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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실라

살리는사람 2007. 8. 5. 10:33

실라 ― 복음 전파의 충실한 조력자 (행16: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기독교 역사를 바꾼 사람은 바울입니다. 바울 곁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바울의 동역자들 이었습니다.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들 모두에게 공동 우승하였다고 칭찬할 것입니다.

앞 장 서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뒤에서 받쳐주는 사람도 중요합니다. 바울 곁에 사람 중에 중요한 사람이 바로 실라 입니다. 이제부터 실라를 추적하여 보려고 합니다.

두 이름

실라의 다른 이름 실루아노 입니다. 실라는 ‘생각’이란 뜻이며 실루아노는 라틴어 이름입니다. 이로보아 실라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보통 실라는 애칭으로 불리웠고, 바울은 서신서를 쓸 때에 공식적인 이름인 실루아노를 사용하였습니다.그러니까 사도행전에서는 실라로 나오고 바울 서신에서는 실루아노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누가는 실라 라고 부르고 있고, 바울은 실루아노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라와 실루아노는 같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행 17;1, 10)

데살로니가 교회를 개척한 세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 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에 후에 편지할 때 세 명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살전 1;1)

그러면 실라는 어떤 사람이었을 가요?

1. 중간 역할자

안디옥에 기독교인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안디옥은 당시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습니다. 로마, 알렉산드리아 다음에 안디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안디옥이 복음화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처음 예수를 영접한 이방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처럼 믿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 유대인처럼 키파를 써야 하는가? 유대인처럼 유월절을 지켜야 하는가?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 사도들은 회의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편지를 안디옥에서 예수를 영접한 이들에게 전하여 주었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편지도 있고, 이메일도 있고, 팩스도 있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인편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 교회가 선정하는 데 바울과 바나바와 유다와 실라를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편지를 주어서 안디옥으로 보냈습니다. 그 이야기가 사도행전 15장입니다.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행 15;22-29)

그 편지 내용의 결론은 유대인과 같이 짐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해방 선언문이었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저희가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행 15;28-32)

아무 짐을 지우지는 않을 것이지만 우상 제물과 피와 목매아 죽인 것과 음행만은 멀리 하라고 율법을 축소하여 보냈습니다.

자 여기서 예루살렘 교회 대표로 뽑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실라는 중간 역할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맡길만한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윗사람이 사람을 뽑을 때 <그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기면 틀림없다>라는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실라는 그런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2. 예언의 영이 있는 선지자

실라는 편지만 전하여 준 것이 아니라 예언을 하면서 위로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영성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저희가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행 15;27-33)

3. 또 뽑힌 사람

실라는 예루살렘 교회가 대표로 뽑아 안디옥으로 보낸 사람입니다. 그 때 바울과 같이 일하였습니다. 바울은 그와 같이 일하면서 실라를 잘 보아 두었습니다.

15장에 실라는 바울과 같이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바나바와 대판 싸움이 났습니다. 15장 후반입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떠났습니다. 바울은 동역자가 없었습니다. 그 때 실라를 동역자로 불러 바울은 그 때부터 실라와 동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행 15;39-40)

한번 일해보고는 다시 같이 일해보고 싶은 사람이 실라였습니다. 한번 일해보고는 <그 사람하고는 이제 같이 일 안 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라는 달랐습니다.

바울이 고독하여 졌을 때, 바울이 동역자를 잃었을 때 그 자리를 실라로 채웠습니다. 여기에서 실라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동역자로 실라를 선택한 이유가 또 하나 성경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바울도 실라도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가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 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죽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수갑도 찼습니다. 그 때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였습니다. 옥터가 흔들리고 문이 열렸습니다. 수갑도 풀어졌습니다. 놀라서 풀어 주었습니다. 그 때 바울이 말했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아전들이 이 말로 상관들에게 고하니 저희가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행 6;37-40)

<로마 사람인 우리를...>라고 한 말을 보면 실라도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면 최고 시민권이었습니다. 바울은 같은 시민권을 가지고 로마 점령지를 돌기가 편리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바울은 실라를 동역자로 선택하였습니다.

우리는 한번 교제하면 또 선택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4. 베드로의 동역자

실라는 후에 베드로와도 같이 일한 흔적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 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벧전 5;12)

베드로가 베드로 전서를 쓸 때 그는 이미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약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눈이 흐려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성경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짐작할 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는 베드로가 말하는 대로 실라가 대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보면 실라는 베드로와도 동역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같이 실라는 하나님의 일군들과 늘 같이 일하였던 일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라는 한 마디로 큰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군이었습니다.

6. 평가 및 교훈

① 실라는 바울과 비교할 때 그리 비중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헌신과 열심히 없었다면 바울의 사역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행 16:1-34). 이처럼 앞장서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역의 이면에서 동료 사역자를 묵묵히 돕는 일 또한 중요한 것이다. 실로 동역자들간의 이러한 겸손과 협동이야말로 복음 전파를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라 하겠다(벧전 5:6).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혀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찬송과 기도로 주께 영광을 돌렸다(행 16:23-25). 이같은 실라의 신실한 태도는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쉽게 불평하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성도들이 의를 위하여 당하는 고통은 장차 누릴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조차 없다(엡 3:13). 이에 환난을 당해도 실라와 같이 소망 중에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③ 실라는 바울과 함께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개종한 자들의 연약한 믿음이 잘 자랄 수있도록 양육하는 데도 소홀하지 않았다(행 17:13,14).

이와 같이 성도는 전도에서만 그칠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이 성숙한 신앙인 이 될 때까지 잘 보살피고 양육하는 역할도 감당해야 한다. 이에 우리 성도들은 내가 전도한 영혼이 굳건한 신앙을 소유할 때까지 어머니와 같은 심정으로 그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어야 하겠다.

④ 발은 착고에 채워지고 몸은 매를 맞아 타박상도 입었을 법한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를 생각해 보라. 그들은 이러한 암담한 상황 속에서 좌절과 분노가 아닌 용기와 기쁨으로써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곧 그들은 감옥을 천국으로 만든 것이다. 진정 기도와 찬송을 통해 환경이 극적으로 변화되었고, 이에 감명 받은 간수와 그 가족의 구원도 이뤄졌다. 이렇듯 어떠한 상황에서도 성도의 찬송과 기도가 끊어지지만 않는다면 무거운 심령은 기쁨으로 바꾸어질 것이며 이를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분명 있을 것이다.

출처 : 지니텍
글쓴이 : 고영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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