:7 ?저희는 아담처럼 言約을 어겼기고? --이처럼 아담이 全人類의 代表者로 指名되어 잇었고, 아담이 犯罪하여 하나님과 言約을 어겼기 때문에 아담이 범한 모든 죄는 모든 人類가 범한 죄로 간주되고 말앗던 것이다. 그래서 5:12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罪가 世上에 들어오고 死亡도 왔다?고 햇으며 12b에 ?이와같이 모든 사이 죄를 지었으므로 死亡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다. 이 하번절 말슴은 모든 個個人이 죄를 범하여 죽음에 처하게 된 것처럼 이해될지 모르지만 ,그 바른 뜻은 한 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自動的으로 罪를 犯한 것처럼 看做(간주)된 것을 指摘하고 있다. 14절 :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犯罪와 같은 모양으로 죄를 짖지 않은 이들에게도 죽음이 王노릇하엿다? 그런 맥락에서 15절 : ?아담은 오실 자(그리스도)의 표상?이 된다. 이를 더 分明히 하려고 13절과같은 重要한 說明이 잇는 것이다. 13-14절의 뜻을 옮기면 法이 있기 전에는 죄가 成立되거나 정죄되지 않앗난데도 불구하고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사이에 죽은 사람들도 죽음의 형벌을 받은 것을 보니까 本人의 죄 때문이 아니고 아담 한 사람(대표자)의 죄 때문인 것을 분명히 알수 있다. 이 代表原理가 理解되면 : 사람이 이 세상에서 태어날 때부터 罪人으로 간주되고 죄인으로 취급되는 理由를 理解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다윗도 “내가 죄악 중에 出生하엿음이야, 母親이 나를 罪중에서 나를 孕胎하엿나이다“고 告白하고 있다. 그래서 갖난아이가 世上에 태어나지 一主日만에 죽는다면 本人은 죄를 범하지 않았지만 代表者 아담의 죄 때문에 역시 죄인인 것이며,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球束을 통하여만 救援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2장에서 설명하던 罪論과 救援論이 이 代表原理에 根據하고 잇다. 이처럼 모든 인累가 아담의 後孫이라는 관계성(所屬性) 때문에 무조건 罪人이 되었듯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잇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무조건 義人되고 구원받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꼭 確認할 것이 잇다. 그것은 所屬관계이다 모든 人類는 아듬의 後孫으로 태어나기 떄문에 自動的으로 아담의 後孫이 된다. 그것은 意義가 잇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 속한 그리스도의 後孫은 누구인가? 自動的으로 그리스도의 後孫이 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수님은 결혼하신 일도, 자녀를 낳으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入義를 받으시는 것이다. 우리가 아담의 집안에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戶籍을 바꾸고 入養節次를 거치면 그리스도에게 所屬되고 그의 義를 입게 된다. ♧그럼 어떻게 入養할 수 잇는가? 그리스도를 나의 主로 代表者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行爲가 必要하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하고 믿음은 信念이 아니고 所屬을 바꾸는 行爲요 아버지와 상전(主人)을 바꾸는 입양의 行動이라고 할 수 있다. (요1:12, 갈3:26,29,4:6--아바 아버지라 부르느니라) 養子라고 부르는 理由는 참 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만이 참 다들이고 우리는 入養된 아들이다. 아담의 子女가 그리스도의 家族으로 戶籍을 바꾸어 入養하면서부터 하나님의 子女가 되고 義人이 되는데 이때 아담 家門의 戶籍을 파서 도려내고 없애야 한다. 그리고 새 戶籍에(天國) 이름을 올려야 한다. ◈그래서 “믿는다”는 말은 두 가지 重要한 行動을 內包하고 있다. 하나는 戶籍을 버리는 것으로 悔改(回心)이고, 또 하나는 새 戶籍을 갖는 (市民權을 얻는 믿음) 加入이다. 前者는 自己否定이라하고, 後者는 예수님을 主로 告白하고 順從하는 行爲라고도 한다. (마16:24, 롬10:9) 성경에 보면 이 믿음을 통한 所屬의 變化를 天國에 들어가는 것으로 表現하기도 했다. 즉 사단의나라이거나 어떤 인간의 나라, 심지어 자기 자신의 王國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긴다고 表現하기도 한다. 믿는 자에게는 이미천國에 들어와 있다-골1:13,14(완료형). 이 경우에도 過去의 國的, 市民權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왕이신 하나님의 統治에 絶對服從하겠다는 誓約(서약)을 해야 한다. 이것을 예수님을 主로 告白한다고 表現한다. 結論的으로 말해서 “救援”이란 所屬이나 家門, 國籍을 바꾸는 것을 말하며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는 날에 ㅏ나는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이것은 사라 있ㅇ들 때 일어나는 일이먀 죽은 후에 소속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구원이라는 말로 아담으 가문에서 건져냄을 받는 것, 사단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엃겨지는 것을 ㅏ뜻한다. 그러기에 구원은 한 번 받는 것이다. 이러한 소속의 변화, 또는 구원을 ‘위로부터 태어남’또는 ‘중생’이라고 한다. 내 것은 땅에 속한 자, 아담에 속한 자가-- 위에 속한 자로 하늘에 속한 자, 그르스도에게 속한 자로 ㅏ새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 하나님의 가정에 양아들로 입양되엇기에 새로운 출생처럼 표현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입양되는 방법은 6장에서 보다 자세하게 다루겠다. 5:12-21은 법적인 절차를 밟고 6: 에서는 實在的인 절차를 밟는다. ♣적용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전 인류가 죄인이 되고 죽음에ㅐ 처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거련하고 또 억울한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엄청난 선물을 주시낟.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가? 문제는 내가 누구의영향하에 잇느냐는 것이다. 나는 어느편인 것 같은가? ◎나는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이 큰 선물들을 마음껏 누리고 감사하고 잇는가? 아직도 아담의죄와 그 결과인 죽음을 인하여 염려하거나 두려워하는가? ◎나는 죄를 많이 범했다. 사람이나 아지고도 범하고 있는 사람을 어떻ㄱ 대하고 있는가? ◎그리스도를 소개할 마음이 잇는가?그리고 너그럽게 받아 줄 마음이 잇는가? 크리스찬 중에는 그런 사람은 없는가? 착각 : 죄성의 유전 아님, 죄는 물질이 아님 죄는 유전되지 않음 한 사람의 범죄--옆에 사람의범죄는 죄성의 전염이 아니고, 자기 의지로 행동하고 샆은 것 뿐이다 죄는 감염되는 것이 아니다. (요셉의 경우) 의심의 유전도 아니다 (왕하: 히스기야왕, 므낫세가 왕이됨 --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 아몬, 가장 선한 왕--요시아왕 왕하23:25) 롬5:19절 한 살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숨종함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8:1 그러므로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엥 잇는자(소속된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
롬5:12-21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 아담을 通한 피해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혜택???? ??구원의 證據 = 和平과 즐거워함??????????????????????
12-14절 : a.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罪가 世上에 들어오고 物質이 들어온 것으로 오해하지 말자 죄는 누가 만들엇느냐고 질문들을 하지만 죄는 만들어지는 물건이 아니고 存在하는 것도 아니다.. = 人格이 다른 人格에 대해서 어떻게 行動을 갖느냐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罪란 어떤 큭정한 것이 있는ㄴ것이 아니고 表現을 그렇게 한 것 뿐이다. 죄는 들어 왔다. b.罪로 말미암아 死亡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死亡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 말은 그냥 읽으면 a,b가 전혀 오해를 일으킨다. 앞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이 어디에 왓는가? = 세상에서 욌다.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各各 罪를 범햇기 때문에 자기의 死亡이 왔다느 ㄴ말로 誤解하지 말자. a는 문장에서 대표자 대문에 온 세상에 문제가 생겼다. b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사망이 왔다면 서로가 틀린다. 13절 : 죄가 율법 잇기 전에도 (모세 전)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잇기 전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엿느니라. 죄는 실제적으로 어떤 行動을 罪라 말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법율로 정해서 어떤 것을 정죄하는 법이 생기기 전에는 그 자체를 사실은 잘못은 잘못이지만 법적으로 죄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법율적인 說明이다. ♧정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1. 合法的인 절차로 정죄하시고 다시 合法的인 절차로 의롭다고 인치시고 구원하신다.2. 實在로 우리가 의로워져야 한다. 하나는 법율에 의해서 정죄되고, 법율에 의해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잇고, 도 하나는 실제로 죄를 범하고, 實在로 의로워지는 것이 잇어야 한다. 그 둘이 다 설명되어 져야만 구원이 정상적으로 설명된다. 그래서 지금 12-14절에서 法律的인 절차를 먼저 설명하고 잇다. 그랴서 법률적인 처리에서 3:18-19에서 罪人들이기 때문에 그 죄를 깨닫게 하고 審判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다. 이미 죄인이다고 다 規程해 놓고 왜 律法을 주시는가? 合法的으로 정죄하기 위함이다. 예증 이것은 이 世上에서도 똑 같이 일어난다. 항상 법이 먼저 생기지 않고 죄가 먼저 생긴다. 죄를 범하지 않으면 법을 만들지 않는다. 법을 만드는 것은 문제있는 사람이 잇을 때 法을 만든다. 海外旅行의 自由다 하니 國民學生가지 다 나가니 몇살이하느 ㄴ문제가 있다. 여권 내 주지 않겠다 하고 돈도 마음대로 가져 갈 수 있다고 했다가 얼마 이상은 안된다고 하면서 법을 만드는 理由는 이 法이 없을 떄 갖는 自由에 대해서 統制를 必要로 할 떄 法을 만든다. 법이 생기기 이전에 어떤 行動이 먼저 잇다. 죄라는 行動이 먼저 있고 이 행동을 죄라고 規程짖기 위한 법을 나중에 주신다. 그와 똑같이 구원을 하시는데 구원하기 위해서 법으로 묶어 놓은 것을 풀어놓고 그 다음에 문제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리를 구원해 가실 때 먼저 法的으로 의롭게 만든다. 그것이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이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말은 實在的으로 의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행함과 관계없이 의롭다함을 받는다. 행함으로가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말은 어떤 法的 節次에 의해서 法的으로만 그렇게 만들어 준다. 예증 入養을 하는데 實在로는 내 아들이 전햐 아니다. 남을 불러서 내 아들로 호적에 넣을 때 -- 내 아들도 아니고 나와 닮지도 않고 내 성품도 안따라오고 전햐 나와 다른데 일단 戶籍에 넣어서 아들로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이렇게 살아야 되고우리 집에 잇으면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訓練을 시킨다. ♣적용 우리는 이것을 거꾸로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즉 養育을 다 한 후에 合格 이제부터 너는 戶籍에 넣어 주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ㅏㅣ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다 믿음으로 먼저 戶籍에 부터 올려 준다. 여기에 대한 폐단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은 즉(法的)으로 實在的으로는 아들의 訓練을 안 받아도 되지 않느냐고 質問을 한다. --이미 호적에 들어와 잇으면 되엇지 왜 자꾸 훌륭한 아들이 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의 의도 戶籍에 넣는 目的은 무엇인가? 내 아들이 아닌 사람을 戶籍에 넣어 주는 것은 養育해서 내 아들로 만들겟다는 의도를 갖고 잇는데 내 아들이 되는 것은 따라와야 한다. 順序는 戶籍에 넣는 것이 먼저 올라가지만 重要한 것은 實在的으로 ㅏ내 아들이 되는 것이 더 重要하다. 그래서 合法的인 절차 이후에 實在的인 절차가 必要하다. 實在的인 절차는 6-8에서 다시 다루마 한다. 13절 :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새상에 잇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리라 --합법적으로는 14절 :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법죄와 같은 죄를 짖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死亡이 王노릇하엿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선악과를 따먹지 아니한 자들 -- 아담의 모든 後孫은 다른 율법을 받은 적이 없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율법은 아담, 하와가 조지르고 쫒겨난 후에는 그 법령이은 후대 사람에개는 아무 사람에게도 해당사항이 없다.(선악과가 없어졋으므로) 성경에 노아 당대 사람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아무런 법령을 준 적이 없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때도 (물론 언약에 관계된 할례를 베풀라는 있지만) 그런데도 잘못은 自己들이 잘 알고 잇다.實在的으로 죄를 범햇는데 法的으로는 죄를 죄로 認定치 않지만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율ㄹ법이 주어지기 전에 아담같은 죄로 인해서 죽은 것이 아니고 아담과 같은 선악과를 따먹지 았았는데 다른 죄를 많이 범했다. 다른 죄는 법的으로 아직 規程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죽었다 (에ㅐ녹의승천 외에는 다 죽엇음). 그래서 율법을 받은 일이 없고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어긴 일이 없고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죽엇다 그 理由는 죄를 범햇으니까 죽엇다. 그것이 12절의 보충설명이다. 이런 ㄸㄸ듯이다. 죄는 1.실제적인 죄가 있고 2.법적으로 規程한 죄가 잇다. 죄는 아담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世上에 들어와 (이것은 實在的이다) 그로 말미암아 死亡이 왔다. 12절에 모든 사람이 罪를 지엇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는 말은 아담과는 관계없이 개개인이 각각 범죄하므로 死亡에 이르렀다는 말이 전햐 아니고 모든 사람이 實在的으로 죽었다. 그것은 죄가 들어와 죽은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을 보니가 모든 사람도 죄가 있어서 죽은 것이다. 아담 이후부터 모세때까지 사람들은 왜 죽었느냐? 죄는 죄이지만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기 전에는 죄를 죄로 인정되지 않ㅅ기 때문에 아담 이후부터 모세때까지 사람들은 죽어서 안될 사람들이 죽엇다. 죄는 있지만 율법이 주어지기 전인데 합법적으로 아담의죄 때문에 죽엇다. 자기 죄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고(자기 죄는 죄지만법율적으로 하나님께서 정죄하시지 않았기 때문에)그것 때문에 죽을 수 없다. ㅣ선악과를 따먹는 사람은 죽어리라고 했으니까 아담 하와만 죽어야 하는데 왜 다른 사람들이 죽느냐?-- 그것은 자기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딤 ㄸ대문에 죽은 것이다(12-14절까지의 이야기이다) 14절C에 아담은 오실 자의 表象이니라 이것은 그리스도를 說明해 주기 위하여 아담이 특별한 位置에 잇다. 하나님이 아담을 그리스도와 對等한 特別한 位置에 세워두어서 그리스도 한 사람 대문에 우리가 구원얻게 하시기 위해서 그럼 理論, 그건 법을 만들기 위해서 아담 한 사람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法을 똑같이 만드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 때문에 구원에 이르는 것을 만들기 우해서 아담 한 사람 대문에 죽음에 이르는 原理를 만드셧다. 이제 12절로 다시 돌아가 보면 12절 :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罪로 말미암아 死亡이 왔나니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죄르 ㄹ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것은 모든 사람이 자기 죄를 지었음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족었다는 것이다. --12절이 그 이유는 14절C에 아담은 오실 자(그리스도)의 表象이기 떄문이다. 