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모친 마리아 (눅 1:26-28)
서 론 : 세례 요한의 출생 예고와 구조적 유사성을 지니는 본문은 기독교 최대 이적 중 하나인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증거 한다. 이는 구약 예언의 성취(신 7:14)임과 아울러 성육신의 신적 기원과 능력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곧 사단의 머리를 깨뜨릴 여자의 후손(창 3:15)이란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셨던 것이다.
'마리아'란 이름은 두 가지 뜻이 있다. 마리아란, 구약의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이라는 여자와 같은 이름이다. 마리아의 구약적인 이름의 뜻은 '좋은 여자'란 뜻이다. 좋은 여자란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다운 여자이다. 그러나 신약적인 이름의 뜻은 '괴로운', '슬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왜 의미가 변하였는지는 모르겠다.)
마리아는 이름 그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인류의 최고의 희망이요, 최고의 선이요, 최고의 아름다운 그리스도를 낳아준 순결한 처녀 마리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는 아름다운 영혼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1. 마리아의 배경 : 마리아의 신앙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누가복음 1장에 기록된 마리아의 친족 엘리사벳과 사가랴에 대해 알면 된다. 성경은 엘리사벳과 사가랴가 아론의 후손인 제사장 가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마리아의 친족 사가랴는 아비야의 반열의 제사장이었고,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으로 제사장의 아내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리아의 가정도 제사장 계열의 가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마 마리아는 제사장 신앙의 영향을 받으면서, 늘 말씀과 기도 속에 조용히 예수의 어머니로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엘리사벳이 요한을 잉태하여 낳을 때도 천사에 의해 예고되었고, 낳을 수 없는 육체적 조건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한을 낳았다. 마리아의 고향은 갈릴리에 있는 나사렛이었다. 나사렛은 조용한 동네로 마리아는 그 조용한 환경 속에서 예수의 어머니로서 준비하고 있었다. '나사렛'이란 말은 '거룩하다',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내다'라는 뜻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땅으로서, 새로운 것, 즉 율법으로가 아닌 은혜로서의 구세주이신 예수가 나사렛에서 탄생하신다는 의미이다.
2. 마리아의 생애와 업적
1) 마리아의 예정 : 일찌기 창세로부터 계시되어온 하나님의 구원은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된다. 그러나 이와 같이 구원의 정점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는 데에는 한 여인의 희생적인 순종이 있었다. 한때는 세상을 풍미하던 다윗 가문 출신으로 벽촌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순박한 수 천년 동안 모든 사람들이 열망하며 기다리던 메시야를 잉태하게 된 것이다.
2) 미혼으로 예수 출생 : 한 남자와 장래를 약속하고 새로운 생활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는 마리아에게 있어 임신이란 모진 수모와 불행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간음 한 자는 돌로 쳐 주이는 율법의 시대에 처녀가 잉태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각오하여야 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을 알면서도 마리아는 자신의 잉태 사실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유익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 마리아의 겸손한 태도는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확고한 신앙의 결단이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마리아는 무사히 약혼자 요셉과 결혼하고 아기 예수를 낳아 평범한 생활을 하게 된다.
3) 가나 잔치에서의 마리아 :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알고 있던 마리아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인간적인 요구를 하는 조급함을 보인다. 또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건강을 돌보 지 않고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예수를 염려하여 집으로 데리고 가려는 인본주의적인 모습도 보인다. 육신에 속한 자로서의 본능적인 모성과 메시야에 대한 신앙이 교차하고 있는 마리아의 마음에 갈등과 혼란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는 마리아 : 마리아에게 일생 최대의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들 예수가 사형을 당하게 된 것이다. 삶의 한 기둥이었던 아들이 처형되는 광경을 지켜보는 그 시간은 마리아에게 가장 처절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최악의 상황은 최상의 축복의 문으로 들어서는 첫걸음이었다.
갈보리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보는 마리아의 마음에는 자신의 아들이 아닌 구세주의 모습이 새겨진다. 그녀의 아들 예수의 육신은 처참하게 죽어갔지만 그녀의 심령 속에 영원한 메시야로 살아있게 된 것이다.
그 후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마리아는 성령 충만함을 받고 새 사람이 되어 참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을 위하여 믿음으로 선택한 고난의 길은 영광으로 이어진다. 선한 것이라고는 날 것 같지 않던 나사렛에서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묻혀 있던 마리아가 선택한 고난의 길은 영생의 문으로 들어서는 입구였다.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마리아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랐듯이 오늘날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도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실천할 때 생명책에 그 이름이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한편 비록 세상 만민을 구원할 메시야를 낳았지만 마리아 역시 율법 앞에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3. 마리아에게서 배우는 교훈
1) 특별한 은혜를 입은 마리아 :
마리아와 요셉은 북쪽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이란 동네에 살고 있었다. 여기서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자기가 성령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해산이 가까울 때에 집권자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에 따라 모든 유대인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호적하여야 할 때, 그녀도 그 남편을 따라 호적하기 위해서 나사렛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계획이요 섭리였다. 누가복음 2:3∼7에는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을 향하여 떠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거기서 아기 예수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마리아와 요셉이 나사렛을 떠나 아기 예수를 낳기 위해 수 백리 먼 길을 가야만 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이며, 또 하나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가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들레헴에 탄생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요 섭리였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많이 받은 자는 수없이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처럼 가장 고귀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경건한 여인들은 자신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들을 낳으면 그가 혹시 메시야가 아닌가 하여 '예수'라는 이름을 많이 지었었다. 그러나 그 특별한 은혜가 마리아에게 임한 것이다.
2) 훌륭한 신앙의 소유자 마리아 : 마리아는 훌륭한 신앙의 소유자였다. 처녀인 자신의 몸이 성령으로 잉태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그녀는 담대하게 용기 있는 신앙을 선언하고 있다.
유대법에는 처녀가 아기를 가지면 돌로 쳐 죽이는 무서운 법이 있었다. 마리아는 자신도 모르는 임신으로 죽음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일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알고, 죽음을 각오하고 기쁨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고 있다.
3) 성령이 충만한 마리아 : 마리아는 성령의 능력이 충만한 여인이었다. 또한 마리아는 말씀을 온전히 믿는 여인이었다.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굳게 새기고 있었다. 그 말씀은 '…오늘날 다윗의 동리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실로 엄청난 사실이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여인의 좁은 가슴에 담기엔 너무나 벅찼다. 그러나 마리아는 차분히 그 말씀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했다. 말씀을 믿을 때에 역사가 나타나며, 능력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믿음이란, 말씀을 믿는 것이다.
결 론 :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열리듯, 아름다운 마리아에게서 아름다운 그리스도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생애는 아름답지만은 아니하였다. 그는 괴롭고 슬픈 여자였다. 요한복음 19장 25∼26에는 아들이 피 흘리며 매달린 십자가 밑에 있는 마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 가운데 죽어가는 아들을 지켜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괴롭고 슬픈 심정을 생각해 보라. 참으로 마리아는 괴롭고 슬픈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