이것을 神學者들이 말하기를 代表罪라고 한다. 本人이 지은 죄가 아니라 代表者가 죄은 죄라고 대표죄라 한다. 전에는 이것을 原罪라고 說明했다. ? ????이것은 죄는 아담이 짓고 나는 어떻게 되었느냐하면 原罪가 내게 까지 물려와서 나도 그 원죄때문에 죄를 밤하게 되엇다고 즉 내가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는 어떤 本性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죄를 안 지을 수 없다. 그것이 原罪라고 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說明하지 않는다. 그런 影響이 잇는 것처럼 바숫한 句節이 나오기는 하지만 確實하지는 않다. 論理的으로說明하는 구절은 이 句節인데 논리적으로 說明하면서 本人의 罪대문이 아니고 아담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이 사람이 족음에 이르는 것이다 라고 한다. 그래서 신학적으로도 代表罪라고하지 原罪로는 말하지 않는다> 15절 : 그러나 이 은사는 (예스 그리스도루부터 오는 )그 범죄(아담의)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법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12절이 나오면 아담범죄로 혼자 죽은 것 아니고 많은 이가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이것을 理論的으로잘 整理히야 한다. 만일 아담의 범죄 대문에 나도 범죄할 屬性(죄성)을 가지고 태어나서 죄를 범하게 되엇다고 하면 구원에 잇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선물, 의를 나도 믿을 때 그 의가 본성으로(속성으로) 주어져서 그 의 때문에 에 선을 행한다는 結論이 나와야 한다. 죄가 물러 내려져 와서 죄성이 있기 때문에 죄를 범한다고 한다면 의도 내게 물러 내려져 와서 의성이 잇기 때문에 의를 행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義가 내게 미쳐오는 부분은 말하지 않고 罪만 내개 영향을 미쳐오는 것으로 過去에는 說明해 왓다. 그런데 그 說明이 不確實하다. ??♣정리 ...?????????????????? ??????????????????????????????? 원죄는 어디에 잇는가? 아담으로부터 오는 罪性에 있다고 보지말고 原罪는 모든 人間에게 있다. 제일 먼저 죄는 누가 범했는가? 아담이 아니고 하와이다.(사탄이거나) 아담의 죄가 첫번째 지은 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담의 죄를 특별히 거론한 것은 代表者이기 때문이다 아담의 죄를 原罪로 부르지 말고 代表罪로 본다. 罪의 始作은 原罪 罪의 根源은 모든 人間이 하나님께 스스로 대드는 자기의 問題이다. 모든 사람이 죄의 根源을 가지고 있다. 16절 :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을 것과 같지 아니하니 審判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럿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같은점 = 한 사람으로 인하여 다른 점 = 심판은 한 사람으로 定罪에 이른다. 은혜ㅒ는 많은 범죄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原理는 ㄴ같으나 반대현상이 나타난다. 17절 : 한 사람의 밤죄를 인하여 死亡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 들이 한 분 예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生命 안에서 王노릇하리로다. 똑같은 이야기이다. 死亡의 王노릇하는 것이나 生命의 왕노릇이 나온다. 王노릇 = 누리고 있다. 死亡 / 生命으 王노릇, 사망이 주관하고 생명이 주관하고 잇다. 왕노릇이 그을 자체를 거느리는 그을 의 왕이 아니고 생명 자체를 누리고 있는 것을 말한다. 18절 :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義의 한 行動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절 : 한 사람의 順從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結局 내가 의로워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 때문이다 再說明 Q) 예수 그리스도의 十字架에 죽은신 것 대문에 내가 의로워졌느냐? 예수의 의를 행하신 것 때문에 내가 의로워졌느냐? --오늘 本文은 예수님의 의로우심 때문에 내가 의로워졌다. 十字架는 형벌의 意味로 내가 刑罰받아 죽는 것이오 의로워진 것은 형ㅇ罰로 위로워진 것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내가 위로워진다는 말은? 十字架에서 내 죄가 탕감되엇기 때문에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의인이 아니다. 의를 행한 사람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의 義가 내게 義로 주어졋다. 이것은 消極的이 아니고 積極的으로 받아야 겠다. 20절 : 율법이 加入한 것은 犯罪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 나쁜 것이 잇는데도 법적으로 정죄를 해 주지 않으니까아닌ㄴ것 처럼 지나가니까 하나님게서 율ㄹ법을 주셔서 전부 하나 하나 다 정죄해서 全部 露出시켰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恩惠가 넘친다. ” 그 理由는 21절 : 이는 죄가 死亡 안에 서 왕노릇 한 것같이 恩惠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ㅏ왕노릇하여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永生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 즉 나쁜 짓을 인간들이 ㅏ했는데ㅐ 하나님이 율법을 주셔서 이 죄들을 다폭로하고 露出 시켜서 엄청나게 죄가 숨겨져 있던 것과 죄인 줄 모르던 것들이 다 드러났다. 예수를 믿으면서 용서를 받고 예수의 의때문에ㅐ 의로워질 때 내가 알고 있던 몇가지의 죄만이 아니고 전에 내가 몰랐던 율법을 배우고 교회에 나와서 성경을 배우고 나니까 죄가 굉장히 많아겼는데 그 많은 죄와 바꿔치기 해서 굉장히 의로운 자가 되니까 이 으 라는 恩惠가 더 크게 된다. 나는 죄가 별로 없습니다. 고생각하던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서 조그만게 감사를 하는데 나는 죄가 굉장히 많다고 ㅏ생각하는 사람은 굉장히 많이 감사하게 된다. 예수님은 비유를베푸셧씁니다. 탕감을 적게 받은 자와탕감을 ㅁㅎ이 받은 자와 누가 더 감사해야 되느냐고? 똑 같은 이야기이다. 罪責이 적은 사람은 感謝가 적고 罪責이 강한 사람일수록 恩惠를 더 할 수 있다. 그러면 質問이 나오지요. 우리가 죄를 더 많이 지어 가지고 恩惠를 더 많이 받으면 좋지 않느냐? 그것은 다른 반론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6:1에서 말한다.
?? ☞ 5장 전체 整理???????????? ?????????????????????????????????? 5:1-11절 하나님과 사이좋게 위해서는 和平을 하고 환란을 통하여서 내가 자라난다는 기쁨과 즐거움 . 하나님의 구원이 하나님의 사람에 의해서 確定되어 있고 보장되어 있고 ㅌ까지 구원해 가신 다는 약속에 ㅏ대하여 자신을 갖게 되고 平安함을 갖게 된다. 이것은 合法的인 구원이다. 칭의를 說明하고 믿음을 說明하고 그 缺課까지 자세히 說明했다. 아주 기분좋게. 5:12절- 이러므로. 다시 說明을 하면서 칭의의 原理가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느 ㄴ말 자체가 하나님과 和睦되어서 이러한 혜택을 누리고 잇는 이 모든 구원의 內容들이 어떤 原理에 의해서 주어지는가? --하나님이 人間을 구원하시는 方法에 問題가 있다. 그것은 나쁜 것만 다 ㅏ했는데 ’“믿습니다”이렇게만 하면 간단히 구원해 주니까 이것은 좀 이상하다. 기독교처럼 論理的이 아니고 合理的이 아닌 宗敎가 어디에 잇는가? 다른 宗敎처럼 人間이 善을 행하고 다해서 구원을 얻는다고 하면 말이 되는데 基督敎만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니 참 모호하다. 그래서 많은 信者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기의 行動이 따라오지 않을 때마다 罪責에 빠진다. 반면에 자기가 조금 敎會生活을 제대로 하면 상당히 으시댄다. 聖經에는 너희도 결코 자랑할 수 가 없다라고 한다. 너희들도 그렇지 않다. 잘난척하지만 다져보자 하면서 롬2장부터 나왔다. --남을 判斷하는 사람아, 良心的으로 사는 사람, 律法的으로 사는 사람-하면서 완전히 묵사발을 만들엇다.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라는 것을죽 말해 왔다. 그리고 바울의 정리 =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基督敎는 가만히 앉아있고 내가 예수 믿습니다고 하면 얼렁뚱당 넘어가는 것인가? 무엇인가? 두 原理를 提示하고 있다. 아담의 原理와 그리스도의 原理이다. 즉 하나님이 人間을 다루실 때 개개인의 죄만을 직접 체크하실 대도 있지만 개개인의 죄를 체크해서는 문제가 다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우리를 구원하실 特別한 뜻을 세우셨고 이것을 분명히 하시기 위해서 공연히 아담을 代表者로 만드신 것이다. 이담이 重要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代表者로 해 놓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는 原理를 說明하기 위해서 아담을 대표자로 정해 놓고 이 아담의 後孫은 本人이 죄를 범했간 안 범했건 간난아이로 태어나서 아담의 後孫은 罪人으로 죽어야 된다. 즉 아담에게 하나님이 “너는 이 善惡果를 따먹으면 죽는다. 너만 아니고 너의 後孫도 내가 다 죽이겠다.” 그런 言約으로 되어 있는 것을 처음부터 說明한다. 또 다른 反論. 죄를 범하지 않은 갓난 아이가 왜 아담 때문에 죽어야 하는가? 억울하지 않은가?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것은 내가 죽이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살리고 싶어서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갓난아이든 누구든 구원받게 해 주겟다. 너희들이 행함으로 구원얻으려면 아무도 구원 못얻을 것이니까 롬1-3에서 다루둣이 結局은 아무도 구원얻지 못한다. 그래서 길게 따져 보니까 아무도 없이 다 죄인이더라 그러면 인간은 소망, 희망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가 그런줄을 알고 내 아들을 보내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恩惠로(선물) 주기로 作定했다(그냥). 다만 거기서 우리가 整理해야 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膳物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요구한다.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해야 된다. (4장에서 설명했다). 그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고, 시련도 주시고, 고난도 주시고, 우리를 연단시키신다. 연단시키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계속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그 연단의 核心되는 부분인 自己否定의 原理는 6:에 나온다.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完全힌 새 사람으로 만들어야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一段 그리스도와 우리가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 問題가 잇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의 Key Point는 그리스도와 내가 관계를 맺아야만 내가 그 惠澤을 누릴 수 잇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너희들이 努力해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니까 내가 내 아들을 보내서 다 해 주겠다. 내가 내 아들이 행한 의, 내 아들이 順從한 順從 때문에 너희들을 의롭게 만들어 주겠다. 단 너는 내 아들을 코아해서 은혜ㅒ 로(선물로) 거저 그냥 줄 것인데 그것을 네가 받아들이겠다는 자세가 잇어야 된다.(믿음) 그것은 내가 믿겠습니다.하는 쉽게 하는 말하고느 ㄴ다르다. 믿는다는 말은 쉽고 간단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다는 것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내가 받아들이고 주로 모시고 나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기를 願한다는 告白가지 나와야 한다. 이것은 6장에 나온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데 하나님꼐서 1. 법적으로 처리해 가시는 過程과 2. 實在的으로 처리해 가시는 過程이 있다. 實在的으로 의롭게 만드는 과정은 6장부터 나온다. 그 전에 법적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는 설명을 먼저 하신다. 그것이 5:12-23에 나오는 그리스도 한 분 대문에 너는 거저 은혜로 선물로 혜택과 의를 누린다. 단 내 소속이 문제이다. 나는 암흑에 속해 잇는가? 그리스도께 속해 잇는가? 그것을 믿음이라 한다. 내가 누구에게 所屬되어 있는가? 아담/그리스도. 모든 人類는 아담에게 소속되어 있었는데 구원을 받으려면 그리스도에게로 자리를 옮ㅁ겨 와야 한다.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에게 오는 것을 입양 = 믿음이라고 한다. 아담에게 속한 人間들은 全部 다 後孫으로 죽음에 처하게 된다. 독같은 한 분 그리스도에게 소속된 사람은 自動的으로 구원을 받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世上에 태아날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아담에게 所屬되어 있다. 다 아담에게 所屬되어 죽게 되엇는데 그리스도에게 所屬된 자는 구원해 준다고 하는데 소속된 사람이 自動的으로 된 사람이 아무도 없다. 方法은 아담의 後孫이 그리스도의 후손이 되기 위해서는 豪族을 옮겨와야 한다. 호적을 바꾸어야 한다. 아담의 戶籍에 들어 잇는 나를 파내서 그리스도의 戶籍으로 가지고 와야 그것을 믿음이다. 入養, 養子로 받았다고 한다. 아담의 나라에서 國籍을 말소해 버리고 그리스도의 나라의 국적, 市民權을 새로 받아야 한다. ==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간다. 우리는 들어가야 한다. 天國에 들어 간다. 내가 天國百姓이 되었다는 것은 내 王을 바꿈이다. 이담왕에서 그리스도가 왕되는 것을 入國이라고 말하고 그 過程을 믿음으로 說明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은 내 적을 완전히 옮겨라는 것이다. 戶籍을 옮길 때 따르는 問題는 王으로, 主로, 아버지로, 남편으로 모셔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예증 1. 에수님을 빋기만 하면 됩니다. 2. 예수님을 믿으면 호적을 옮겨야 합니다. 김00라면, 예수00, 그리스도00로 바꾸십시오. 아주 가볍게 자기 戶籍을 그냥 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데 아니다. 당신 호적을 파내야 한다. 이제는 남편, 아내, 자식, 부모님도 당신하고는 관계가 없다. 당신은 새로운 남편과, 主人,王을 모시기 때문에 완전히 호적을 바꾸어야 한다. 記錄關係를 끊어십시오 라고 ㅏ해야 한다. 그것을 분명히 해야 믿음에 들어가는데 그냥 이것, 저것 다 해서 韓國사람, 美國사람의 市民權 얻어 韓國을 우습게 한다. 世上나라에 속한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모르고 내버려 두는데 하나님의 나라 槪念은 왔다 갔다 못하게 한다. 그래서 구렁이 있어서 못넘어 간다고 한다. 이 소속은 왔다 갔다하는 소속이 아니다. 소속을 분명히 해야 한다. 3-4절을 5:1-11에서 整理하고, 1:- 5:11을 整理한 것이 5:12-23이다. 그 내용은 代表의 原理 때문이다. 이 代表原理 안에서 칭의의 原理가 있기 때문에ㅐ 대표원리가 분명하지 않으면 칭의의 원리도 확실치 않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도 그 代表原理에 속하기 때문이다. 소속, 내 적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決定이 되어야 한다. 회개 = 지난 호적을 버리는 것. 믿음 = 새 호적을 갖는 것이다.
제 6 장 연구
1.나는 아담의 후손이었으나 예수님께로 와ㅏ서 그 분에게 내 생애를 맡겨 소속시킨 이후로 그 많은 죄가 다 용서되고 의인으로 간주되고 영원한 생명과 풍성한 선물을 받아 누리게 되엇습니다. 그리고 죄를 범하드라도 여전히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의인이며 정죄받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죄를 지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어쩌면 죄용서의축복을 계속 더 많이 멈ㅅ보기 위해서도 죄르 ㄹ계속 지을 수 있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아담 안에 잇는 것이 불행인 줄 알고 거기에서 건져냄을 받로(죄에 대하여 죽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고, 하나님과의 ㅏ새로운 관계(생명)를 누리고 있는데 어떻게 아담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가? 결국 그럴 수 었다. 나는 지난날의 내 생애를 그리스도와함께 십자가에 처형해서 죽었습니다 나는 이제 새로운 사람입니다. 지난날의 재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렇게 고백하고 잇습니까? 아니면 계속 아담 안에 있으렵니까? 만일 위의 고백에 사실 그대로 동의한다면 그대로 처신하고 잇습니까? 혹 위와 같은 고백과 같은 소원을 가질 때도 잇지만 반대의 소원도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어느 점이 아닙니까? 만일 위의 고백에사실 그대로 동의한다면 그대로 처신 하고 잇습니까? 혹 위와 같은 고백과 같은 소원을 가질 떄도 잇지만 반대의 소원도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까? 아니면 또 무엇 때문입니까?
2. 혹 여러분은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까? 물세례는 받앗지만 쩐혀 의미도 모르고 세례를 받앗습니까? 먼저 마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으십시오. 이를 성령세례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물세례를 받으십시오. 물세례는 받앗고 그 때는 세례의 의미를 몰랏으나 지금은 례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위의고백에 전적으로 동의 한다면 물세례는 다시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3. 예수와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될 때 예수님에게 소속됨과 동시에 과거의 소속인 아담 家門과 사단의 나라 國籍과 그들에게 속해 살던 지난날으 나 자신(옛사람)이 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 처리되었고 (처형되어 죽어 장사지냈고) 다시 그리스도의 復活에 聯合하여 새로 살아났다고(부활했다) 간주되는 것입니다. 즉 이와 꼿같은 혜택과 효력을 누리고 있다는 ㅏ말입니다. 5:12-21에서 배운 “그 代表者”에게 소속된 內容을 새로 설명하고 잇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에 수긍이 갑니까? 물론 이직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 잇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직 옛사람이 남아있고 죄를 계속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문제는 7:-8:에서 더 알아 보겠습니다. 다만 적어도 내가 예수를 믿을 때 예수님께 소속되었고 예수님의 十字架와 부활이 바로 나 자신의 십자가와 부활고 꼭 같은 사건이 된 것을(대표의 원리에서) 確信해야 합니다. 問題는 내가 그리스도에게로 所屬을 옮겼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그리도와 함께 받은 변화 (6:1-11절) ??? 내 안에 일어나는 變化?????????? ????????????????????????????????????? 本文理解 1. 1절은 어던 質問입니까? 이 質問은 왜 하게 되엇는가?(5:20-21참조) 2. 2 Ans는 무엇입니까? 2절 : 3. 우리는 언제 罪에 대하여 죽엇는가? 3-4절 : 4. 우리는 세례받을 대 무슨 의미로 알고 받앗는가? 5. 세례란 무었인가? 세례의 의식은? 마3:16 행8:36-39 행2:41, 9:18-19 행10:47-48 마28:19 6. 우리가 세례받을 대에 무엇과 합하여(연합하여) 세례 받는다고 했는가? 3절: 4절: 7. 세례를 받는 목적은? 46절: 5절: 6-7절: 8.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말은 무엇이 죽엇다는 말인가? 6절: 11절: 9. 우리가 이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후 다시 그와 함께 살아났다고 했는데, 그래서 어ㄸ떤 變化가 일어 났습니까? 4절: 7절: 9절: 10-11절: 10. “죄에 거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 理由는 무엇인가?
6:1-23절 罪의 사슬로부터의 自由
序論 1:-3: 罪論, 3:19-5:23 稱義論, 6:-8: 聖禾論 성화론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는 目的은 거룩한 자녀로 삼으시려는 것이 目的이다. 그 目的達成을 위한 過程에여러가지 방법이 動員된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서 오시고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부활하시고, 그런 그리스도ㅢ 구속사건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한 첫번재 基礎作業 = 근거 마련하는 것이고 基本的變化이다. 건져낸 다음에는 비로써 거룩한 자녀로 養育해 가서 실제로 이상적인 자녀로 만들어 가시는데 목적이 있다. =성장해 가는 過程을 聖禾라고 한다. 거룩하게 되어져간다. = 주님의 자녀로 養育해 간다. = 그원을 이루어 간다. = 구원을 완성시킨다. 영화롭게 해 간다. 이 긴 課程이 다 끝나야 구원이 끝난다.
성화론의 첫번째 단계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죄에서 해방받는 사실을 설명함 1-2절 : <읽음> 5: 끝에서 그리스도 한 사람이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햇기 대문애ㅔ 그 분 한 사람의 형벌이 우리 모두의 형벌이 되고 그 분 한사람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된다는 代表原理를 說明했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우리가 죄가 굉장히 만ㄴㅎ았는데 그분의 義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가 그 분 앞에서 용서받는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는 부분을 설명햇기에 거기에 대한 逆說的인 質問 “그렇다면 우리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훻씬 더 많이 짓고 더 많이 용서 받으면 좋지 않겠느냐”는 逆說的인 質問을 바울이 하고나서 解答을 준다. 2절: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그리스도를 만나기 前에는 많이 지엇건 적게 지었건 그것은 그 때의 이야기인데 그리스도를 만나서 은혜를 입고 보니까 내 죄가 큰만큼 그리스도의 은혜가 크그나고 꺠달은 후(구원을 받은 후) 이제는 다시 죄를 좀 더 지어서 이 은혜가 크지면 어떨까?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다. 이미 죄가운데 건짐을 받았는데 다시 들어가서 그렇게 할 必要가 있는가 이다. 質問 =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3절 이하에서 그 뜻을 찿아 볼 수 있다. 특별히 10,11절에서 잘 나온다. ♣해설 : 죄에 죽었다는 것은 죄 가운데 살고 있고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것이지만 (내가 나 자신의고집대로 행하고 하나님을 버렸기 대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앗기 ㅏ때문에 하나님의 관계에서 볼때 나는 죽은 자가 된다는 것이다. = 죄에 ㅏ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정반대의 의미이다. 내 고집대로 행하던 自我에 대하여 죽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ㅏ관계에서 볼 대 살아나는 槪念이다. 즉 하나님과의 關係가 끊어지는 것을 罪라고 한다. 그것은 죄로 죽었다고 한다. 이것은 自己 中心的인 삶 때문에 끊겨진 것이기 때문에 죄 때문에 죽었다. 죄로 죽었다고 表現한다. 다시 罪와의 關係가 끊어지고 - 내 마음대로 하던 自我를 죽여 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回復하는 것을 “죄에 대하여 죽엇다”라고 表現한다. Q) 그럼 어떻게 罪에 대하여 죽을 수 잇을까? (自己自身의 죽음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해설 :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그리스도가 죄의 刑罰을 받고 북을 대 우리도 함꼐 刑罰을 받고 죽게 된다는 原理이다. 5:12-21의 代表原理와 連帶性의 適用原理에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聯合해서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살아난 것처럼 설명되었기 때문에 罪에 대하여 죽는다느 ㄴㄴ그말은 그리스도와 聯合할 때 일어나는 事實이다. 3절 : 무릇 그리스도와 합하여 洗禮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洗禮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세례받을 때 혼자 받았는가. 예수님과 함께 셀례 받았는가? 예수님과 함게 받으신 분들은 손을 들어보시오. 침례교에는 물 속에 들어가고, 장로교에서는 머리에 물만 찍어 얹는 ( )세례 ◈세례 받을 때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의미가 없으면 세례는 마루 의미가 없다. 나 혼자 세례 받는 것, 물 속에 들어갓다 나온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목욕하는 것이요 물 찍어 바르는 것이다. 세례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홀하심에 동참한다는 개념이기 때문에 물 속에 들어갈 때, 물을 뿌릴 떄 -- 그리스도와 함꼐 물에 들어갔다 나오고, 그리스도와 함께 물세례를 받아야 한다. 즉 5:12-13 그리스도가 대표자이기 떄문이다 Q) 예수와 합하여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구약 때 예표 3 가지 1.벧전 3:20-21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자가 겨우 멏명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시 굳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거을 제하여ㅛ 버림이 아니오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홍수 때 노아의 가족이 살아 남은 방편은? 방주(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물로 말미암아 --물은 구원의 표니 곧 세례라. 물을 강조하는데 어떤 의미로 하는가? ◇물은 비가 네리고 홍수가 내려서 모든 사람이 물에 훕쓸려서 물에 다 잠겨 죽었다. 다 죽은 줄 았았는데 땅에 물ㄹ이 줄고 땅에 갈아앉고 보니까 방ㅈ가 남고 그 속에 8명이 있었다. 이 사건을 통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방주--유월절---구원의 표는 맞다. --는 노아홍수 때 사건은 물에 들어 갔다가 나온 것과 마찬가지다. --는 홍수 이전에 살던 노아의 가족은 옛사람이고 (하나님이 홍수 때 삼판으로 다 죽이고) 심판 후 다시 부홍하는 것처럼 다시 8명이 태어남을 살아났다. --는 이것은 옛 사람이 아니고 딴 사람이다. 죽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 하나님을 찿아가는 것으로 바뀐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미암은 부활의 표다. 십자가 = 형벌 부활 = 다시 태어나는 것. 2. 골2:11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체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함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앗느니라. --노아 ㅒㄸ 사건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명하는 하나의 모형이고 두번째 중요한 모형은 아브라함 때 주어진 할례의 모형이다. =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심을 빋음으로 얻는다는 설명을 하기전에 할례의 예를 든다. 할례에서도 어린아이의 양피(겉껍질)를 잘라내어 속살이 자리게 하는 의료행위에서 구속, 곧 재창조으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잇다. 3. 고전 10:1-10절 우리 ㅈ상들이 다 구름아래 잇고 바다 가운에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게례를 받고.
이 3가지 예표를 주시고 新約時代에는 洗禮制度를 주셨는데 세례의 의미를 찾아 보자. 6:3절 : 예수 그리스도의죽으심에 동참했다는 것이 --세례에서 물 속에 쑥 들어갔다가 장사된 것과 같다는 애기다. 6:4절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그와함께 장사되었나니--장례식을 다 치루엇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내 옛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이 없이 세례를 받은 것은 세례를 잘못 받은 것이다. ♣적용 1. 나는 00교회에 등록교인입니다는 의미로 세례를 받은 분은 잘못받은 것이고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다교 세례를 두번 받을 必要는 없지만, 마음 속으로라도 새로 세례를 받고, 그래도 걸리면 세례를 다시 받으라. 2. 장로교나 감리교처럼 물만 찍어 발라서 하는 것이 의미가 살아나지 않고 시원치 않으니까 침례교에 가서 침레 받든지, 장로교에서도 목사님! 우리 여럿이 침례식 다시 해 달라해서 받으라. ◇세례를 받을 때 = 하나님! 옛날 고집 부리던 000(내 이름)는 죽었습니다. 하고 물로 쑥 들어가라. 밖으로 나올 때는 --하나님! 이제 엣날 000가 아니라 새로운 000입니다. 하고 쑥 올라오십시오. 그것이 세례의 의미입니다. 4절b :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 . --生命이 딴 生命이 된다. 새생명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같이 죽었으면 같이 살아날 것이다. 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게 십자가에 뭇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절 :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밧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엇음이니라. --죽엇으니까 罪의 問題가 처리되었다. 8절 : 만일 우리가 그르스도와 함께 죽엇으면 또한 그와함께 살 줄을 믿노니.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으면 부활할 수 없다.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만, 함께 부활할 수 있다. 9절 :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셧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랄 줄을 앎이로다. 10절 : 그이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11절 :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에 ㅏ대하여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自己自身에 대하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 자기는 죽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回復하라. 산자로 여길지어다.
♧洗禮의 原理整理♧ 우리는 罪를 범하고 살앗다. 앞에서 칭의의 原理가 나타낫다. 罪人이엇는데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죽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지만 예수의 십자가에 못박혀 내 代表로 죽으심으로 나도 그리스도 안에 믿음으로 소속된 한 일원이 되어서(한 家族이) 의롭다함을 나도 받앗다. 그 말을 具體的으로 說明하면 내가 그리스도를 내 代表者로 모셔서 그 분에게 한 멤버로 (지체로) 소속될 때부터 그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刑罰을 받으신 사실이 바로 나(000) 자신이 刑罰받은 事實과 똑같의 處理된 것이다. 그러면 대두되는 問題는 내가 예수 믿기 전에 저지른 많은 죄가 잇다. 그 죄 대문에 나는 죽어야 하는데 --영원히 地獄가고 영원히 하나님께 버림받아야 하는데 --그 刑罰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ㅏ받으셧기 때문에 나도 형벌을 받은 격이 되니끼 과거에 지은 罪에 ㅏ대해서 신경 쓸 必要가 없다. * 내가 과거에 지은 죄를 예수께서 그냥 덮어서 넘어가느 나것이 아니고, 내가 과거에 지은 죄는 하나님꼐서 엄격한 刑罰을 받아서 십자가에 處刑되엇다. 우리의죄는 그냥 없어진 것이 아니고 刑罰을 받아서 없어진 것을 기억해야 한다. 實在로는 내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지만 예수님의십자가의 同參해서 함ㄲ게 죽은 것으로 틀림없이 合法的으로 내가 看做(간주)해야 한다. ※실제적인 문제와 外的인 問題와의 차이는 말로는 예수님께서 十字架에 못박힐 떄 나도 함께 刑罰받고 處刑되어 死刑執行을 받앗다라고 말하면서 실재로는 000(내)나는 전혀 죽지 않고 옛사람이 그대로 살아 잇다면 그것은 거젓말이다. 그래서 洗禮를 받을 때 分明히 생각을 하고 洗禮를 받아야 한다. 예수님 나는 이제부터 에수님에게 속하겟습니다. . 내 옛사람은 完全히 다 죽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힐 ㅒㄸ 나도 함께 죽게해 주십시요, 물론 연대는 2000년 대에 떨어져 잇지만 그렇게 ㅏ해서 그리스도에게 나를 ㄹ소속시킴괴 동시에 믿음과함께 나는 옛사람은 나를 完全히 死刑執行해서 죽여버려야 한다.(이론적으로, 실제적으로) 그 후 또 다시 내가 살아나는 것이 등장을 하지만 基本的인 것이 分明하면 항상 예수님 나는 죽은 사람입니다. 나는 아닙니다. 그렇게 자기를 否認하고 들어야 된다느 ㄴ것은 항상 긍정하게 된다. 實在로 내가 완전히 죽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ㅏ내가 다시 또 살아나서 내 고집을 부리는 일이 여러차례 반복되는 일이 잇을 지라도 그것은 내가 약해서 순간 순간적으로 하는것 뿐이지 실재로는 내가 自我를 살려 놓고 잇는 것은 아니가. 그래서 萬一 예수께서 “아니 너! 죽은 네가 왜 또 살아낫느냐고 하면 아! 잘못햇습닏. 제가 죽어야 지 이렇게 반응이 나오는 것은 正常이지만, 왜 내가 죽어요, 이렇게 자기를 다시 살리고 고집을 부리고 대어드는 사람은 그것은 아직 엣사람이 ㅇ죽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믿음과상관이 없는 사럼입니다. 적어도 믿음을 고백한 사람은 세례를 告白한 사람은 순간순간으로 자기가 머리를 들고 일어나는 한이 잇더라도 基本的으로는 나는 죽엇다고 생각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기본자세는 동의를 ㅏ해야 한다. 그것을 同意를 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거기까지 와야 믿음이 正常的이다. 그래서 과거의 내 잘못은 어떠한 잘못을 범했드라도 死刑執行을 받았기 때문에 --최고의 형으로--그것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가하신 刑罰을 다 주어졌기 때문에 끝났다는 셩각을 확실히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크리스챤이 되 이후 나는 형벌받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예수 믿은 후에 또 형벌을 받고 또 형벌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면 안된다. 형벌은 이미 十字架에서 다 처리되었다. 형벌은 이미 받은 것이. 아무리 예수님을 믿지만 과거에 ㅏ내가 사람을 줄였는데 이 설인죄가 ㅏ어덯게 없어질까? 살인죄든 사람을 몇명을 죽였건 그 죄는 이미 사형언도를 받아서 사형접행을 받아서 형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스시스도의 십자가가 실제적으로 나에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 그냥 막연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는데 그거와서 꿇어 업드리어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한다고 해서 내 살인죄가 없어진다고 그렇게 가볍게 성경에는 說明되어 잇지가 않다. 그 분이 나를 대신해서 대표로 죽으신 것도 설명했지만 그 대신하고 대표한다는 이야기는 내가 Member를 분명히 가입을 하고 세례를 받고 연합을 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그 분의 형벌이 바로 나의 형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에수님의십자가가 굉장히 나의 아픔으로 와야 한다. 우리가 00교인이 되었는데 00교회가 피해를 입으면 같이 피해를 느껴야 되지 목사가 있어서 피해를 입거나 말거나, 밤에 잠을 못자고 고민하거나 나ㅗ와는 상관이 없다는 사람은 00우리 교회 교인이 아니죠. 대한민국이 외채가 많아서 경제가 빚더미에 넘어가서나 말거나 누가 갚는 사람이 잇거나 재벌이 갚거나 정부가 하겠지, 나는 졸개 국만에 불과한데 나는 무슨 상관이 잇느냐? 그헌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가. 그 부채를 같이 의식하고 괴로워하고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가정에도 마찬가지이다. 가족의 부모, 형지가 아프고 고민하면 같이 아프고 고민해야기 나는 나고 어머니는 어머니고 아버지는 아버지라고 하면 가족이 아니다. 연대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개인주의가 발전하니까 그런것이 희박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르시도와 나와의 관계는 그것이 철저하게 맺어져야 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것은 바로 내 죄 떄문에 처형되 것을 생각하면서 그 때 내가 사형집행받는 쓰라림을 내가 의식할 수 잇어야 한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은 다시 형벌받을 것을 염려할 必要가 없는것이다. 과거의 죄에 대하여 일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깨끗히 형벌받고 탕감된 것이다. 내 죄는 다 끝났다. 나는 댓가를 다 치루었다고 분명히 생각을 하고 새롭게 죄책에 빠지거나 새롭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고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죽음으로 예수님이 끝났으면 問題가 아주 복잡해 지겠는데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復活시키셨다.예수를 하나님이 첫열매로 부활하셧기 떄문에 우리 모두를 자기에게 포함시켜서 부홀했다는 설명이 聖經 여러 곳에서 나오고 여기에서도 다시 나온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에게 나를 소속을 시켰으면 십자가서 고통만 같이 받은 섯이 아니라 부활의 榮光도 함꼐 이미 누리는 자이기 때문에 나는 다시 살아났다. 나는 부활했다는 환희의 즐거움과찬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확실해야 한다. 나는 옛사람이 아니고 새사람이다. 옛날의 000가 아니고 새로운 00이 되었다는 것이 분명해야 한다. 그것을 가르켜서 중생이라고 表現한다. 그리고 구원받았다고 表現한다.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설리셨도다. 2절: 그 떄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군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사탄이다-- 3절 : 전에는 우리도 다 ㅏ그 가운데서 우리 ①육체의욕심을 따라 지내며 ②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震怒의 子女이었더니 4절 : 긍휼에 豊盛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람하신 그 큰 사람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꼐 살리셨고 (너희가 恩惠로 救援을 얻은 것이라) 6절 :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옛 사람, 새 사람에 대하여??????? ????????????????????????????????????? 전에는 ①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냈다. ②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했다고 말한다. 옛 사람 / 새 사람에 대해서 감을 잡지 못하면 항상 問題가 생긴다. ♧옛 사람 : 자기 욕심대로 살던 自我 하나님이 원하는대로 아니고 내 좋은대로 이기적으로 자기 중심적, 자기 욕심에 빠져 살던 그 옛 모습을 옛 사람이라고 한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집자가에 죽은 것이다. ♧새 생명 : 고후5:14-17 <윤종하 로마서 p.291 참조> 15절 : 산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다시 사신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 17절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잇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 롬14:7-9 <p.259 참조> -- 이 내용은 자기를 위해서 잘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죽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고 죽는 것. 그 상반된 모습이 옛 사람 / 새 사람의 모습이다. 엡4: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 ??옛 사람의 모습 18절 : 저희의 총명이 어드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새아명에서 떠나 있도다. 19절 : 저희가 감각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 <옛사람의 이야기이다. > 20절-24절까지 <읽고난 후> --여기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을 대조적으로 說明하고 있다. 갈2: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꼐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이제는 살아도 원래의 나느 ㄴ죽었고 내 속에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리스도가 사신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새롭게 사는 것 뿐이다. Q) 그리스도와 함꼐 죽고 그리스도와 함꼐 살아났다면 自我는 어떻게 될까요? 自我는 없어 질까요? 만약 自我가 그냥 있다면 무엇이 달라지는 것일까요. 보조질문) 佛敎의 自我否定과 聖經의 自己否定의 차이는 무엇인가?
♧罪論에서 하나님꼐서 人間을 지으실 때 인격체로 지으셨다.사람을 사람으로 지으셨다.(생각하고, 느끼고,자기의 의지에 따라서 경단하고 選擇하고 行動할 인간(인격)으로 만들었다. 人格體는 : 독자적으로 어떤 것을 생각하고 살피고 硏究하고 해서 자기 나름대로 決定하고 行動할 자유를 갖고 있다. 드른 動物들은 本能的으로 움직이지 사고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은 갖난 애기는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사람은 교육을 받으면서 人格이 서서히 養育되어 가면서 비로서 自我에 대한 槪念이 생기고 자기가 스스로 자기 問題를 푸는 人格體로 자라간다. 그래소 人格이라고 한다. 그 인격이 하나님이라는 創造主이신 안격체에 대해서 대면해서 이 하나님을 좋은 관계로 만들 수도, 이 하나님을 나쁘게 만들 수도 있는 그런 兩者選擇의 立場에 인간이 서 있다. 이 인격이 하나님의 인격에 ㅏ대하여 순하게 좋게 나타나고 하나님이 나에게 지시할 때 그 분의 생각이 타당하고 正當하다고 認定하고 잘 따라가면 그것을 하나님이 善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의지시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그것은 하나님 나는 그것이 싫습니다. 나는 내가 좋은데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내가 볼 때는 왜 罪이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볼 떄는 그것을 지라고 한다. 즉 너는 내가 만들었고 너는 나하고의 관계 때문에 만들었는데 너 마음데로 한다면 내가 왜 너를만들었느냐? 너는 나ㅔ 대하여 罪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自己 中心的으로 사는 것이 자기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지도 마르지만 하나님꼐 대하여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 관계를 죄라고 설명했다면, 다시 하나님이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했다면 이 인간이 이제느 ㄴ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 당신에게 順從하겠습니다 라고 ㅏ해서 하나님이란 인격체에 대해서 順從하겠다는 쪽으로 決定을 내리고 행동을 取할 때 이것을 善이라고 부르고 믿음이라고 부른다. 점점 거룩산 子女로 자라간다고 表現한다. 問題는 人格體(自我)인 나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기를 “너 마음데로 하던 예 사람을 벗어버리라는 말을 예수님은 다른 표현으로 자아를 否定하라고 하셨다. 내 고집을 버리라느 ㄴ말과 類似한데도 自我를 버리라는 것은 어떤 의믄점이 ㅏ생긴다. Q) 그럼 인간의 인격을 버려서 비 인격이 되라느 ㄴ말인가? --하나님이 하라는 데로 생각돠하지 않고 무조건 맹종하는 기계퍼럼, 로버트처럼 비인격체가 되라는 말인가? Q) 여전히 인격적인 存在가 되라는 말인가? 自我를 否定하라. 자기를 죽이라고 하면 나는 없어져 버린다. 실재로 내 몸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인격을 죽이라고 --자기를 죽이라고 했으니까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가? 예증 불교에서는 자아부정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불교의 자아부정은 열반의세계에 들어 간다고 한다불교에서 욕심이 問題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욕심은 어떻게 해서 없어지는가? -- 자신을 생각하는 한 욕심은 없어지지 않는다. 욕심은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 욕심이니까. 불교에서 아애 無我地境에 들어 가러나 汚辱七情을 끊고 망창하게 植物人間이 되라는 것이다. 그해야만 無我地境에 들어가는 것이다. 누가 떄리거나 푹 찔러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돈을 뭉쳐가도 Pride도 아무것도 없는 狀態를 말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인격체로 創造하신 후에 인격을 버리라고 要求하시지 않는다. 인격을 버리라고 한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하나님게서 創造하실 떄 비 인격체로 만들어 놓으면서 번죄할 이유도 없이 간단하다. 인격체로 만드신 후 죄를 범함 여부를 따지시는 하나님이 자기를 버려라. 무아지경에 들라가라고 한다면 처음부터 로버트를 만드시지 무엇때문에 인간을 만드셨을까?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후에 아무리해도 안되니까 ”내가 심히 후회한다“는 말이 성경에 나오니까 이제는 비인격체로 만들어라. 무조건 맹종해라, 무조건 믿으시오, 묻고, 따지고 하면 기도교는 무조건 믿는 것입니다. 그럼 멍청하게 아.예. 예. 그렇게 하라는 말이냐 그것은 아니다. 여기서 분명한 이해가 가능하면 문제는 다 풀린다. 자아를 버리라고 한다교 해서 인격이 없어지는 말도, 자아가 없어지는 말도 결코 아니다. 자아는 생생하게 살아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햇는지를 자기가 判斷해야 하다. 하나님이 나에게 설명을 充分히 해 주십니다, 이것이 이것이 잘못이다 그것을 내가 충분히 깨달아야하고 그 꺠달은 부분을 내가 修整헤야 하는데 주정하기 위해서 자기를 버리라는 말은 인격이 없어지거나 무아지경에 들어가라는 말이 아니다. 새생하게 자아가 있어야 한다. 인격적으로 다시 하나님 제가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順從하겠습니다.라는 決定을 해야하고 順從할 意志를 나타내야 하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또 하나님이 나에게 要求하신 內容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느끼고 判斷해서 따르겠다고 告白하는 것은 人格 즉 自我이다. 그러면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가? 이야기는 간단하다. 나라는 인격이 있는데 이 자아를 전에는 나 혼자 내 마음데로 支配를 했다. --내가 王이고 내가 百姓이고 나 혼자서 주물럭 주물럭 다 해왔다. 그렇게 하나님이 나에게 登場하셔서 ”안된다. 그렇게 하지말고 너는 내가 시키는데로 해라“ 라는 말씀하실 때 그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을 나의 主人을 모셔들임으로써 자아가 있는 바탕 위에 ㅅ로운 主人을 모셔들임으로써 자아가 새로운 인격체이신 그리스도와 對話를 나누면서(交際하면서) 그 분의 意思를 決定하는데 主人을 한 분 모셔서 그 분의 意思를 따라서 決定한다. 이것은 盲目的이 아니다. 그 분의 指示를 듣고, 아 알겠씁니다.라고 하고 내가 기쁜 마음으로 行動해 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을 非人格體로 다루시지 않고 인격체로써 계속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와서 交際하시기를 원하신다. 基本的으로는 變化가 없는데 변화했다는 것은 내 인격을 내가 支配를 했는데 앞으로 는 내 인격을 내 마음데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사를 듣고 그 분의 意思를 尊重해서 決定을 내가 하고 따라가는 것을 새 사람이라고 한다. 이것이 이해 되지 않으면 重生이라는데 가서 問題가 생긴다. ”당신 重生했습니까? 구원받았습니까? 하면 무슨 神秘스러운 이야기 같고 무엇이 중생인지 내가 敎會는 나가는데 물론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 무엇이 중생이냐? 새 사람이 무었이냐는 생각이 일어날지 모른다. 새 사람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영어로는 Lordship(主在權)을 잘 理解하면 問題는 解決된다. 누가 나를 支配하느냐? 實在로는 롬1:에서 배운델 ㅗ 인간이 아무에게서 도움도 간섭도 받지 않고 나 스스로 獨自的으로 어떤 일을 行事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것은 아니다. 사람은 社會的인 存在하는 말을 어떻게 理解할지 모르나 사람은 혼자서 완전히 客觀性있게 決定할 能力을 가진 存在는 아니다. 예증 가끔 설교 때 모션을 쓰는데 이것을 반대로는 하지 않는다. 이리 오라는 것은 항상 (손가락질 자기 앞으로)... 표시한다. 사람은 자유롭게 行動하는 것 같지만 자기 안에 이미 굳어져 있는 性格(人格)이 形成되어 있다. 자기 나름대로 判斷해서 行動할 때 자유 자제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자기가 하는데로 행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저 친구는 性味가 급하다” 이렇게 表現하면 그 친구는 항상 급하게 決定한다. 천천히 하지않고 항상 빨리 결정하고 서두른다. “저 친구는 性格이 느리다고 하면 스는 항상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겨렂ㅇ한다. 이것은 자유로워서 그런 것이 아니고 자기 안에 있는 성격에 묶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천성적이나 후천적으로 여러 文化 속에에서 살아 오면서 자기의 성격이 形成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人品이라는 것은 客觀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ㅇ러가지 여건에 의해서 形成되어 온 것이다. 形成되어 왔다는 것은? 누군가가 내 人品을 지배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누가 支配하는가? 어디서 影響을 받았든지 간에 거기서 가장 重要한 구실을 하는것이 자기였는데 내가 결정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이란 분이-- 강한 분이--등장해서 ”너는 앞으로 네 마음데로 決定하지말고 내가 원하는데로 좀 걸졍하라“고 도전해 오신다. 그것을 이제는 ”네“ 이제는 제가 결정을 할 때에 제 마음데로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격의 영향을 받아서 그분의 결정(指示)을 듣고 결정하겠다고 내 인격의 새로운 方向을 잡아 주는 것을 말한다. 예증 부부 결혼할 때 결혼 전의 개성시대 결혼하고나면 달라진다. 여보! 당신 의 양버시대가 결혼 후에는 결정권이 남편에게 간다. 결혼 전 남편과 아내의 인격이 결혼 후 남편의인격에 아내의인격이 콘트롤 받는다. 그리스도와 만난날 부터 처음에는 그 분과 씨름도고 싸움도 해 왔는데 신혼 초에 막 싸우다가 안되니까 딱 가만두는 사람이 있듯이 그리스도에게 결국은 服從하기로 決心하고 순좋ㅇ 하는 자세에 갔을 때 그것을 가리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니를 따르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크리스챤이 된다. 이것이 重生이다. 개성이 죽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부인이 굽실 굽실 된다고 해서 자아가 없는 것이(로보트가 된 것이) 아니다.
12-14절 : --을 읽고 나서--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는 내 자아가 내 자신을 支配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이것이 새 사람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나를 支配하지 않고 내 욕심을 버리면 무구에게 순종하라는 말이냐? -13절에 하나님꼐 너희 자신을 드리라는 것이다.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드리라. 14절에는 너 자신이 이제는 너를 주장하면 안된다. 15절 : 그런즉 어찌하리오 우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오 그럴 수 없느니라. --하나님꼐서 은혜를 베푸시고 용서하신다고 하니 내 마음대로하고 내 고집을 부려도 되느냐? 그럴 수 없다. 16절 :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빋은 자의 종이 ㅣ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복종에 따라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으르고 順從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자기 욕심대로 계속해서 하다가 죽음에 이르른 사람도 있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하나님게 순종하여 義의 이르는 수가 있다. 17절 : 하나님게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었더니 --본래 너는 너 마음대로하여 너희에게 잔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절 : 죄에게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 자신에세서 벗어나서(잘못 생각하는 自我에서)하나니몎 종이 되었다. 19절 : 너희 지체가 연약하므로 낸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否定과 不法에 드려 거룩함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20절 :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義에 대하여 自由하였느니라. --너희가 원하는 대로 너의 종이 되었을 떄에는 하나님께 대하여는 자유핟. --하나님의 간섭받지 않았으므로 -- 21절 : 너희가 그 ㅒㄸ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ㄹ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혜택도 받지 못하니까 죽음으로 끝난 부끄러움이 있다. 22절 :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엇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니라. 너희는 잉제 너 自身에게서는 解放되고 --너 자신--욕심에 이끄려서 --떄로는 자신이 열미울 정도로 자기를 못이기는 --그런 자기에게서 解放되어서 하나님께 종이 됨 23절 : 죄의 삯은 死亡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主안에 있는 永生이니라.
♣ 基本的인 整理 노에로 있다가 해방된 것이 自由人이 된 것이 아니고 새로운 상전의 노예가 된다는 것을 미리 말했다. 여기서도 다시 整理된다. 즉 내가 나를 支配하고 --내 욕심--내 개성에 끌려 다닐 때 나를 보면 짜증스럽고 나 자신이 얄밉다. 그 후 내가 그리스도 때문에 거기서 건져냄을 받고 새 사람이 되었을 때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상전으로 모신 하나님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꼐서 시키신 대로 따라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다니다 보니까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사람이 된다. 이런 意味에서 나는 장인이 아니고 종이다. “나 구원받았어” 죄사슬 다 끊어지고 구원받았네 풀어진 것이 아니다. 한 쪽만 강조하면(罪의 사슬에서 풀어진 것) 안된다. --내가 나에게서 풀어겼으니 나에게서는 얽매임에 벗어났는데 하나님이란 상전에게 단단히 얽매여 진 것이다. 앞으로 노래할 때는 “나는 자유함에서 얽매여 젔네”하자 이것은 아주 重要한 思想이니 자유를 함부로 구사하지 않아야 한다. 自由人이 되는 것은 위험하다. 나느 ㄴ자유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비로써 나에게 榮光(永生)의 祝福이 오는 것이다. 聖經에서는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라고 말슴하신다. 하나님의 노예이다. 노예生活의 방법은 7:에 나온다. 옛 사람이 되고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행하던 자유분방하다 내가 하나님이란 상전을 만나고 너무 훌륭한 그 분에게 얽매여서 꼼짝 ㅅ하고 그 분으 지시를 따라가는 存在로 바뀐다. 단서조항 = 내가 싫은데 억지로 코를 꿰어서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에게 說明하고 사람으로 勸勉해서 깨닭고 기쁜 마음으로 이것이 참 길이다. 내가 나를 극복하면서도 따라가야 하는 ㄴ길이라고 생각하고 自我가 스스로 決定하고 걸어가기 대문에 자아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存在하는데 다만 자유분방하던 자아가 죽어버리는 것 뿐이다. 그것을 자기를 否認하는 말에 不過하다.
제 7 장 연구
율법과 나와의 관계
1. 우리는 어떻게 해서 율법에서 벗어났는가? 2.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다는 말은 어떤 뜻인가? 율법이 죽었는가? 내가 죽었는가? 3. 4절에는 그리스도에게로 가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한다고 했는데 죽 은 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4. 영의 새로운 것과 의문의 묵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꼐서 율법에 의하여 정죄를 받으사 율법의 요구대로 處刑되었다. 그래서 우리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이제 우리는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었다. 그 대신 그리스도의 아내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이제는 율법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다. 6절을 보라.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실까 잘 생각해야 한다. 율법을 주실 떄는 하나님의 참 意圖가 있다. 그 意圖를 기꺼이 따르도록 해야 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意圖에 대하여 關心이 잇는가? 關心이 있다면 그 뜻을 알기 위하여 努力해야 한다. 努力하고 있는가? 어떻게? 關心이 있다면 聖經을 읽고 黙想할 때 깨닭게 된다.
7:1-13절 律法으로부터의 解放
???1-6절 律法과 나와의 關係 (내 안의 變化)?????????? ????????????????????????????????????????????????????? 序論 1:-3: 죄론 그리스도의 구속 칭의 4: 믿음을 다룸 5: 그리스도의 代表原理를 다룸 6: 우리 안에 일어나는 變化 남편???????????? 아내 律法????????????? 우리(나) ??? ??? 죽음 자유로움 죽음 ?? ?? 다른 이에게로 감 다시 살아나서 다른 이에게 감 * 율법이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는다. 1-3장 : 罪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끈ㄹ어진 것을 하나님과 獨立해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 죄는 다시 해방시켜서 구원해 준다는 말은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중심대로사는 사람을 다시 하나님과 聯關시켜 주는 것을 말한다. 4:1- :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보내사 구속사건을 일으키시고 구속을 받은 우리에게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버리고 다시 하나님께로 동아오는 믿음의 행위가 무엇인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 하나님께 대한 이해와 신뢰가 必要한 부분을 4:에서 설명했다. 5:1- 에서는 하나님과의 화해문제에 ㅏ대한 설명을 했다. 6:1- 에서는 그리스도의 十字架사건이 나에게 십자가의 意味를 가져오기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꼐 죽어야 한다(자기 고집, 자기 주장을 포기하고 그리스도에게 服從하는 새로운 自我가 되어야 한다.) 내가 나를 지배했던 삶(죄의 종)에서 떠나서 하나님의 종(하나님이 나를 支配하는 삶)으로 옮겨놓는 것을 十字架와 함께 죽는 것이라고 해서 十字架 사건의 意味로 살폈다. 그래서 6:부터 具體的으로 내 안에 實在的으로 일어나는 變化를 說明한다. 종전까지는 쉽게 내 구원은 예수님이 행하신 구속사건에 달려 있기 때문에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믿습니다하면 끝나는 것으로 理解하여 왔다. 그렇지 않다. 결국 내 안에 變化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구원 행위가 의미가 없다. = 즉 하나님이 罪人인 나를 구원하시는데 나는아무런 變化도 일어나지 않고, 예수님 혼자서 十字架에서 죽으시고 나를 구원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것이 이해가 되는가? 예증 인간은 구원받기 전이나 구원받은 후나 마찬가지로 罪人인데 하나님 혼자서 자기 아들을 十字架에 죽고 하나님 혼자서 했다하면 그것이 무슨의미가 있는가? 핵심 : 문제는 하나님을 떠나고 겨역했던 우리 인간이 변화되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人間은 變化되지 않고 마찬가지인데 하나님 혼자서 공의의 槪念과 사랑의 槪念이 갈등이 일어나서 자기 마음대로 해서 이제 내 마음이 편안해 졌다. 그런 것을 구원이라 하는가?) 그렇게 되면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다 즉 하나님 혼자서 사랑 때문에 고민하고 해결하고 우리는 그냥 가만히 있다가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原來 구속행위는 우리 안에 問題가 있기 때문에 우리 안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구원이기 때문에 구원사건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건보다는 그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通해서 내 안에서 어떤 革新을 일으키느냐는 것이기 떄문에 그 十字架 事件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된다는 意味를 꼭 記憶해야 한다. 그 部分이 6장에서 자세히 다루어져 잇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宗敎改革 때부터 十字架의 事件을 가볍게 나와 關係없이 處理해 버린 느낌이다. 이 部分을 다시 꼭 整理하라. 오늘 7장에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옜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된다고 말할 때 내 안에 일어나는 내 자체 안으 變化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3장에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다. 罪人을 정죄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는데 Q) 이 율법은 하나님이 주셨다가 폐기처분해 버리고 마시는가? 이 율법을 통한 하나님의 意圖가 살아나는가?」 하나님을 떠났던 내가 (고집을 부리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여서 쳐 복종시키는 자로 變化되어서 내 안에서 變化가 일어난 사건은 說明되어 지는데 그 전에 하나님게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이 있다. (정죄하기 위하여) Q) 이 율법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게서 회수해 가시는가? 즉 율법문제는 어떻게 하시는가? 문제가 남아 잇다. 율법문제가 韓國사람에게는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문제가 다르다. 율법을 平生토록 배워왔고 대대로(모세때부터) 조상 때부터 율법을 받아와서 이 율법과관계해서 신앙생활과 자기 종교를 유지해 왔는데갑자기 十字架사건이 導入되면서 율법 자체문제가 없어져 버렸으니 유대인들엥게는 문제가 심각햇다. 또한 율법대로 지켜왔던 바울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율법을 說明하고 있다. 우리는 바울마늠 심각하지는 않지만 우리도 구약을 읽을 때 많은 계명과 법이 주어지는데 新約時代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는 아! 이것은 舊約時代의 法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法이다. Q) 나하고는 아무 相關이 없는 것이다고 읽고 말 것인가? 아니면 나도 이 法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어떤 얽매임이 잇는가? 예증 매일성경 독자를 보면 구약성경을 읽을 때는 다시 율법하에서 허덕이고, 신약성경의 복음을 들려 주면 또 공연히 즐거워하고 해방감을 ㄹ누리고 하는 자기 구원의 문제가 율법의 차원에서는 정리가 안 된 채로 왔다 갔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많은 독자들이 罪問題가 擧論되면 항상 율법과 關係되는 것에만 關心을 기울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부분이 情理되지 않으면 舊約의 율법이 애매하게 남아 있다.
7장에서 整理하고자 한다. 1-6절은 율법과 나와의 關係를 다룬다
1절 : (읽고) 법은 사람의 살아 있을 동안에만 관계가 잇다. 사람이 죽으면 법이 다 必要없다.
Ⅰ, 그래서 율법은 만들어 질 떄 그 대상이 정해져 있다. 우리가 죽지 않더라도 大韓民國 國民이 國賊을 포기하고 가버려도(다른 나라에) 大韓民國 法은 아무 관계가 없다. 法은 항상 對象이 있다. 예증 법은 속인주의와 속지주의가 있다. ◎ 속지주의 는 그 법을 만든 나라의 國土안에 사는 사람에게 該當되는 理論이다 한극의 법은 韓半島 안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그래서 외국 사람이 韓國에 오서 살더라도 한국의 법을 지켜야 한다(통행금지법 있을 대 外國人도 다니면 안된다) 韓國에서 만든 법은 한국에서는 지켜야 한다. 또 韓國人이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법을 지켜야 한다. 자유 무역도시는 물건을 가지고 들어 가기도 쉽고 가지고 나오기도 쉽다. 統制된 나라에서는 들어갈 때 나올 때 調査한다. ◎ 속인주의는 大韓民國 國民은 어느나라에 가든지 그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한다. 미국시민은 한국에 와 잇더라도 미국법을 지켜야 한다 -- 이 두가지 法이 절충되어야 한다. 이것이 一般社會의 法이다. 율법에 대해서 항상 對象이 주어져 있다. Q) 韓國人은 율법 아래 있는가? 있지 않는가? 한국인은 처음부너 율법 아래 있지 않는가? 구약에 나오는 율법은 이스라엘 百姓들에게 주어진 법이다. 속지주의(領土)로 말해도 이스라엘 땅 안에 살 때 이야기고 속인주의로 말해도 이스라엘 百姓에게만 該當되기 때문에ㅐ 한국인에게는 팔레스틴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기 떄문에 속인주의나 속지주의로 다 말해도 해당 사항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유월절도 맥추절도 초막절도 지키지 않는다. 유월절 :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것을 기념하는 절기다. 맥추절 : 이스라엘 나라의 기후나 수확기와는 맞지 않고 날자도 유월절에서 가산해 야 한다. 달력도 성력으로. 제사볍 :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드리게 되어 있다. 바벨론 포로 후 성전도 그리스도, 제사도 그리스도 할례도 받지 않고 구약의 대부분의 법을 우리는 지키지 않는다.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 ☞점검 : 이제까지 으리는 구약시대에는 지켜야 하는데 신약시대에는 짘ㅋ키지 않아도 된다고 배웠을 가능성이 있으나 그런 것이 아니다. 옛날부터 한국도 사람은 율법(모세)을 지키지 않았고 지금도 지키지 않는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지키려 한다. 구약과 신약의차이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한국인은 처음부터 모세 율법하에 있지 않는다.
Ⅱ, 법은 자연법과 실정법이 있다. 자연법 : 법을 만들 떄의 근본정신으로 이해한다. 법을 만들 때 원법정신이 있다. 실정법 : 그 법정신이 법령으로 만들어 졌을 때 그것을 말한다. 실재로 법으로 정학 이전에 갖고 있던 원의도(원래의목적) 의 자연법은 도덕과 倫理에 가깝다. 가끔 新聞에 실정법상 문제가 있다고 한다. 군대에서 不正選擧에 대하여 良心宣言을 하고 부대를 이탈한 것은 실정법상 (군법상) 이탈죄는 적용되나 양심상(자연법)으로는 죄를 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회는 거의 실정법에 의존하고 자연법(법정신)은 신경쓰지 않고 실정법만 따진다 = 실정법을 강조하고 자연법을 강조하지 않은 나라는 굉장히 미개한 水準이 낮은 國家이다. 한국은 스스로 未開國家라는 것을 늘 노출시킨다. 정신적으로 先進國이라고 말하면 법을 많이 만들지 않는다. 그렇게 일일이 간섭하는 것이 우습다. 다들 원정신을 알아서 살면된다. 英國은 불문율이 많다. 성문법(실정법)을 만들지 않고 원정신을 알고 있다. 오랜 습관과 전통에 의하여 대충 따라서 한다. 이것이 이해되지 않으면 율법을 理解할 때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 예증 가정은 실정법이 없는 사회과법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가정 안에 모든 식구들은 우리 집은 어떻게 어떻게 하는 집이라는 생각이 있다.--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집안이다. 자녀들은 좀 어떻게 대우하는 집이다 라는 家風이 있다. 든 家族들이 자기 家庭에서 어떻게 處身해야 할지 알고 따라간다. 법은 없다. 따르지 않는다고 법적 문제는 없다. 가정법은 불문률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ㅇ비교적 잘 지킨다. 이것이 훨씬 더 우수한 법이다. 어떤 家庭에서 우리도 법을 만들자 하여 법을 만들면 유치한 가정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것은 실정법이 자연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 만들었는데 자연법의 의도대로 되지 않고 엉뚱해 질 수 있다. 그래서 실정법은 不完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不完全한 법을 많이 만들 수록 本來의 意圖가 살아나는 수도 있고 죽어 버려서 피해를 입기도 하기 떄문에 될 수 있으면 실정법을 믾이 만들지 않으면 좋은 社會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소속된 구성원(국민들)이 자연법을 잘 안 따라서 한다. 알아서 하면 좋은데 안하니까--아무리 애국 愛國 나라사랑, 道德, 倫理 해도 따라하지 않으니까 實政法을 많이 만든다. 실정법을 많이 만들다 보면 쓸 때 없는 군두더기 떄문에 問題가 많이 생긴다. -머리를 얼마 이상 기르면 안된다. , 집을 짓는데 땅 60평이면 건물은 30평만 지어라는 등..자기 땅에 지기 집을 짓는데 알아서 지으면 되는데 나라에서 미리 몇평 이상은 몇평 건물을 지어야 한다. 몇평 이상은 지하실을 두어야 한다. 차고를 지어야 한다고 한다. 집이 커도 자동차가 필요 없으면 차고 필요없다. 모자라는 땅에 차고를 지어라, 지하를 지어라 한다. 자연법이 자동차를 가지고 집안에 새우지 왜 길거리에 세우느냐? 그것은 알아서 길에 세우지 않으면 되는데 잘 안되니까 일일이 차고를 만들어라 한다. ◇식당의 반찬 2가지 하라 --과소비 억제다. = 실정법을 많이 만드는 한국같은 나라는 미개국이다. 국민들이 어지간히 말을 안듣고 말썽꾸러기가 많은 나라이다고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기에 우리나라 국민은 사상만 가지고는 안되기에 반찬은 몇가지 먹으라, 마리는 몇 센치 길러라 ,집은 몇평 지어라고 일일이 간섭하는 극히 어린아이다. 우리나라 國民은 다 幼稚園生이다. 이것은 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율법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구약시대 하나님이 모세의 법을 만드실 때 실정법을 만드셨다. 理由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준이 낮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몽학선행(가정교사) 아래 있다. 조그만 어렸을 때--망 잘 안들을 때는 --제 멋대로 할 때는 선생님을 하나 붙여서 일일이 절, 인사. 밥먹고, 양치질하는 거정교사가 필요핟. 그런데 성인이 된 후는 그렇게 하는가? 예증 극장에서 연소자 곤람불가라는 단서를 분이는 이유는 성년이 되면 잘 자라서 알아서 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성년이 되어서도 말썽이 참 많다. 성년이 되어서도 유치원생 같이 살기 떄문에 말은 성년이지만 사실은 유치원 國家이다. 선생님도 째째하고 유치원생들도 째째하다. 하나님이 율법을 만드실 때 국만들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실정법을 만드셨다. 성인이 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성인이 되는가? 6장에서 다룬 것처럼 옜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어야만 (자기 고집대로 설던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마음을 갖인 이후부터는 하나님의 뜻만 설명을 해 주면 된다. 하나님의 뜻과 실제의 법하고는 무엇이 다른가? 다르다. 하나님의 뜻은 자연법이고 실제법은 실정법이기 때문에 실정법과 자연법은 사상은 통하지만 별개의 것이니까 실정법을 만들지 않고 사상(뜻)만 전해 주는 ㄴ것이 신약의 原理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솟행위에 의해서 새 사람의 된 이후부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실정법을 폐지하시고 자연법의 수준인 영에 속한 법(성령의 법)의로 다루신다는 것이 7장의 주제이다. 법의 실효성은? 7:1절 : <읽고> 실정법을 두고 하는 말하는 것이다. 2-3절 그것은 쉽다. = 부부가 있는데 부부가 정절을 지키기로 하고 약속을 하고 부부가 되었는데 두 사람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서로 매여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죽어 버리면 나머지 하난는 자유롭다. 4절 율법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러므로 <읽고> = 6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가 몸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떄 나는 몸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지는 않았지만 나도 예수에 소속되어 믿음으로 예수오 함꼐 내 옛 사람이 내적으로 죽었다. 외작으로 몸은 죽지 않았지만 내면적으로 내 주장과 내 고집을 자아를 죽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몸을 통해서 그리스도 몸으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죽임을 당했다. 여기에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굉장히 重要한 히야기다. = 6장에서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했다. ----------------------------------------- 부모 중 한 사람이 죽었으면 남은 사람은 부부의 법에서 자유로워진다. 율법 과 크리스찬과의 사이에서도 크리스찬이 죽으면 그 법의 效力이 죽은 사람에게는 適 用되지않고 소멸된다. 이 때 그 성도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율법에 의하여 정죄받고 사형이 언도되고 죽임을 당한 경우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되면서 예수 안에 소속되어 함께 처형된 모든 성도들에게는 율법이 더 이상 효력을 갖지 못한다. 법의 요구(사형집행)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 (자기자신, 자기주장, 자기고집) 에 대하여 죽었는데 7장에서는 同時에 자기주장과 자기 고집대로 사는 ㄴ우리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려고 율법을 주셨는데 이 율법에 의해서우리의 잘못된 행동, 생각, 결정들을 정죄하셨다. 그래서 6장에서는 죄에 ㅏ대하여 죽었고, 7장에서는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꼐 죽고 새 사람이 된 이후에는 나는 나에게서 해방되고 나를 정죄하는 율법에서도 解放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제부터 ㅇ율법아래 잇지 않는다. 韓國人이라서 모세의 ㅇ법아래 잇는 이스라엘 백성의 법 아래에도 있지 않고 성도들은 율법(실정법)에서는 벗어나 있다. 성도들에게는 구약의 실정법들은 아무 해당사항이 없다. 이것을 잘 정리해야 한다. (잘못적용) 성도가 된 이후에는 헌금도 할 필요가 없고, 기도도 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아무 남자나 여자와)과 관계를 맺어도 괜찮다. 도적질해도 괜찮다. 왜 나는 율ㄹ법아래 잇지 않기 때문에 그런 심한 발상을 가끔하기 때문에 그것을 반 율법주의하고 비판을 많이 한다. (잘못적용) 지금 교회 내에서 반율법주의를 비판하기 대문에 율법에 ㅏ대해서 해방을 주장하니까 반율법주의에 걸리니까 오도 가도 못하고 --율법에서 주유, 아니다고 하니 그럼 내 자리가 어디냐? 답이 제대로 없이 참애매하다. 그래서 율법 아래는 잇는 않다고 설명하면서 동시에 반율법주의는 아니다. ♧문제점 : 뮬법은 지켜야 된다. 원래로 돌아 가느냐? 그것은 아니다. 그럼? 그기에 대해서 명쾌하지 못하다. 그것을 7장을 통해서 명백하게 정리하도록 하라.
韓國敎會는 사당히 율법주의적인 것은 명백하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율법적이다. 첫째, 우리나라는 유교의 영향을 받았기 땜문이다. 국가는 이조 500년을 지나오면서 상당히 율법주의가 되었다. 王宮에 여러 절처들이 대단히 까다롭다. ex)말은 어떻게, 밥상은 어떻게, 제사는 어떻게 등등.. 잘못된 유교의 영향 때문에 한국교회는 격식을 많이 갖추었다. 교회의 예배 때, 교회 내의 행정 떄도 그렇다. 옷을 단정히 입어야 한다. 옥사, 장로 서열 등.. 둘째로,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 미극의 청교도들에 의한 福音이 傳해 졌다. 한국은 청교도들에 의한 영향이 아주 강하다. 청교도들의 長點은 성격 말씀대로 설려는 長點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청교도들의 短點은 성경말씀대로 살려고 하니 文學대로 律法로 살려는 경향이 짗어졌다. 청교도주의는 칼빈주의와 개혁주의와 같은 것이 아니다. 칼빕은 성경을 原思想에 따라서 解釋하려는, 청됴도 주의자는 文學的으로 받아들이고자 함이다. ♣에증 칼빈은 안식일은 집착해서는 안된다고 하며 안식일에 날짜를 따지는 것은 미신이다라고 說明하며, 칼빈은 안식의 참 뜻을 상당히 많이 우리에게 설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청교도주의자들은 바리새인들 처럼 지켰다. 안식을에는 목욕도 면도도 하지 않고 빨래도 하지않고 옷고름이 떨어지면 하리띠로 묶고 그냥 나오기도 하고 상당히 문학적으로 지키려고 努力하였다. 실제적으로는 제 멋대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規定은 상아있어서 상당히 애매한 감이 든다. 이것이 韓國敎會가 갖고 있는 두 가지 理由때문에 오는 律法主義的인 要素 때문에 굉장히 어려움이 있다. 4절B :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예증 다른 이 즉 2절에 부부가 있을 때 다른 男子에게 가는 것이 안되지만 다른 男子에게 가는 것이 음부가 되느냐? 되지 않는냐? 부부가 살아 잇을 대는 다른 만자에게 가는 것이 안되지만 한쪽 男子가 죽으면 다른 男子에게 가도 되듯이 율법과의 곤계에서는 우리가 꼼짝을 못했는데 우리가 죽은 이후에는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엇으니 이제는 다른이에게 간다. 개역성경에는 :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로 가서”로 되어 있으나 , 영어성경 K J V에는 ?죽은 자 사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결혼하여?로 설명한다. 원문은 ?다른이에게 소속되어서? 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다른 이의 아내처럼 이제는 메어서라는 말이다. 율법에 대하여는 죽고 이제는 누구에게 메였느냐? 예수이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서(소속 되어서, 결혼 되어서) 5절 :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배를 맺히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참 重要하다.우리가 律法主義도 문제이지만 反律法主義도 問題다. 즉 나는 이제부터 율법을 지킬 必要가 없다. 아무렇게나 살아도좋다고 한다. 本文5절은 내 마음대로 산다고 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율법 아래 잇을 때 보다도 율법에서 죽고 놓여나서 그리스도에게 소속됨으로써 춸신 더 하나님을 위해서 옳바른 삶을 살 수 잇다는 것을 말한다. 율법 하에 잇을 때보다 훨신 좋은 삶을(열매를) 맺을 수 잇다는 말이지 이제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解放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분명히 하도록 합시다. 롬8:2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明白 해방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罪와 死亡의 法은 모세의 律法이다. 너를 解放하였음이니라. 3절:율법이 육신으로(우리가)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좆지않고 그 靈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要求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2절에는 율법에서 해방시키셨다고 말슴하시고 3잘 하반절에는 율법의 要求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이 말이 우리에게 늘 어려움을 가지고 온다. 解放되었다고 하다가 아니다고 하니 오다가 가다가 中間에 걸린 것처럼 되어 해석이 어렵다. 이것을 맹백하게 整理하라. 7:5절에 가서 ?우리가 육신에 있을 떄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럽매를 맺게 하였더니 6절 :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 났으니 우리가 전에는 육신에 있을 때에는 -- 우리가 이제는 -- ☞구속사적으로 아담 떄부터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進行되어 오다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서 획기적인 變化가 일어났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를 이전이라 말하고그리스도가 오신 이후를 이제는 이라고 말한다. 성경을 읽을 때, 이제는 / 이후는 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 그 전에가 아니다. 그리스도 오시기 이전과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의 구속사역의 큰 轉換點을 이야기 하기 떄문에 理解해야 한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옜날 이야기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罪의 情欲우리 肢體 중에 役事하여 = 5절의 主語는 죄의 情欲이 -- 죄에도 情欲이 있는가? 죄는 자기 慾心이다. 자기의 慾心, 자기의 主張이다. = 律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 죄의 정욕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 肢體 중에 役事하여 우리로 死亡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지금까지 율법 아래 있었던 나는 내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욕망이 자꾸 살아났기 때문에 結果的으로 나는 실컷 일하고나서 죄만 저질렀으니 남는 것은 죽음(死亡) 뿐이다. 반면에 4절 하반절에서는 율법에 대하여 죽은 후 그리스도에게로 온 후에는 그리스도에게 聯合하고, 그리스도에 結婚한 이후부터는 이제는 내가 하는 모든 行動의 結果는 하나님을 위한 열매가 된다. 이것은 6절 죽음을 위한 열매와 4절 하반절의 하나님을 위한 역매가 대조가 된다. 6절 :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ㅏ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 대하여는 죽었으므로 = 육 “율법에서는 벗어났으므로” 6절 그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 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 지니라. 이것이 核心이다. 6절을 잘 理解하면 律法問題에 正答이 나온다. 첫째 : 율법에서 벗어났다는 槪念이 분명해야 한다. 둘째 : 율법에서 벗어났기 때믄에 自由다라고 하지 않고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응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의문(글자,문자)은 = 成文化된 實定法을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고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해야 된다는 말은 성령님이 오셔서우리들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ㅣ인도를 따라 사는 것을 새로운 것이라고 한다. 묵은 것은 옛날 율법을 말하고 이제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법이 주어지는데 옛날 법은 율법이고 문자법이고 새로운 법은 성령님꼐서 우리 마음 속에서 役事하시는 것인데 예증 1. 마치 가정이 문자법이 없지만 가정 안에서 어던 법을 알고 지키는 것과 마탄가지이다. 정리 : 8:2을 다시 보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려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내가 해방받았을 때 그냥 사망의 법에서 해방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해방시키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지만 생병의 성령의 법 아래 있다. 2.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모의 율법 아래 잇지 않고 성령의 법아래 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무엇인가? 성령의 법이나 모세의 율법이나 사실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실정법이 아니고 모세의 율법이 실접법으로 만들어 질 때 원래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정신(자연법)이 있다. 영원법, 하나님의 법, 神聿을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비춰주신다.
♣예증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성경이다. 우리가 율법이라는 말을 들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구약성경 전체를 때로는 율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로마서 7:에서는 다루는 것은 구약전체가 아니고 구약성경 주에서 봅율만을 다루고 있다.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나 하시면서 구약성경 전체를 말슴하신다. - 구약성경 전체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마라 완전케 하러 함이다. 이 구절 때문에 우리는 반율법주의가 아니다고 한다. ◎ 우리는 롬 7장에서 율법에서 해방하였음이니라는 구절과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다고 하시는데 율법을 그냥 있다고도 말하는데 이 구절을 조금만 주의하여 보면 그것은 해결된다.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그냥 있다도 아니고 율법을 완전케 하려 함이다. 여기서 무엇인가 變化는 있다. 18절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으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내가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內容들 -- 율법은--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반드시 다 이루어 져야 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한번 변경하신 법은 執行되야 한다. 方法은 한 사람도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심판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해서(변화시켜서,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게끔 만들어서 하나님의 율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意圖이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게끔 만들려 오셨다는 말이다. 19절 :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율법의 아주 적은 것이라도 경속히 여기면 안된다. 20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났지 못하ㅏ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의 조목 조목가지 참 잘 지켰는데 그런 정도로 지켜서는 천국에 못간다. 성도가 율법에서 놓여 난다고는 배우고 있기는 하지만 성도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보다 훨신 더 성실하고 바르게 참되게 율법, 율법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에 못들어 간다. 구원과 관계가 잇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지켜서 구원에 이른다. 구체적인 예로 21절 : 옛 사람에게 살인치 말라 나는 형제에게 욕하고 미련하다고 하든지 바보하고 하든지 미워하는 것도 살인죄다. 」 27절에 :간음, 맹세, 원수 사랑이 나온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율법이나 구약성경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완전케 하러 왔다.? 어떻게! 너희들이 이해하기를 살인치 말라고 하면 꼭 살인만 안하면 그 계명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 계명을 지킨다. 간음하지 말라, 일근을 바치라면 채소까지 바친다. 원래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신 본 意圖는 실제로 만든 實定法의 自然法 精神은 그것이 아니다. “살인치 말라”는 것은 사람을 때리는 것은 봐 주고 죽이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 아니다. 때리는 것,비난하는 것, 내팽개치는 것도 안된다. 그것도 살인이다. 간음하지 말라는 것도 마음으로 간음하는 것도 죄다. 예수게서 말씀하시기를 “내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사람은 살인죄만 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지도 아니하고, 욕하지도 아니하고, 벙치하는 것도 아니하고, 사랑할 수 잇어야 한다. 그래서 예ㅒ수님은 마6장에서 양과 염소의 比喩에서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내게한 것처럼 돌보지 않으면 天國에 못들어 온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율법의수준을 엄청나게 높여서 說明하신다. 그 법이 만들어진 本來의 意圖가 무엇인가? 살인치 말라는 것은 사람을 괴롭히드라도 죽이기는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롬7:6에서 율법에세 벗어났다는 그 말은 실정법에서 벗어났다는 그 말은 자유롭다는 그 말이 아니고 꼭 문자적인 의미에서 지키려고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는 의미는 이제는 사람만 안 죽이면 된다는 말이 아니고 이제는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겨야 되고 문자에 따라서 지키면 안된다. 정리 : 결국 實定法은 폐지 된다고 하더라도 그 법을 주신 하나님의 本來의 意圖와 精神은 살아 있어야 하고 永遠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함에는 程度가 변함이 없다.
7-13절 [삽입구] 律法은 나쁜 것인가?
7절 :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성문법이 문제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느니 곧 울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엿으리라. ♤ 오해 = 율법은 나쁜 것인가? 율법에서 해방시킨다고 말하고서 영의 법으로 바꾸어 놓으니 성문법은 問題가 잇는가? 예사로 들어면 꼭 내가 율법을 배우고 나서 탐심을 배운 것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사람은 탐심은 나쁘다고 알고 있지 율법을 배워서 안 것이내 할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자 많은 교인들이 경쟁하지 맙시다. 진급하려고 애쓰지 맙시다. 옆에 학생하고 성적경쟁하지 맙시다. 토지 부동산 투기하지 맙시다. 하기 전에는 그것이 나쁜 줄을 몰랐다. 우리 많은 聖徒들이 탐심을 갖고 잇으면서도 극한적인 아주 심한 탐심은 알고 잇지 보편적인 부분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ㄱ래서 善意의 競爭은 必要하지 않느냐고 反論을 한다. A. 아니다. 선의의경쟁은 必要하다. 協助면 協助이지 무슨 競爭이냐? Q. 그러면 이 쌍을 어떻게 사느냐? A. 이 세상은 죄악의 세상. 멸망의세상, 나쁜 세상이고, 새로운 세상이 되어야 한다. = 實在로 탐심에 대해서 聖經에서 율법이 우리에게 제시해 주지 않으면 잘 모를 때가 많이 있다. 그래서구약성경을 보면 잘 나와 있다. 사5:8가옥이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며 빈틈이 없도록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르호보암 왕 2세 때 南,北 이스라엘이 다 사치를 했다. 우리나라 처럼 --요즘 잘사는 사람들이 집이 있는데 또 사고 또 사놓고 한다. 그 理由는 가난한 사람을 주려하는 것이 아니다. -고속버스 터미날에서 명절때 일찍와서 표 사놓는 사람들 왜 그렇게 하는가? 표 못 산 사람 주려고 하는 것인가? 꼽 얹어서 받는다. 제 값에 팔면 상관없다. -여기 땅이 있는데 아무도 살 사람이 없다. 이 사람은 필요한데 누가 좀 사주엇으면 좋겠다. 내가 돈이 좀 남아 있는데 아무도 살 사람이 없으니 사 두었다가 必要한 사람에게 제 값에 주면 그것은 상관이 없다. -돈이 남아서 회사나 은행에 적당히 넣어 두었다가 쓰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투기를 하는 것이다. -주식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A회사의 주식을 사 둔다. 돈이 남아 잇으니까. 그 회사에서는 자본이 必要해서 株式을 판매한다. 우리 회사가 자본이 필요하니 자금을 대어 주십시오, 그러면 회사가 이익이 생기는 만큼 이익배당을 받으면 좋은데 이 주식 저 주식 왓다 갔다하면 딴 생각이 묻어 다니니까 상당히 주의하여야 한다.선의의 競爭은 잘 못된 것이다. 競爭하는데는 善意가 없다. 南北 축구시합을 했는데 1:2로 져도 좋다. 化合을 위해서 - 그러나 대부분의 개임은 즐겁지 않고 개임하며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한다. 그런 부분에서 내가 나를 점검해 보면 내가 얼마나 탐심이 많은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도 大部分의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기를 열심히 하면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運動場에서 先手가 아니넫도 다른 先手가 뛰는 데도 흥분하면서 돌맹이를 집어 던지는 사람들은 문제가 잇다. 공연히 흥분해서 죽는 사람도 잇다. -율법에서 탐심을 버리라는 말은 듣지 않았을 때는 잘 모른다. 사3:16-23에 귀고리, 코거리, 발목거리, 손목거리, 보석, 여자들의 장식품들이 나오는데 평상시에는 당연히 생각하는데 그 구절을 읽으면 내가 잘못 했는가? 사실 여자가 남자보다 좀 아름답고 치장을 해야 하는 것을 인정을 해 주지만 그것이 단순히 예ㅒ쁘게 하기 위한 것이냐? 딴 생각이 따라다니는냐? 은근히 다른 사람에게 나 좀 잘 봐달라고 과시하고 싶고,...성경에서는 자주 나온다. 외모를 꾸미지 말고, 내 속사람을 단정히 해서 아름답게 하라. 그대도 속 사람 단정히 하기 보다는 겉 사람을 단정히 하기 쉽다. 그런 구절들을 읽으면서 드디어 이것이 탐심이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성경 읽고도 좀 처럼 그것을 탐심이 아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율법이 必要하다. 예증 머리를 왜 몇센치 이상을 기르지 말라고 하는가? 머리가 길면 보기가 싫다. 무엇이 보기 싫은가? 말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 싫다. 그래서 머리 얼마 만큼 길러라. 이렇게 법을 만드는 이유는 잘못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 세상의 법은 세대차이라고 생각해서 젊은 사람들이 아무리 법을 만들어도 그것은 케케묵은 법이다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律法도 마찬가지 같다. 성경에 나오는 법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은 옛날 법이다. 이스라엘의 법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묵살해 버리는 경향이 잇는데 묵살해 버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심판하시니 심판을 받아야 한다. ♣예증 그것이 마5:의 예수님이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이루리라. 안 지키는 사람은 처벌하시겠다 한다. 우리가 성실히 지키지 않으면 ㅏ안된다. 조심해야 한다.
7:8절: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엇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이니라 법이 없을 때는 죄가 살아나지 않고 없는 것처럼한다 7:9절 : 前에 罪를 깨닫지 못할 떄는 내가 살앗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엇노라. 전에 법없이 살 때는 법없이 멋대로 살았더니 법을 막상 알고보니 잘못이 많더라 10절 :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개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결국 하나님이 너는 이렇게 이렇게 하면 산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죽는다고 법을 부셧는데 이 율법대로 살면 생명에 이를 것인데 이 율법대로 살지 않아서 율법을 많이 읽고 배우다 보니 점점 내 문제가 드러나서 결국은 율법은 나를 죽게 하는 것이더라. 율법은 나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11절 :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엿는지라. =죄는 내가 절못을 저지를 때마다(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에게 그것이 잘못이다. 그것이 죄라고 지적을 해 주기 때문에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뱀이 하와를 속일 때 쓴 단어) =성경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 달콤한 내 생각 때문에(그 죄는 내 自我이다) =자아의 慾心때문에 계명을 어기고 犯罪햇는데 나를 죽음에 처하게 만들엇다. 12절 : 이로보건데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율법이나 계명은 전혀 잘못이 없고 율법이나 계명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 問題는 무엇인가? 13절 : 그런죽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엇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율법이 선한데 나를 죽게 만들엇는가?) 죄가 죄로 뜨러나기 위하여 善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엇으니 율법 자체는 선한데 내가 자구 죄를 범하니가 내 잘못을 露出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이 계ㅒ명의 법을 주셔서 자구만 죄를 꺠닫게 하시고 죄를 노출시키신다. 그래서 결국은 나를 죽게 만든다. 13절B :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를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을 율법의 第一用法이라고 한다. 律法은 죄를 깨닫게 하고, 죄를 지적하고, 죄를 노출시키고, 그래서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이다. 第二用法은 롬3:에서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에게로 가야 한다. 第二用法은 7:-8:에서 나오는데 重要하다.
☞ 7-13절까지에서 整理 우리는 율법에서 解放되엇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잇다. 다른 편에서는 율법에서 解放됨과 同時에 自由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生命의 성령의 법아래서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자세한 것은 8: 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은 무엇인다? 같은 것이다. 원정신은 율법에서 주셧으니가 율법하고 원정신은 똑 같은 것이다. 다만 율법을 주실 때 살인하지 말라고 할 때 살인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하는 것을 예수님은 잘못 되엇다고 지적하셧다. 그 살인하지 말라는 본 의도를 잘 따라서 지켜야 한다. 훨씬 더 어려워 진다. 십일조를 내라. 이렇게 말하면 아! 1/10은 꼭 내어야 한다. 1/12, 1/13아니라 최저 1/10 내라는 말이 아니고 10/10을 다 내라는 것이 원해의 뜻이다. 네가 가진 것은 전부 하나님의 것이니가 다 드려라 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代表原理로 1/10은 全體를 代表해서 바치는 것이 십일조의 原理이다. 그래서 자꾸먼 1/10만 고수하고 잇다. 그 결과 2/10만 바쳐도 상당히 칭찬을 받는다. 천국에서 상급을 받으려고 하며 8/10은 자기 마음대로 쓴다. 10/10을 온전히 하나님게 드려야 한다는 것이 原理이다. 예수님이 說明하신 律法을 完全케 하려 오셧다는 말은 그 법을 주신 原來의 意圖를 다 따라 지켜야 하기 대문에 춸신 더 그리스도 안에잇는 사람들의 삶은 힘든다고 할까요 어렵다고 할까요, 완전합니다. =이것이 어려워 보이지만 쉽게 생각하면 쉽다. 方法은 처음부터 내 慾心이 잇으니까 자꾸 문제가 있다. 행5:1- 아나니아와 삽비라 처럼 땅을 팔려니까 아까운데 다른 사람이 다 파는데 나도 교회의 집사인데 다른 사람이 땅을 파는데 안 팔 수 잇느냐? 그래서자기도 팔앗다. 팔아서 바칠려니까 아까워서 숨겼다. 절반만 가지고 왔다.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욕심이 없으면 간단하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지만 참 어렵다. 慾心을 어떻게 버리는가? 로마서 4: 믿음에 대해서 整理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慾心을 갖는다. 이것을 다 바치고 나면 재일은 어떻게 살지? 나는 살아가지만 내 아들은 어떻게 살지?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그 때는 어덯게 살지? 금덩어리를 좀 숨겨 두어야 그때 가서 좀 써 먹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 전쟁이 일어났을 대는 하나님의 도움을 못받고 내가 숨겨 놓았던 금으로 살겠는가? 그러면 하나님은 네 금으로 살도록 해라. 믿음도 생각하고 금도 생각한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준비를 자꾸하게 되고 慾心이 생기게 된다. 하나님이 풍부하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없는 내가 자구 챙겨 놓아야 된다고 생각하시는데 하나님은 풍성하시다. 최악의 경우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다 잇는데 왜 그러느냐? 땅에서 왜 야단이냐? 굶어 죽으면 되지 않느냐? 천국에 빨리 가고 싶은데 전쟁이 일어나면 참 잘되었다. 굶어 죽으면 죄는데 천국에 가기 싫으니까 좀 더 살게 해 달라고 아둥바둥 하니까 그렇지, 결국 앞 뒤가 맟지 않는다. 죽음을 겁내는 것도 문제가 있고, 아등부둥하는 것도 문제가 있고, 하나님을 빋습니다.하면서 결국은 이것 저것 다 챙기는 것이 결국은 무엇이 문제가 있느냐? 이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아니다. 새 사람이 안된체로 율법을 지킬려니까 힘이 든다. 그런 사람은 7:14에 나오느 ㄴ사람과 똑 같다.
------- 뒤에 7:14 - 8:10절과 중복되는 것 같다 ------- 7:14-25절 육신의 문제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우리가 지금까지 說明한 데로 율법은 아무데도 하자가 없는데 어디에 問題가 있는가? 「나는 肉身에 속하여 罪아래 팔렸도다.」 Q)肉은 무엇인가? 肉과 靈에 문제는 아주 큰 神學的인 問題이다. 예수님은 육으로 다윗의 血統에서 나시고, 예수님은 復活하실 때 靈으로 復活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은 육에 속한 시대에 우리와 똑 같은 육으로 오시고 부활하심으로 육에 속한 우리와 육에 속한 시대와 조나재로 변화시킨 것을 復活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리스도의 復活 事件은 전혀 새로운 時代를 여는 우리는 전혀 새로운 存在로 만드는 事件이다. 그리스도의 復活事件은 그냥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이 전혀 새로운 存在로 살아낫다는 意味가 예수님의 復活에 있다. 이제 아무도 죽일 수 없는 , 이제 아무에게도 구애받지 않는 영광스러운 뭄으로 復活하셨다. 그리스도의 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狀況과 時代와 國家를 이루신다. 이것을 구석사에서 새 시대를 만든다고 하여 전에는 이랬는데 이제는 하면서 전혀 딴 세계를 우리에게 說明해 준다. 이것을 옛 시대와 새 시대라고 말한다. 다시 설명하면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살던 첫창조(재창조되지 않은/구속되지 않은)된 모든 존재, 인간, 모든 법, 모든 것을 육에 속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시면서 완전히 새로운 존재와 새 시대가 되셨다. (구속된 영역) 問題는 구속되지 않은 사람이 있다. 새 창조 되지 않은 많은 피조물들이(믿지않은 不信者들이) 있다. 믿지 않은 不信者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ㅏ새로운 지음받은 信者들은 전햐 다르다.겉으로는 똑 같은 몸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는 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야 된다. 나는 영에 속한 새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고, 나는 육에 속한 자가 아니어야 한다. 바울은 靈과 肉을 說明하기 위하여 먼저 육에 속해 있는 존재의 문제가 있음을 말한다. 肉에 속한 存在는 15-24절까지 읽은 것, 이 부분은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①여기와서 부울은 우리라는 말 대신 “나”라는 1인칭을 사용하고 이 ㅆ고, 앞부분에서는 과거사로 ㅆ는데 현제동사로 바꿔 쓰기 때문에 이것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에 현제 자기의 개인적인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②구속사적으로 다시 이 부분을 잘 보면 바울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자기 스스로 유겡 속산 자로는) 율법을 지킬 수 없는 나약한 자임을 告白하고 해결책은 무엇인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면서 자기는 어떻게 할 길이 없다.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절망적인 告白을 하고 있다. 25절의 解答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하나님이 보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문제가 풀리더라고 부는 見解가 두번째의 見解이다. 구속사적인 見解이다.
첫번째의 見解는 예수를 믿은 이후에 예수 믿기 전에는 마음놓고 죄를 범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에는 죄를 지을 수 없다라는 것을 배웠는데 죄는 자꾸 범해지고, 원하는 선은 행해지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이 행해지니까훨씬 더 갈등이 많아진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갈등없이 죄를 범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이후에는 죄는 똑 같이 범하지마는 갈등을 갖고 범한다. 그래서 그리도인이 變化된(중생)된 이후에 갖는 갈등이다라는 것이 보편적인 설명이다. 첫째 見解의 問題點 예수를 믿기 전 안 믿는 사람도 곧잘 선을 행한 사람도 있는데 더구나 예스를 믿고 (6장에서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었는데) 욕심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원하는 선이 행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믿으나 마나이다. 그러면 어떻게 율법을 이루는가?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서 열매를 맺느냐? 다만 율법을 도저히 못 지켜 율법에서 해방받아서 그냥 율법은 끝난 것이다. 율법은 도말된 것이니까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는 정죄(심판)를 받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된 지금은 율법 아래 있지 않으니 정죄(심판)받지 않는다. 나는 율법아래 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율법을 어겼어도 나의 수원은 아무 어려움이 없다하며 그냥 위로 받으라는 말인가? 아니다. 8장에 가면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게 하려는 것이다는 성령에 속한 자는 육을 따라 설지 않고 영을 따라 살아야 된다 문제가 있으며 8장과 7장이 전혀ㅛ 문제가 달라진다. 혹시 양보해서 그리스도인이 되자 마자 처음 얼마 동안은 지금 본문 같이 갈등을 일으키고 그 후 8장처럼 점점 성경 안에서 성장해서 성화되어서 잘 지켜 간다하면 약산은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신락적인 함정이 있다. 결국은 내가 그리스도를 믿어서도 금방 새 사람이 되지 않는데 ◇점점점점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도움보다 내가 노력해서 된다는 척각을 밤한다. 이것은 대게 성화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벌콥의 조직신학에 중생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고 성령님이 일방적으로 혼자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피동적으로 중생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화는 성령님과 내가 함께 協同해서 努力해야 된다. 내가 같이 協同하지 않으면 나는 성화되지 않는다. 神,人協同說 비슷한 理論이 우리 조직신학에 나온다. 성화는 우리의 노력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問題는 예수 안에 있는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는 구속행위만으로는 선을 행할 수 없는데 --“오호라 나는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상황밖에 되지 않는데 --자꾸만 노력하고 자꾸만 노력하면 예수님이 나를 도우시고, 성령님이 나를 도우시고 내가 도움을 받아서 점점 좋아져 간다고 말하는 것은 天主敎의 行爲救援論과 상당히 類似하다. 天主敎에는 두가지가 있다. ①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은헤가 있고 ②내가 努力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說明을 더 좋아한다. 왜? 그것은 사람은 사람의 努力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쉽게 하고(인본주의)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말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佛敎가 쉽게 먹혀들어 간다. 적선하고, 努力해야 한다. 그래서 敎會에서도 내가 열심히 해야되고, 성경은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고 한다. 자랑할 것이 없다 하니까 구원은 행위로 앋는 것이 아니고 성화는 행위1/2, 하나님의 은혜1/2로 착각한다. 구원은 성화와 관계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영접하자 이미 받은 것이다. 성화가 안되어도 이미 받은 것이다. 그래서 처음 신자 만나자 마자 구원의 확신부터 먼저 시키고 양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자훈련에서 전부 이렇게 말한다. 제자훈련은 신자가 되는 과정이 아니고 신자가 된 사람을 양육하는 것이 제자훈련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 자한 말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이다. 3000명이 새로 믿은 것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이다. 이제까지는 그리스도인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삶이 따라오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고 예수님은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성화되지 않은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성화되지 않으면 구원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迎接할 때 구원은 이미 끝났고 그 다음 성화는 따라오면 더 좋고 안 따라와도 그원은 상관없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聖化되지 않으면 救援이 아니다. 罪의 問題(自己主張, 自己慾心)가 克服되지 않으면 구원이 아니다. 그 結果, 성화를 가볍게 다루니 문제가 있고, 성화를 강조하려니까 구원에 혼란이 오니까구원은 성화와 관계가 없이 중생된 때 된 것이다. 성화는 무엇이냐? 상급과 관계있다. 구원은 은헤로 받는 것(예수님의 공로로 받는것)이고 상굽은 성화되어져 가는 내 노력만큼 상을 받는 다는 것이 보편적인 지금의 理論이다. 그래서 너는 구원은 받지만, 너는 성화되지 멋하면(좋은 일을 많이 못하면)너는 천국에 가서 저 변두리에서 별 볼일없이 살 것이다 예수님도 장 못먼나고, 파티에도 잘 못가고, 달동네서 살 것이다. 상대적 빈곤이 심하다고 하는데 천국가서 달동네에서 산다면 안가는 것만 못하다. 성경은 그런 說明이 없다. 구원은 완전하ㅏ게 영광스럽게 주어지는 것이지 예수님이 자기 공고(자기 목숨을 버려)로 구원해 놓고는 겨우 달동네에 살라고 하시는 것은 아니다. 환전하고 榮光스런 구원을 주셔야 한다.그런데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十字架에서 죽으실 때 이미 설명한대로혼자 죽으신 것이 아니고 나를 믿음으로 나를 끌어들여서 함께 죽으심으로 나를 완전히 새 사람으로 바꿔 놓은 것이기 때문에 나 안에 變化가 (6장에서 처럼)일어나야 하고 7; 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로 육에서 벗어나는 過程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것이 있지 않으면 구원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肉으로오시고 靈으로 復活하신 理由는 肉에 속한 나를 靈에 속한 나로 탈바꿈(중생)시키는 사역이기 때문에 중생이라는 말 자체가 肉에 속한 자가 靈에 속한 자라는 뜻이다. 요3:3 사람이 거듭나지 (위로부터 난다)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에수님은 사람이 위에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5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위로부터 나야 한다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중생에 대해서 理解할 때 그 동안은 중생이 神秘로움 것이어서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다시 태어나는데 어떻게 태어나는지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니까 우리는 그냥 나중에 본 후에야 중생한 것을 알 뿐이다.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려응ㄹ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바람이 어디서 불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영으로 난다는 말도 전혀 얼 수 없느 ㄴ말이다고 하면서 중생은 神秘로운 것이라고 덮어 버렸다.(주제별) 13절 : 하늘에서 내려온 자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절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그리스도가 들려야 한다.하늘에서 와서 하늘에 올라간다고 한다. 31절 : 위롭부터 오는 이는 만물 위에 게ㅖ시고 땅에서 나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써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니라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리스도는 위에서 오셨다고 말하고, 우리는 땅에 있다고 말하고, 이 말은 뒤에서 계속해서 말한다. 아주 명백하게 중생을 설명하실 때 위에서 난다고 말하시면서 아래에서 난 그를 첫출생을 말하고 두번째 출생은 위에서 나는데-- 다르게 말하면 肉으로 난 것은 첫 出生이고, 靈으로 난 것은 둘째 出生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중생은 우리가 전혀 認識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확실하게 롬6:에 나오는 옛 사람(자기 사사로운 사욕을 따라 사는 사람, 첫 出生된 육에 속한 자) 이라고 말하고 중생된(거듭난, 위에서 난) 새 존재는 영으로 난 자이고 영으로 난 자는 자기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새로 지음받은 존재를 말하기 때문에 내가 중생했는지 안했는 지는 확실히 알아야 한다. 남이 보아도 알 수 있다. 남이 확실히 判斷치는 못하지만 대충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면, 자기 욕심대로 살던 사람이 갑자기 멈추면서 전혀 욕심이 없는 평안한 하나님의 자녀다운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자 다운, 부요한 것을 누리고 있는 삶처럼 산다. 그런 모습으로 금방ㄷ 바뀌지 않으면 위에서 난 자라고 할 수 없다. 아직도 땅에 속한 먹고 살 걱정을 하는 사람은 땅에 속한 자이다.그래서 예수님은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고 하신다. 땅에 속하 자는 하나남을 섬기면서 물질도 섬기고 다른 것도 섬긴다. 왜 그 이유는 못살겠으니까. 그런데 하늘에 속한 것이 확실한 사람은 땅에서 못사는 것 때문에 허덕이지 않는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는 理由는 그런 것을 다 포기하고 산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니까.영원한 것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런 變化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런 것이 단순이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믿지 않고 성경을 배워가면서 내가 조금씩 조금씩 노력해서 내가 차츰 차츰 나아진다고 ㅏ생각한다. (이해해 왔다) 問題는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이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十字架 事件은 과거의지은 罪 -- 예수 믿기 전에 지은 죄를 (원죄) 청산해 주는 사건으로만 해석해 왔고, 내가 지은 죄에 대한 刑罰로만 十字架를 解釋해 왔기 때문에 내가 죄를 지었으므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고 형벌을 받아 마땅한데 예수님이 내 대신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나는 이제 형벌이 없다. 단 성화되어져 가는 것은 내 노력으로 해야 한다고 착각을 자꾸만 범했다.
♣정리 十字架 事件은 刑罰도 물론 따라오지만 내 존재 전체를 새롭게 만드는 그런 사건이기 때문에 十字架의 意味를 우리는 根本的으로 내가 주로 모시면서 그 분 안에 들어가서 그에게 服從하여 그의 종이 되는 새로운 변화를 가져와야 되고 그것을 육에서 벗어난 영에 속한 중생이라고 利害해야 된다. 중생은 確實히 認識할 수 있어야 되고 論理的으롸설ㄹ明이 可能한 內容이다.
이해 속에서 7장으로 가면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원히 아니하는 악은 행하도다” 이것이 조금있다가 아니고 거의그렇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죽음의길로 가고 있다. 나중에는 죽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중생한 자가 아니다. 그것은 육에 속한 자이다. 14절 :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아래 팔렸도다. 14절에 대한 긴 설명이다. 結論에 25절에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내가 하나님의 법을 섬기는지 내가 죄의 법을 섬기는지를 說明해야 한다.
제 8 장 연구
8:1절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절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두가지의 說明을 한다. 첫째, 율법에서 해방받았음을 둘째, 정죄함이 없다. -- 잘못을 범해도 율법하에 있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정죄하지 않으신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받아들인다. 3절 :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율법이 왜 나를 하나님의 말씀을 順從하도록 못만드시는가? 율법은 그럴 힘이 없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알려주고 깨닫게 해 주고 정죄하는 일은 하지만 율법이 나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율법이 나를 중생시키고, 성화시키기 위해서 주어진 것은 아니다. 나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성열님이 그리스도가 하시는 것이다. 2절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새로운 법은” 성령의 법이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법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믿음으로 소속된 자 /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된 / 구속받은 자에게 성령이 오셔서 지시하시는 것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말하고 그 법아래 있는 자들 만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놓여난 자이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이 죄와 사망의 법(자기가 주장하는 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가 주장하는냐? 그리스도가 주장하느냐?가 分明해야 하는데 나도 주장하지 않고 그리스도도 주장하지 않는 그런 인간은 存在하 수 없다. 내가 주군가에 의해서 支配받고 있을 때 나 자신의 支配받느냐 그리스도의 支配를 받느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支配를 確實히 받는 Lordship(主在權)이 確實히 된 사람은 自己主張을 포기하고 그 분의 主張을 따라서 설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아래 이는 자이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주장하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 3절에서 :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율법자체는 선한데 율법을 지켜야 될 인간이 육에 속해 있어서 이 육에 속한 인간이 --첫 창조된 (재창조되지 않은 인간)율법을 지킬만한 힘이 없다. 율법이 아무리 말해도 육에 속한 자가 못지키니까 결국은 율법은 우리 육신의 문제 때문에는 아무 힘도 쓰지 못하드라
27장에 나오는 問題點은 어디에 있는가? 육신에 있다.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다. 해결책은 어디에 답이 있는가? 3절b : 그것을 하나님이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시고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죄 정함을 받으시 -- 4절에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느 ㄴ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왜 성육신 하셨는가? 육에 속한 우리를 포함시키고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리스도가 죽으실 때 같이 죽고, 그리스도가 다시 부활하시 때 성령에 속한 자로 부활하셔서 우리도 영에 속한 자고 탈바꿈시키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성령 안에서 함께 태어나고, 중생한 자이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율법의 요구를 지킬 수 있다. 육에 속한 자는 율법을 지킬 수 없다. 왜? 자기의 욕심 때문이다. 성령에 속한 자는 율법을 지킬 수 있다. 왜? 자기를 죽였고 성령의 支配를 받기 때문에 성령의 법인 율법을 지킬 수 있다. ◇간단하다. (율법을 넣으면 복접하지만) 내가 중생하면(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면)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7:14- 바울의 심각한 고민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된 전이냐? 후이냐? 전이다. 후라면 바울의 論理 全體가 맟지 않는다.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해결책이 있는데 바울이 육에 속했을 때는 윻나는 선은 행치 않고 안되더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는 그런 고민이었는데 이제는 감사할 일이 생겼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나에게 그리스도를 육으로 보내셔서 나의주인이 되고 그리스도를 나와 함께 죽게 하시고 나를 변화시켜서 드디어 율법의 要求를 이루어지게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영을 따라 살아야 되고 육을 따라 살아서는 안된다.
?? 律法에 대한 整理?????????????????? ? (율법의 용도 3가지)? ?????????????????????????????????????? 1. 죄를 깨닫게 하고 정죄하고, 심판하는 技能, 2. 그러므로 예수에게 가야한다고 구약성경에서 율법 자체가 잘 설명하고 있다. (제사법...) 그래서 구약을 읽을 때 그리스도 예수 의 모형으로 읽으라는 것이다. 3. 그리스도에게 가면 율법문제는 덮어두고 적당히 구원되는 것이냐? 율법문제가 따라오는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들어오면 / 성령님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키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설명을 읽고 율법에 설명된 본래의 의도(하나님의 자연법적 의도)를 따라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 무엇이 다른가? (해방이냐? 노예냐?) 율법의 實定法에서는 해받되고 율법의 본 精神은 안 없어지고 그대로 존속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실정법을 주실 때는 인간이 계속 범죄하니까 심판하기 위하여 주셨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정죄할 必要가 없기 때문에 실정법은 必要없어진다. 실정법은 얽어매고 정죄하과구속하기 위해서 주어졌다. 얽어맬 필요가없으니까 실정법은 必要없다. 실정법 안에 있지 않고 자유함을 누린다.
당신은 이 고백이 있어야 한다. 자력으로 율법을 지키려는 데에 고민이다.그리스도를 믿으시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確認하시기 바란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다는 것이 무엇지를 다시 확인하기 바란다. 구원이란 하나님께 독립한 自我를 다시 하나님께 존속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기를 정봅하는 것이 구원이다. 사단도, 죄도, 환경도, 모두 자아를 정복하는 여부에 따라 解決된 問題이다. 믿음만이 解決策이다. 당신은 참으로하나님을 믿는가? 아직도 자신을 믿고 있지 않는가? 그리스도 안에 당신의 전체를 내어 맡겼는가? 1. 우리도 15절과 같은 갈등과 고민이 있는가? 2.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인간은 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당연시 하지는 않는가? 지포자기하지는 않는가? * 이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바울은 이 고민을 어떻게 해결했는가?(24-25절) 3. 7장의 설명의 흐름은 뚜렸하다. 1-6장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게 부활한 우리는 율법에서 해방되었다. 물론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겨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를 정죄하는 율법애ㅔ서 벗어났으므로 (6절)그리스도 예수 로 말미암아 하나님게 감사해야 한다(25절).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음을 (8:1) 확신하고 기쁘해야 한다. 감사라고 있는가? 이직도 불안한가? 괴로움이 있는가? 4.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7-12 율법도 계명도 느쁜 것이 아니다. 그럼 선한 율법이 왜 내게 죽음을 가져 욌는가? 14절의 내가 연약해서 이다. 어느정도 연약한가? 15-23과 같다. 결국은 내 속에 있는 죄 육신이 문제가 있다. 이것이 죄성, 자아, 아상 즉 자신을 내가 제어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배를 밧어났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25절ㅡ이 그리스도 예수이다. 결국 7-25절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기 전의 인간의 모습이다. 25절은 총 결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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